신학 사전

몸의 부활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몸의 부활은 마지막 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모든 죽은 사람이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들은 지금의 몸과 이어져 있으면서도 썩지 않고 영광스럽게 변한 몸, 곧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을 닮은 몸으로 살아납니다.

사람 전체의 소망

성경의 소망은 영혼이 몸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전체가 다시 사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마지막 날 "땅의 티끌 속에서 잠자는 자들 중의 많은 사람이 깨어나 얼마는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고 얼마는 수치와 영존하는 치욕에 이르며"라고 했고 (단 12:2), 예수께서는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듣고 생명의 부활이나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하셨습니다 (요 5:28-29). 신약에서 ‘부활’로 옮긴 아나스타시스(ἀνάστασις)는 다시 일어섬을 뜻합니다.

이 소망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사 잠든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 15:20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내 손과 내 발을 보라. 바로 나니라. 나를 만지고 또 보아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가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눅 24:39). 첫 열매가 그러하듯 추수도 그러할 것입니다. 예수를 살리신 이의 영이 "그러나 만일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분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자신의 영을 통해 너희의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롬 8:11).

그러면 어떤 몸으로 살아날까요? 바울은 씨앗에 빗대어 "죽은 자들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라. 그것은 썩는 것 가운데 뿌려지고 썩지 않는 것 가운데 일으켜지며"라고 답합니다 (고전 15:42). 웨슬리는 ‘심고’를 두고 "아름다운 낱말이니, 씨처럼 땅에 맡겨진다는 것입니다"라고 풀었습니다 웨슬리. 씨와 밀이 한 생명이듯 부활의 몸은 지금의 몸과 이어져 있으면서도 영광스럽게 변합니다. ‘신령한 몸’ (고전 15:44)은 몸이 없는 영이 아니라 성령께서 온전히 다스리시는 몸이라고 많은 해석자는 이해합니다. 그날까지 살아 있는 이들도 죽지 않고 변화할 것입니다 (고전 15:52).

교회가 고백해 온 것

몸의 부활은 처음부터 걸림돌이었습니다. 아테네 사람들은 바울에게서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비웃었고 (행 17:32), 고린도 교회에도 부활이 없다고 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고전 15:12). 물질과 몸을 낮추어 본 영지주의자들에 맞서 이레나이우스는 하나님이 지으신 육체가 구원받고 다시 살아난다고 힘써 가르쳤습니다 이레나이우스, 이단 반박 5권. 사도신경은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사도신경,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몸의 같음을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죽은 사람은 다른 성질을 가질지라도 바로 그 같은 몸으로, 다른 몸이 아니라, 일으킴을 받아 영원히 자기 영혼과 다시 결합될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2.2

전통들이 다르게 말하는 곳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와 개신교회는 신경을 따라 몸의 부활을 함께 고백합니다. 부활의 몸이 지금의 몸과 어떻게 같은지를 교회는 자세히 정의하지 않았습니다. 3세기의 오리게네스는 부활의 몸이 신령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그 모습을 사색했는데, 뒤의 교부들 가운데는 그것이 몸의 실재를 흐리게 한다고 비판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근대에는 몸의 부활을 영혼 불멸이나 상징으로 바꾸어 이해하려는 이들도 있었지만, 역사적 교회들은 신경의 고백을 지켜 왔습니다.

복음주의 안에서는 부활의 순서를 두고 견해가 갈립니다. 전천년설은 요한계시록 20장을 따라 의인의 첫째 부활과 나머지 죽은 자들의 부활 사이에 천 년이 있다고 보고, 무천년설과 후천년설은 재림 때 의인과 악인이 함께 일어나는 한 번의 부활을 기다립니다. 모두가 부활 뒤에 최후 심판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교리 과정의 부활, 심판, 새 하늘과 새 땅 과에서 더 다룹니다.

출처

  1. 이레나이우스, 이단 반박 읽기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