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과 참고 자료

매튜 헨리 간추린 주석

영국의 비국교도 장로교 목사 매튜 헨리(1662–1714)가 쓴 큰 성경 주석을 후대에 간추린 책입니다. 성경 전체를 단락마다 따라가며 말씀을 믿음과 삶에 따뜻하게 적용해 주므로, 묵상하며 읽고 말씀을 삶에 새기는 데 좋습니다.

매튜 헨리와 그의 시대

1662년 8월 통일령이 시행되면서, 그 앞뒤로 쫓겨난 이들까지 합하면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이천 명가량의 목사가 설교단을 잃었습니다. 통일령은 모든 목사에게 국교회의 공동기도서를 따라 예배하고 그 책의 모든 내용에 동의하라고 요구했는데, 양심상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이들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던 것입니다. 이 일을 ‘대추방’(Great Ejection)이라 부르고, 이때부터 국교회 밖에서 따로 예배한 개신교인들을 ‘비국교도’라고 부릅니다. 웨일스 북동부의 시골 교구 목사였던 필립 헨리(1631–1696)도 이 무렵 목회지를 잃고 설교를 금지당한 사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의 아들 매튜 헨리는 바로 그해 10월, 웨일스와 잉글랜드 접경의 브로드 오크(Broad Oak)에서 태어났습니다. 공적인 설교단은 잃었지만 필립 헨리는 집에서 날마다 가족과 함께 성경을 읽고 풀어 주며 기도했다고 전해집니다. 매튜는 성경을 한 장씩 읽고 그 말씀을 그날의 삶에 적용하는 가정 예배 속에서 자랐습니다. 훗날 그의 주석이 학자의 연구서가 아니라 가정과 회중을 위한 책이 된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매튜는 런던의 법학원 그레이스 인(Gray's Inn)에서 잠시 법을 공부했지만 결국 목회의 길을 택했고, 1687년 런던에서 장로교 목사들에게 안수를 받았습니다. 같은 해 그는 잉글랜드 서북부의 도시 체스터에서 비국교도 회중을 맡아 스물다섯 해 동안 섬겼습니다. 1689년 관용령으로 비국교도의 예배가 법으로 허용되자 그의 회중도 자기 예배당을 지어 모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1712년 그는 런던 근교 해크니의 회중으로 옮겼으나, 1714년 6월 체스터를 다녀오던 길에 낸트위치에서 병으로 쓰러져 쉰한 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헨리는 학자이기보다 목자였습니다. 평생 설교하고 가르쳤으며, 기도의 말을 성경 구절로 엮은 『기도의 방법』(A Method for Prayer, 1710)과 아버지의 전기도 남겼습니다. 그의 신학은 청교도의 개혁파 신앙, 곧 영국 장로교회가 받아들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신앙입니다(이 전통은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에서 더 다룹니다). 그러나 그는 그 신앙을 날카로운 논쟁보다 따뜻한 경건으로 전한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큰 주석과 간추린 주석

헨리는 1704년 무렵부터 성경 전체를 차례로 풀이하는 주석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신구약 강해』(Exposition of the Old and New Testaments)라는 이 책은 창세기부터 몇 권씩 나뉘어 나왔고, 그는 세상을 떠날 때 사도행전까지 마쳤습니다. 로마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는 그가 남긴 메모와 글을 참고하여 여러 비국교도 목사가 나누어 맡아 완성했습니다. 그렇게 여섯 권에 이르는 큰 주석이 되었고, 이 책은 영어권 교회에서 가장 널리 읽힌 성경 주석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19세기 런던의 설교자 찰스 스펄전은 모든 목회자가 이 주석을 적어도 한 번은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어야 한다고 권했습니다.

이 앱에 실린 『간추린 주석』(Concise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은 이 큰 주석을 줄인 책입니다. 헨리가 손수 줄인 것은 아닙니다. 큰 주석에는 그가 죽은 뒤에 완성된 부분까지 들어 있으니, 간추린 주석은 그 뒤에 다른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앱이 받은 본문은 크로스와이어(CrossWire) 성경 모듈의 공유 저작물 판으로, 기독교 고전 전자도서관(CCEL)의 본문을 따릅니다. 이 본문은 누가 언제 줄였는지 밝히지 않으므로 이 글도 거기까지만 말하겠습니다. 다만 줄인 사람은 새 글을 쓰기보다 헨리의 문장을 골라 다듬고 이어 붙인 것으로 보이며, 그래서 분량은 크게 줄었어도 헨리의 목소리가 그대로 들립니다.

