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The resurrection of Christ
그리스도의 부활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신 예수께서 사흘째 되는 날 몸으로 다시 살아나신 일입니다. 그분은 옛 생명으로 돌아오신 것이 아니라 다시 죽지 않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살아나셨고, 이 부활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며 그분께 속한 이들이 다시 살아날 첫 열매가 됩니다.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부활은 교회가 맨 처음부터 전한 소식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자기도 받아서 전한 것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내가 또한 받은 것을 무엇보다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그것은 곧 성경 기록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성경 기록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시고 게바에게 보이시고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보이셨다는 것이라.
고전 15:3-5
많은 학자는 이것이 바울보다 먼저 교회가 외워 전하던 고백이라고 봅니다. 신약은 이 일을 ‘일으키다’라는 뜻의 에게이로(ἐγείρω)와 ‘다시 일어섬’이라는 뜻의 아나스타시스(ἀνάστασις)로 말합니다. 여자들은 빈 무덤을 보았고, 예수께서는 영을 보는 줄 알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내 손과 내 발을 보라. 바로 나니라. 나를 만지고 또 보아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가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눅 24:39). 두려워 문을 닫아걸었던 제자들은 담대한 증인이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몸은 무덤에 누였던 바로 그 몸이면서 영광스럽게 변화된 몸이었습니다. 그분은 닫힌 문 안으로 들어오셨고 다시 죽지 않으십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는 예수께서 손과 발을 보이신 일을 두고 "우리 주께서는 죽음이 정복되었고 인간의 본성이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썩지 않음을 입었음을 증언하시려고 먼저 자기 손과 발과 못 자국을 보이십니다"라고 풉니다 키릴루스. 바울은 이것을 썩지 않을 것, 영광스러운 것, "신령한 몸"이라고 부릅니다 (고전 15:44). 많은 해석자는 이 신령한 몸을 몸이 없는 영이 아니라 성령으로 온전히 살아 있는 몸으로 읽습니다.
부활이 뜻하는 것
부활은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드러냅니다. 그분은 "거룩함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권능 있게 밝히 드러나셨느니라."습니다 (롬 1:4). 부활은 또한 십자가의 일을 하나님이 받으셨다는 선언입니다. 바울은 그분이 "그분께서는 우리의 범죄로 인하여 넘겨지셨으며 우리의 칭의를 위하여 다시 일으켜지셨느니라."고 말합니다 (롬 4:25). 그래서 바울은 "또 그리스도께서 일으켜지지 아니하셨으면 너희의 믿음이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너희 죄들 가운데 있으며"라고 말합니다 (고전 15:17). 그리고 부활은 우리의 미래를 미리 보여 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고전 15:20).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부활의 유익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첫째,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부활로 죽음을 이기셨으니, 이는 죽으심으로 우리를 위하여 얻으신 의에 우리를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도 이제 그분의 능력으로 새 생명으로 일으킴을 받습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우리의 복된 부활에 대한 확실한 보증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45문
교회의 고백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경은 그리스도께서 사흘째 되는 날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고백하고,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와 개신교회는 모두 그분이 몸으로 다시 살아나셨다고 고백합니다. 2세기 초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여전히 육신 안에 계신다고 썼습니다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서머나 교회에 보낸 편지. 교회는 주님이 살아나신 안식 후 첫날에 모여 왔고, 정교회는 부활절마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 죽음을 짓밟으셨다고 노래합니다.
근대에 들어 1835년 다비트 프리드리히 슈트라우스는 복음서의 기적 이야기를 초대 교회가 만든 신화로 읽었고 슈트라우스, 예수의 생애, 그 뒤 일부 신학자는 부활을 무덤에서 일어난 일보다 제자들의 믿음이 새로 태어난 체험으로 설명했습니다. 교회가 이 설명들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신약이 빈 무덤과 만질 수 있는 몸을 말하고, 제자들이 처음에 품었던 바로 그 생각, 곧 영을 보았다는 생각을 예수께서 바로잡으셨다고 전하기 때문입니다 (눅 24:37). 그리스도의 부활은 장차 있을 몸의 부활의 보증이며, 그 뒤에 승천이 이어집니다. 교리 과정의 부활 과와 예수는 정말 부활했는가?도 읽어 보십시오.
출처
-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서머나 교회에 보낸 편지
- 다비트 프리드리히 슈트라우스, 예수의 생애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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