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과 참고 자료

STEPBible 원어 자료

영국 케임브리지의 성경 연구 기관 틴데일 하우스가 만들어 공개한 헬라어·히브리어 원문 분석과 사전입니다. 번역 성경 뒤에 어떤 원어 낱말이 있는지, 그 말이 성경 어디에 또 쓰였는지, 번역이 왜 서로 다른지를 살펴보는 데 좋습니다.

STEPBible과 틴데일 하우스

원어 탭을 열면 맨 아래에 ‘원어 자료: STEP Bible (CC BY 4.0)’이라는 작은 글씨가 있습니다. 이 탭에 나오는 헬라어와 히브리어 낱말, 낱말마다 붙은 문법 분석, 사전의 뜻은 모두 STEPBible에서 온 것입니다. STEP은 Scripture Tools for Every Person의 머리글자로, ‘모든 사람을 위한 성경 도구’라는 뜻입니다. 이름 그대로, 원어를 배우지 못한 사람도 성경 원문에 다가갈 수 있게 돕는 것이 이 일의 목적입니다.

STEPBible을 만든 곳은 영국 케임브리지의 틴데일 하우스(Tyndale House)입니다. 신약을 처음으로 헬라어에서 영어로 옮긴 16세기의 윌리엄 틴데일에게서 이름을 딴 이곳은 성경학 전문 도서관을 갖춘 연구 기관으로, 여러 나라의 학자들이 모여 성경의 언어와 본문과 역사를 연구합니다. 2017년에는 이곳 학자들이 새로 엮은 헬라어 신약 비평본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STEPBible은 이 연구소가 웹사이트(www.STEPBible.org)로 내놓은 무료 성경 공부 도구이면서, 그 도구 밑에 깔린 자료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 자료는 누구나 쓸 수 있도록 공개되어 있습니다. 파일 이름마다 ‘번역자를 위한’(Translators)이라는 말이 붙어 있는 데서 보듯, 본래는 세계 여러 언어로 성경을 옮기는 번역자들을 염두에 두고 정리한 것입니다. 이용 허락은 CC BY 4.0으로, 출처를 밝히면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앱도 그 허락 아래 STEPBible의 자료를 받아 원어 탭과 배우기의 헬라어·히브리어 과정을 만들었고, 설정의 ‘원어·주석 자료’에 그 출처를 밝혀 두었습니다.

앱이 쓰는 자료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신약의 헬라어 본문과 구약의 히브리어 본문으로, 모든 낱말에 사전형과 스트롱 번호와 문법 분석이 붙어 있습니다. 둘째는 그 번호로 찾아가는 짧은 사전 둘, 곧 헬라어 사전과 히브리어 사전입니다. 셋째는 문법 기호를 풀어 주는 표입니다. 앱은 이 표로 V-PAI-2S 같은 기호를 ‘동사 · 현재 · 능동태 · 직설법 · 2인칭 · 단수’ 같은 말로 바꾸어 보여 줍니다.

본문에 대해 조금 더 말하면, 신약에서 STEPBible은 판본 하나만 고르지 않고 주요 헬라어 판본들의 낱말을 한데 모은 뒤, 낱말마다 어느 판본에 있는지를 적어 두었습니다. 그 자료의 머리말은 신약 낱말의 약 94%가 거의 모든 사본에서 똑같다고 집계합니다. 이 앱은 그 가운데 현대의 비평본인 네슬레-알란트(Nestle-Aland, NA)와, 킹제임스 역본이 옮긴 헬라어를 1894년에 스크리브너가 다시 엮은 공인본문(Textus Receptus, TR)에 있는 낱말을 보여 주고, 한쪽에만 있는 낱말에는 NA나 TR 표시를 붙입니다. 구약은 현재 전하는 히브리어 구약 전체 사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레닌그라드 사본(1008년 무렵)을 따릅니다. 오늘날 학자들이 쓰는 히브리어 성경도 대부분 이 사본을 바탕으로 합니다. 다니엘 2–7장과 에스라 4–7장의 일부처럼 아람어로 쓰인 부분도 같은 방식으로 분석되어 있습니다.

낱말 하나에 붙은 정보

원어 탭에서 낱말 하나를 누르면 몇 가지 정보가 함께 나옵니다. 처음 보면 낯설지만, 하나씩 알고 나면 어렵지 않습니다.

원문. 구약은 대부분 히브리어로, 몇 장은 그와 가까운 아람어로 쓰였고, 신약은 1세기 지중해 세계에서 널리 쓰인 헬라어(코이네)로 쓰였습니다. 탭에 나오는 낱말은 본문에 쓰인 모양 그대로입니다. 헬라어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히브리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습니다.

사전형. 낱말은 문장 속에서 모양이 바뀝니다. 요한복음 21:15에서 예수께서 물으신 ἀγαπᾷς(네가 사랑하느냐)와 3:35의 ἀγαπᾷ(사랑하사)는 모양이 다르지만 같은 낱말 아가파오(ἀγαπάω)입니다. 사전에 올라 있는 이 기본 모양을 사전형(lemma)이라고 부릅니다. 히브리어는 ‘그리고’, ‘~에’ 같은 말이 앞에 붙고 ‘나의’, ‘그의’ 같은 말이 뒤에 붙어 한 낱말이 되기도 합니다. 시편 23:1의 רֹעִי[로이] 한 낱말이 ‘나의 목자’이고, 그 사전형은 ‘풀을 먹이다’라는 동사 라아(רָעָה)입니다.