그 흔적을 앱 안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첫 절에서 헨리는 사람으로 지음 받은 우리의 모습과 자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본분, 곧 "언제나 하늘을 눈여겨보며 땅을 발아래 두어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창 1:1. 같은 절에 대한 웨슬리의 주해에도 거의 같은 문장이 있습니다. "늘 하늘을 눈에 두고 땅을 발아래 두는 것임을 일깨워 주기를 바랍니다" 웨슬리, 창 1:1. 우리말로는 따로 옮겨져 조금 달라 보이지만 영어 원문은 몇 낱말만 다른 같은 문장입니다. 둘 다 헨리의 큰 주석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존 웨슬리는 예정론에서는 헨리와 생각이 달랐지만, 구약 주해를 쓰면서 헨리의 큰 주석을 많이 줄여 옮겨 썼습니다. 이 이야기는 웨슬리 주해에서 더 다룹니다.

줄인 책이니 큰 주석의 유명한 대목이 빠진 곳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와를 아담의 머리도 발도 아닌 옆구리에서 지으신 것은 여자가 남자를 다스리지도 남자에게 짓밟히지도 않고, 그와 동등하게 곁에서 보호받고 사랑받게 하려 하심이라는 널리 알려진 말은 큰 주석에 있는 말이고, 이 앱의 창세기 2장 주석에는 없습니다. 또 간추린 주석의 로마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는 헨리가 끝까지 쓴 글이 아니라 그의 뒤를 이은 목사들이 완성한 부분을 줄인 것입니다. 앱은 이 부분도 ‘매튜 헨리’라는 이름 아래 보여 주니, 서신서와 계시록을 읽을 때는 이 점을 기억해 두면 좋습니다.

헨리가 성경을 읽는 방식

헨리는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지 짧게 짚은 뒤 곧 ‘그러니 우리는’으로 넘어갑니다. 그의 관심은 낱말의 역사나 본문의 배경보다, 이 말씀이 오늘 읽는 사람의 영혼과 삶에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을 위로하는가에 있습니다. 주기도문의 넷째 간구를 풀면서 그는 "여기 있는 모든 말에 교훈이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매튜 헨리, 마 6:11, 실제로 낱말 하나하나에서 교훈을 끌어냅니다. 양식을 구하니 절제를 배우고, ‘우리의’ 양식을 구하니 정직과 근면을 배우며, ‘일용할’ 양식을 구하니 날마다 하나님의 섭리를 의지하기를 배운다는 식입니다. 본문을 풀어 교리를 세우고 그 교리를 삶에 적용하는 청교도 설교의 오랜 방식이 짧은 문단 안에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그 적용은 분명한 교리 위에 서 있습니다.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풀면서 헨리는 중생이 사람의 결심이 아니라 성령의 일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이 우리 안에, 또 우리를 위하여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매튜 헨리, 요 3:3. 로마서 8장에서 미리 아심과 예정과 부르심과 칭의와 영화로 이어지는 순서는 그에게 "끊어질 수 없는 황금 사슬"입니다 매튜 헨리, 롬 8:30. 은혜로 택하시고 효과 있게 부르시며 끝까지 지키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는 개혁파의 구원론입니다(효과적 부르심과 성도의 견인). 다른 전통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대목을 어떻게 달리 읽는지는 예정이란 무엇인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헨리에게 교리는 머리로만 아는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요한복음 3장에서 그는 사람들이 빛을 피하는 까닭을 한 문장으로 꿰뚫습니다. "죄를 사랑하므로 그리스도가 미움을 받습니다" 매튜 헨리, 요 3:20. 십자가 위의 강도 이야기에서는 위로와 경고를 한 숨에 말합니다.

참된 회개는 결코 늦지 않다는 것은 확실하나, 늦은 회개가 참된 경우는 드물다는 것도 그만큼 확실합니다.

매튜 헨리, 눅 23:42

이렇게 짝을 이룬 짧은 문장, 생활에서 끌어온 비유, 오래 마음에 남는 경구가 헨리 글의 특징입니다. 같은 단락에서 그는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는 보좌 위의 그리스도처럼 은혜로우십니다"라고 말하고 매튜 헨리, 눅 23:43, 시편 23편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두고는 "뱀의 그림자는 쏘지 못하고 칼의 그림자는 죽이지 못합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시 23:4. 죽음은 그리스도의 양들에게 그림자일 뿐이라는 위로를 한 줄로 기억하게 하는 솜씨입니다.

