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리
섭리는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신 데서 그치지 않고 모든 것을 붙드시고 돌보시며 다스리신다는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은 참새 한 마리와 우리의 걸음과 나라들의 역사를 주관하시고 악까지도 선을 위해 쓰시되 악의 조성자는 아니시며, 그분의 뜻과 사람의 책임은 함께 서 있습니다.
붙드시고 먹이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셨다는 고백은 다음 단원의 창조에서 자세히 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이 시계를 만들어 태엽을 감아 두고 떠나는 장인처럼 세상을 지으신 뒤 손을 떼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분 자체의 정확한 형상이시며 자신의 권능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떠받치시는 이 아들께서는 친히 우리의 죄들을 정결하게 하신 뒤에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3), 골로새서는 "또 그분께서는 모든 것보다 먼저 계시고 모든 것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느니라."고 말합니다 (골 1:17). 바울의 말대로 "이는 우리가 그분 안에서 살며 움직이며 존재하기 때문이라. 너희의 시인들 중의 어떤 사람들도 이르되, 우리 또한 그분의 후손이라, 하였나니" (행 17:28). 하나님이 세상을 붙드시고 돌보시며 다스리시는 일을 섭리라고 부릅니다. 섭리를 뜻하는 라틴어 providentia는 ‘미리 보다, 마련하다’라는 말에서 왔는데, 아브라함이 이삭 대신 숫양을 받은 산을 "여호와이레"라 부른 일과 잘 어울립니다 (창 22:14).
예수께서는 이 돌보심을 아주 작은 것에서 보여 주셨습니다.
공중의 날짐승들을 보라. 그것들은 씨 뿌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이시나니 너희는 그것들보다 훨씬 더 낫지 아니하냐?
마 6:26
참새 한 마리도 "참새 두 마리가 일 앗사리온에 팔리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그것들 중의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떨어지지 않고 (마 10:29),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습니다 (마 10:30). 히에로니무스는 이 말씀이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끝없는 섭리와 말할 수 없는 돌보심을 나타내며, 우리의 어떤 것도 하나님께 감추어지지 않음을 보입니다"라고 풀이합니다 히에로니무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27문은 섭리를 하나님의 전능하시고 어디에나 미치는 능력이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이 능력으로 마치 손으로 하시듯 하늘과 땅과 모든 피조물을 여전히 붙드시고 다스리시므로, 비와 가뭄, 풍년과 흉년, 건강과 질병, 부와 가난, 그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 아버지의 손길에서 우리에게 온다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27문.
걸음과 역사와 악까지
하나님의 다스리심은 우리의 계획과 걸음에도 미칩니다.
사람의 마음이 그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주께서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느니라.
잠 16:9
제비뽑기처럼 우연해 보이는 일에 대해서도 잠언은 "제비는 겹친 옷자락 속에서 사람이 뽑으나 그것의 모든 배분은 주께서 하시느니라."고 말합니다 (잠 16:33). 나라들의 역사도 그렇습니다. 교만했던 느부갓네살은 정신이 돌아온 뒤 하나님이 "그분께서는 땅의 모든 거주민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 안에서든지 땅의 거주민들 가운데서든지 자신의 뜻대로 행하시나니 아무도 그분의 손을 멈추게 하거나 그분께 이르기를, 당신이 무엇을 하나이까? 하지 못하리라."라고 고백했습니다 (단 4:35).
섭리의 가장 깊은 신비는 하나님이 악까지도 선을 위해 쓰신다는 것입니다. 형들에게 팔려 종이 되었던 요셉은 오랜 세월 뒤 형들에게 말했습니다.
오직 당신들로 말하건대 당신들은 내게 악을 행하려고 생각하였으나 오히려 하나님은 그 일을 선이 되도록 계획하시고 이루셔서 이 날과 같이 많은 사람을 살려 두게 하셨나니
창 50:20
개역한글은 ‘선으로 바꾸사’로 옮겼지만,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형들이 ‘해하려 한’ 것과 하나님이 ‘선으로 뜻하신’ 것에 같은 동사 , 곧 ‘꾀하다, 계획하다’가 쓰입니다. 한 사건 안에 두 뜻이 있었고, 형들의 뜻은 악했으나 하나님의 뜻은 선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합니다 (롬 8:28). 매튜 헨리는 "모든 섭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영적인 선을 이루는 쪽으로 나아가니"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아우구스티누스도 하나님은 악에서도 선을 이끌어 내실 만큼 전능하고 선하신 분이시기에 악이 있는 것을 허락하신다고 말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엔키리디온 11.