헨리는 구약을 그리스도를 향해 읽습니다. 시편 서론은 모든 시편이 그리스도를 곧바로 가리키거나 신자의 생각을 그분께로 이끈다고 말하고, 아가 서론은 이 책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을 신랑과 신부의 모습으로 그린 거룩한 비유라고 소개합니다. 역사 이야기에서도 그는 자주 영혼의 이야기를 봅니다. 처음 땅이 형태 없이 비어 있었다는 말씀을 두고 그는 "이와 같이 영혼 속에 있는 은혜의 사역은 새 창조입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창 1:2. 이런 읽기는 카테나 아우레아에 모인 교부들 이래 교회가 오래 해 온 읽기와 이어져 있습니다. 다만 본문의 첫 뜻과 거기서 끌어낸 적용을 구별하며 읽는 것이 좋습니다.

헨리는 큰 주석에서 장마다 내용을 몇 갈래로 나누어 제목을 붙였고, 간추린 주석도 장마다 ‘장 개요’로 그 장의 뼈대를 먼저 보여 줍니다. 요한복음 3장이라면 니고데모와의 대화(1–21절)와 세례 요한의 증언(22–36절) 두 단락으로 나뉘고, 주석도 그 단락을 따라 이어집니다. 헨리에게 한 절은 언제나 한 단락과 한 장, 그리고 성경 전체의 흐름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풀이가 향하는 곳은 하나입니다.

오직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너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약 1:22

이 말씀을 풀며 헨리는 "우리를 하늘로 데려가는 것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걷는 것입니다"라고 맺습니다 매튜 헨리, 약 1:25. 그의 주석은 성경을 더 많이 아는 것보다 성경대로 사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좋은 점과 한계

간추린 주석이 가장 빛나는 자리는 묵상입니다. 한 단락을 읽고 헨리의 글을 읽으면, 그 말씀에서 오늘 붙들 한 문장을 거의 언제나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위로할 곳에서 위로하고 경고할 곳에서 경고하며, 어느 본문에서든 그리스도와 은혜와 거룩한 삶으로 이끕니다. 설교나 성경 공부를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적용의 실마리를 주고, 가정 예배에서 한 장을 읽은 뒤 함께 나눌 말을 줍니다.

또 이 주석은 성경 전체를 다룹니다. 이 앱의 주석 가운데 66권 1,189장을 모두 다루는 것은 이것 하나뿐입니다. 카테나 아우레아는 네 복음서만, 웨슬리 주해는 몇 권을 빼고 다룹니다. 레위기의 제사 규례에서도, 역대기의 족보에서도, 소선지서의 짧은 예언에서도 헨리는 할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은 대체로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가 함께 지켜 온 신앙, 곧 성경의 권위와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과 그리스도 중심의 경건 위에 서 있습니다. 이 앱의 질문과 배우기 글들이 가장 자주 인용하는 주석도 매튜 헨리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300년 전 영국 목사의 책이고, 그것도 줄인 책입니다. 첫째로 헨리는 근대 성경학이 자리 잡기 전에 썼습니다. 성경 각 권의 저자와 연대는 전해 오는 대로 받아들였고, 예컨대 욥기 서론에서는 욥기를 욥 자신이 썼을 가능성이 크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책이라고 말합니다. 고대 근동의 문서와 고고학 발굴, 성경 사본의 새 발견, 히브리어와 헬라어 연구의 진전은 모두 그 뒤에 왔습니다. 그러니 역사와 지리와 언어에 관한 그의 설명은 그 시대의 지식으로 읽어야 하고, 그런 물음에는 새 연구서가 더 나은 답을 줍니다.

둘째로 헨리가 풀이한 성경은 1611년의 영어 킹제임스 역본입니다. 그래서 오늘 학자들이 세운 본문과 다른 곳이 있습니다. 요한일서 5장 7절에서 하늘에서 증언하는 세 분,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을 말하는 구절은 영어 킹제임스 역본과 그것을 옮긴 우리말 흠정역에는 있지만 개역한글에는 없습니다. 헨리는 이 구절을 풀면서도 "그러나 이 구절이 인용되든 아니든, 일체 안에 삼위가 계신다는 교리는 마찬가지로 견고하고 확실합니다"라고 덧붙입니다 매튜 헨리, 요일 5:7. 본문을 둘러싼 논란을 의식한 듯, 교리를 한 구절에만 걸지 않는 신중함입니다.

셋째로 간추린 주석은 짧습니다. 큰 주석이 이유를 대고 여러 해석을 견주던 곳에서 간추린 주석은 결론만 남길 때가 많고, 히브리어나 헬라어 낱말에 대한 설명도 거의 없습니다. 어려운 구절의 뜻을 하나하나 따지는 전문 주석이 아니라 경건한 강해입니다. 낱말의 뜻은 원어 탭에서, 본문의 다른 해석은 다른 주석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넷째로 헨리는 개혁파 장로교인으로서 읽습니다. 예정과 부르심은 위에서 본 대로 풀고, 성찬의 "이것이 내 몸이니라"를 두고는 "곧 영적으로 그것이 그분의 몸을 의미하고 나타낸다는 뜻입니다"라고 풉니다 매튜 헨리, 마 26:26. 이것은 개혁파의 성찬 이해이고(성찬: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와 루터교회는 같은 말씀을 달리 읽습니다. 웨슬리를 따르는 감리교 전통은 예정을 달리 이해합니다. 이런 곳에서 헨리는 여러 전통 가운데 한 전통의 목소리입니다. 여러 전통의 이해는 세례와 성찬은 무엇인가?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다섯째로 그 시대의 견해가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다니엘서와 데살로니가후서와 요한계시록에서 이 주석은 적그리스도와 큰 바벨론을 교황권과 로마로 봅니다 매튜 헨리, 살후 2:5 매튜 헨리, 계 17:5. 종교개혁 이후 많은 개신교인이 그렇게 읽었고, 1647년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도 교황을 적그리스도라 불렀습니다(25장 6항). 그러나 그 뒤 여러 장로교회가 이 구절을 고치거나 그 말에서 거리를 두었고, 가톨릭 신자에게 이런 대목은 아픈 말입니다. 유대 민족에 대해서도 이 주석은 그 피를 자기와 자손에게 돌리라던 무리의 외침이 그 민족이 겪은 고난으로 응답되었다고 말하는 등 그 시대 그리스도인의 거친 말을 담고 있습니다 매튜 헨리, 마 27:25. 동시에 장차 이스라엘이 그리스도께 돌아오리라는 소망도 분명히 말합니다 매튜 헨리, 롬 11:26. 오늘 많은 교회는 유대 민족 전체가 저주 아래 있다는 생각을 버렸고, 그런 생각이 낳은 아픈 역사를 기억합니다.

이런 한계는 헨리를 덜 읽을 이유가 아니라 어떻게 읽을지를 알려 주는 표지입니다. 그는 자기 시대의 목사로서 자기 시대의 지식으로 썼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대로 살게 하는 일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이 앱에서 보기

성경을 읽다가 구절을 누르면 화면 아래에 막대가 나타나고, 거기서 ‘원어·주석’을 누르면 원어·주석·관주·용어 네 탭이 있는 창이 열립니다. 주석 탭에서 맨 앞의 ‘매튜 헨리’를 고르면 그 절이 들어 있는 단락의 주석이 나옵니다. 복음서에서는 교부들의 카테나가, 대부분의 책에서는 웨슬리가 나란히 있어 곧바로 견주어 볼 수 있습니다.

헨리의 주석은 절마다가 아니라 단락마다 있습니다. 한 단락은 평균 일고여덟 절이고 한 절만 다루는 단락은 드뭅니다. 그래서 주석 탭은 고른 절이 속한 단락 전체를 요한복음 3:1-21 같은 제목 아래 보여 주고, 그 위에 그 장의 장 개요를 접어 둡니다. 대부분의 책은 첫 장의 장 개요 앞에 그 책 전체에 대한 짧은 서론도 두었습니다.

먼저 나오는 것은 우리말 번역입니다. 요약이 아니라 영어 원문의 모든 문장을 옮긴 번역이며, 주석이 성경을 인용하는 곳에서는 개역한글의 말씀을 그대로 씁니다. 그래서 흠정역으로 읽고 있다면 주석 속 인용이 본문과 조금 달라 보일 수 있습니다. 헨리가 읽은 성경은 흠정역의 바탕인 킹제임스 역본이니, 영어 원문의 인용은 오히려 흠정역에 가깝습니다. ‘원문 보기’를 누르면 헨리의 영어가 나오고 ‘번역 보기’를 누르면 우리말로 돌아옵니다. 뜻이 걸리는 문장은 원문과 견주어 보십시오.