그러나 하나님은 악의 조성자가 아니십니다. "아무도 자기가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악으로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약 1:13). 십자가가 그 분명한 예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분께서 하나님의 정하신 계획과 미리 아심을 통하여 넘겨지매 너희가 그분을 붙잡아 사악한 손으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나" 내어준 바 되셨지만 (행 2:23), 그분을 못 박은 이들은 자기 죄에 책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자신이 뜻하신 계획대로 이루시는 분의 목적에 따라 우리가 예정되어 또한 그분 안에서 상속 유업을 얻었으니" 분이십니다 (엡 1:11). 그런데 바울은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순종한 것 같이 내가 있을 때뿐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일하여 드러내라."고 명하면서 (빌 2:12) 곧이어 "너희 안에서 일하사 자기가 참으로 기뻐하는 것을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라."라고 말합니다 (빌 2:13). 하나님의 영원한 뜻과 사람의 책임은 성경 안에서 나란히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사람의 자유
이 둘이 어떻게 함께 서는지에 대해서는 전통마다 설명이 다릅니다. 선택의 문제는 은혜와 선택에서 따로 다루고, 여기서는 섭리에 관한 큰 줄기만 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전통과 개혁교회·장로교회는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일어나는 모든 일을 정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장은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죄의 조성자가 아니시고, 피조물의 의지를 억지로 꺾지 않으시며, 제2원인들의 자유와 우연성도 없애지 않고 오히려 세우신다고 덧붙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장.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하므로 자기 행위에 참으로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의 토마스주의 전통은 하나님을 모든 것의 첫째 원인으로 봅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을 그 본성에 맞게 움직이시니, 자유로운 피조물은 자유롭게 행하도록 움직이십니다. 하나님의 일하심과 사람의 자유는 같은 차원에서 다투는 두 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16세기 예수회 신학자 루이스 데 몰리나는 하나님이 ‘중간 지식’으로 모든 자유로운 피조물이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자유롭게 택할지 아시고, 그 앎에 따라 세상을 다스리신다고 설명했습니다 루이스 데 몰리나, 자유의지와 은총의 조화. 이 견해는 가톨릭 안에서 자랐고 오늘날 일부 개신교 철학자도 따릅니다.
아르미니우스 전통과 감리교회·웨슬리 전통은 하나님이 만물을 붙드시고 역사를 그분의 목적으로 이끄시며 은혜로 사람이 응답할 수 있게 하시지만, 사람의 자유로운 선택은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허락하시는 것이지 정하여 일으키시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존 웨슬리, 하나님의 섭리에 관하여.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고 (딤전 2:4),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을 모으려 하셨으나 "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대언자들을 죽이고 네게 보낸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자기 병아리들을 자기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얼마나 자주 네 자녀들을 함께 모으려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라고 탄식하셨습니다 (마 23:37).
이 견해들은 함께 거절하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일이 비인격적인 운명에 묶여 있다는 숙명론도, 세상이 우연에 맡겨져 있다는 생각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모두 하나님이 선하시고 죄의 조성자가 아니시며, 사람은 자기 행위에 책임이 있고, 기도는 헛되지 않다고 고백합니다. 이 문제는 하나님은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가?에서 더 다룹니다.
섭리를 믿는 삶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28문은 섭리를 아는 유익을 이렇게 말합니다. 역경 중에 인내하고, 형통할 때 감사하며, 앞날의 일에 대해서는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굳게 신뢰하여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그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확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28문.
섭리를 믿는다고 고통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요셉은 구덩이와 감옥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고, 그 뜻을 깨달은 것은 한참 뒤였습니다. 그래서 섭리는 고통받는 이웃에게 쉽게 던질 설명이 아니라, 우리가 어둠 속에서 붙드는 약속입니다. 그 약속 때문에 우리는 "너희의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기라. 그분께서 너희를 돌보시느니라."는 말씀대로 기도합니다 (벧전 5:7). 악과 고통의 물음은 선하신 하나님이 왜 악을 허락하시는가?에서, 기도는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는가?에서, 길을 찾는 일은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에서 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연습
- 연습 1 / 8
섭리란 무엇입니까?
- 연습 2 / 8
마태복음 10:29-30에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돌보심을 보여 주시려고 드신 예는 무엇입니까?
- 연습 3 / 8
창세기 50:20에서 요셉이 형들에게 한 말이 섭리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4 / 8
하나님이 악까지 선을 위해 쓰신다면, 하나님은 악의 조성자이십니까?
- 연습 5 / 8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28문이 말하는, 섭리를 아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 연습 6 / 8
다음 중 전통과 그 설명의 연결이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7 / 8
하나님이 일어나는 모든 일을 정하시되 죄의 조성자는 아니시며 피조물의 의지를 억지로 꺾지 않으신다고 고백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어느 전통의 고백입니까?
- 연습 8 / 8
섭리에 대한 여러 견해가 함께 고백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출처
-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563 — 독일 개혁교회의 요리문답(129문). 제1문: 살아서나 죽어서나 유일한 위로는 무엇인가. 죄와 구원과 감사의 세 부분으로 신경, 성례, 십계명, 주기도문을 가르친다. 읽기
- 아우구스티누스, 신앙 핸드북(엔키리디온) 11 — 악은 선의 결핍이며, 하나님은 악에서도 선을 이끌어 내신다.
- 웨스트민스터 총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646 — 장로교회의 신앙고백. 성경, 하나님과 작정, 언약, 구원, 교회와 성례, 종말을 33장에 걸쳐 고백한다. 읽기
-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 1265–1274년. 중세 신학을 집대성한 저작. 하나님과 창조와 섭리, 인간과 은혜, 그리스도와 성례를 두루 다루며, 하나님은 이성으로도 알려지시나 구원의 진리는 계시로 주어진다고 가르친다. 읽기
- 루이스 데 몰리나, 자유의지와 은총의 조화 1588 — 하나님이 피조물의 자유로운 선택을 미리 아시는 ‘중간 지식’으로 섭리와 자유를 조화시키려 했다.
- 존 웨슬리, 하나님의 섭리에 관하여 설교 67 / Sermon 67 (1786) —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스리시되 사람의 자유를 거스르지 않으신다고 설교한다.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공교회의 신경(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칼케돈 신앙정의)을 기준으로 삼았고,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