주석 속의 성경 구절 표시는 링크여서, 누르면 그 구절이 지금 읽는 번역으로 열립니다. 주석 탭 아래의 ‘이 장의 주석 전체’를 누르면 그 장의 주석 페이지(/study/jhn/3/ 같은 주소)로 갑니다. 요한복음 3장 주석 같은 제목의 이 페이지에는 그 장을 다루는 주석이 모두 단락 순서대로 실려 있고, 단락마다 영어 원문이 접혀 있습니다. 앞뒤 장의 주석으로 넘어가거나 본문으로 돌아갈 수 있고, 읽던 곳은 읽은 기록에 남으며 북마크도 할 수 있습니다.

그 밖에 검색의 주석 결과에서도 헨리의 글을 찾을 수 있고, 설정의 오프라인 저장에서 원어·주석·관주·용어 자료를 내려받으면 인터넷 없이도 읽을 수 있습니다. 질문과 배우기 글에 있는 ‘매튜 헨리’ 링크를 누르면 그 절의 주석이 바로 열립니다. 주석 맨 아래의 이름을 누르면 영어 본문을 공개하는 CCEL의 페이지가 열리고, 출처는 설정의 원어·주석 자료에 있습니다.

잘 읽는 법

먼저 말씀을 읽으십시오. 본문을 천천히 읽고 무엇을 말하는지, 무엇이 궁금한지 스스로 물은 다음 헨리를 펴면, 그의 글이 내 물음에 답하기도 하고 내가 못 본 것을 보여 주기도 합니다. 주석을 먼저 읽으면 본문을 헨리의 눈으로만 보기 쉽습니다. 주석을 읽는 일반적인 원칙은 주석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읽는가에서, 성경 읽기 자체는 성경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서 다룹니다.

단락 안에서 내 절을 찾으십시오. 헨리는 단락 전체를 순서대로 풀기 때문에 고른 절에 대한 말은 단락의 중간이나 끝에 있을 수 있습니다. 시편 23편이라면 1절의 목자에서 시작해 4절의 골짜기와 5절의 상을 지나 6절의 여호와의 집에 이릅니다. 긴 단락은 본문을 옆에 두고 한 절씩 짝지어 읽으면 따라가기 쉽습니다.

한 문장을 붙드십시오. 헨리의 글은 훑어볼 때보다 천천히 곱씹을 때 좋습니다. 배우자를 고르는 일을 두고 한 "평생을 위해 하는 일은 잘 해야 합니다"라는 말처럼 매튜 헨리, 창 2:24, 마음에 닿는 한 문장을 골라 그날 기억하고 기도로 바꾸어 보십시오. 그것이 시편이 말하는 묵상입니다.

그는 주의 율법을 기뻐하며 그분의 율법을 밤낮으로 묵상하는도다.

시 1:2

적용을 내 것으로 하십시오. 헨리는 늘 ‘우리’라고 쓰지만, 그 적용은 18세기 영국의 회중을 향한 것입니다. 가정 예배와 안식일 지키기와 근면 같은 경건의 모양은 그 시대의 옷을 입고 있으니, 그 적용이 오늘 내 자리에서는 무엇을 뜻하는지 한 번 더 물어야 합니다. 그 밑에 흐르는 말씀 사랑과 하나님 경외는 시대를 넘습니다.

본문으로 시험하십시오.

이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던 자들보다 더 고귀하여 온전히 준비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므로

행 17:11

헨리 자신이 이 구절에서 "그리스도의 교훈은 탐구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매튜 헨리, 행 17:11. 헨리의 말도 그렇게 살펴야 합니다. 그의 적용이 본문에서 곧바로 나오는지, 본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인지 물어보십시오. 아가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유로 읽거나 계시록의 짐승을 로마로 읽는 것처럼 본문을 넘어서는 풀이는, 한 시대와 한 전통의 읽기임을 알고 저울질하면 됩니다.

다른 목소리와 견주십시오. 복음서에서는 교부들을, 구약에서는 헨리에게 많이 빚진 웨슬리를 함께 읽으면 같은 본문이 여러 세기와 전통에서 어떻게 읽혔는지 보입니다. 헨리가 짧게 짚고 지나간 다른 구절은 관주 탭이(성경 관주: TSK), 그가 거의 다루지 않는 낱말의 뜻은 원어 탭이(STEPBible 원어 자료) 채워 줍니다.

끝으로 한 장을 통째로 읽어 보십시오. 주석 페이지에서 한 장의 주석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 장 개요의 뼈대 위에서 그 장 전체의 흐름이 보입니다. 가정 예배나 소그룹에서 한 장을 읽고 헨리의 한 단락을 함께 읽는 것도 좋습니다. 헨리 자신이 그런 자리에서 자랐고, 그의 주석도 그런 자리를 위해 쓰였습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