스트롱 번호. 미국의 감리교 신학자 제임스 스트롱(1822–1894)은 1890년에 킹제임스 역본의 모든 낱말이 어느 구절에 나오는지 찾아볼 수 있는 큰 성구 사전(The Exhaustive Concordance of the Bible)을 펴냈습니다. 그는 책 끝에 히브리어 사전과 헬라어 사전을 붙이고, 원어 낱말마다 알파벳 순서로 번호를 매겼습니다. 히브리어(아람어 포함)는 1번부터 8674번까지, 헬라어는 1번부터 5624번까지입니다. 원어를 읽지 못하는 사람도 영어 낱말 옆의 번호만으로 그 뒤의 원어를 찾아갈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이 번호는 지금도 많은 성경 도구가 함께 쓰는 열쇠여서, 이 앱도 헬라어는 G, 히브리어는 H를 앞에 붙여 G0025처럼 적습니다.

확장된 번호. 스트롱의 번호 하나에 서로 다른 것이 함께 묶인 경우가 있습니다. STEPBible은 번호 뒤에 글자를 붙여 이들을 나누었습니다. 히브리어 חֶסֶד[헤세드]는 거의 언제나 ‘인자’를 뜻하는 헤세드(חֶסֶד)이지만, 레위기 20:17과 잠언 14:34 두 곳에서는 모양만 같은 다른 낱말, 곧 ‘수치’를 뜻하는 헤세드(חֶסֶד)입니다. 헬라어 Ἰησοῦς[이에수스]는 주 예수를 가리키는 G2424G와 여호수아를 가리키는 G2424I 등으로 나뉘어, 몇몇 사본이 마태복음 27:16에서 바라바 앞에 붙인 같은 이름도 주님과 다른 번호를 받았습니다. 한 낱말의 뜻을 나눈 경우도 있어서, πνεῦμα[프네우마]는 영을 뜻하는 G4151G와 바람이나 숨을 뜻하는 G4151H로 나뉩니다. 요한복음 21:15의 οἶδας(아시나이다)에 붙은 G6063처럼, 스트롱의 목록보다 큰 번호를 새로 받은 낱말도 있습니다.

문법 분석. 낱말마다 문장 속에서 어떤 모양인지를 적은 꼬리표가 붙습니다. 맨 앞은 품사이고, 헬라어 명사는 그다음에 격(주격·속격·여격·대격·호격)과 수와 성이, 동사는 시제·태·법·인칭·수가 차례로 옵니다. 히브리어 동사는 칼, 피엘, 히필 같은 줄기와 완료, 미완료, 연속 미완료 같은 형태를 보여 주고, 명사는 절대형인지 연계형인지를 보여 줍니다. 한 낱말에 붙은 접두사와 접미사는 +로 이어집니다. 시편 23:1의 רֹעִי는 ‘동사 · 칼 · 분사 · 남성 · 단수 · 연계형 + 접미사 · 인칭 · 1인칭 · 통성 · 단수’입니다. ‘풀을 먹이는 이’, 곧 목자에 ‘나의’가 붙은 것입니다. 아람어 부분에서는 동사 줄기가 ‘페알’처럼 아람어 이름으로 나옵니다.

인터리니어. 원문 낱말을 원문 순서대로 늘어놓고 낱말마다 그 아래에 짧은 뜻을 단 것을 인터리니어(interlinear, 행간 대역)라고 부릅니다. 시편 23:1은 히브리어로 네 낱말이고, 한국어 화면에서는 ‘여호와’, ‘풀을 먹이다’, ‘아니’, ‘부족하다’가 차례로 달립니다. 이것은 번역이 아닙니다. 낱말 순서도 원문 그대로이고, 한국어 화면의 뜻은 그 구절에서의 번역이 아니라 사전형의 짧은 뜻입니다. 이 뜻들을 이어 우리말 문장을 짓고, 풀을 먹이는 이를 ‘목자’로 옮기는 일은 번역자가 합니다. 인터리니어는 번역을 대신하지 않고, 번역이 원문의 어느 말을 어떻게 옮겼는지 들여다보게 해 줍니다. 이 탭의 한 줄을 읽는 법은 원어 패널 사용법에서 차근차근 배울 수 있습니다.

두 사전

낱말을 누르면 그 번호의 사전 항목이 이어서 나옵니다. 항목은 사전형과 음역과 번호, 한두 낱말의 짧은 뜻, 그리고 긴 정의로 되어 있습니다. 짧은 뜻은 그 낱말을 대표하는 뜻을 하나 적은 것이고, 긴 정의는 그 낱말이 쓰이는 여러 갈래의 뜻을 성경 구절과 함께 풀어 놓은 것입니다.

헬라어 사전은 거의 모두 조지 애벗스미스(George Abbott-Smith)가 1920년대 초에 펴낸 『신약 헬라어 사전』(A Manual Greek Lexicon of the New Testament)에서 왔고, 정의 끝의 (AS)가 그 표시입니다. 이 사전은 먼저 그 낱말이 칠십인역, 곧 구약의 헬라어 번역에서 주로 어떤 히브리어를 옮긴 말인지 적고, 이어서 뜻을 갈래지어 대표 구절을 달며, 끝에 비슷한 말과의 차이를 적습니다.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의 항목은 이 말이 칠십인역에서 주로 이스라엘의 회중을 뜻하는 קָהָל[카할]을 옮겼다고 말한 뒤, 시민의 집회, 이스라엘의 회중, 그리스도인의 모임인 교회의 순서로 뜻을 풀어 갑니다. 신약의 ‘교회’라는 말이 구약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과 이어져 있음을 사전이 보여 주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사전은 20세기 초의 BDB 사전(브라운·드라이버·브릭스의 히브리어·영어 사전)을 줄인 판에 바탕을 둔 짧은 정의이고, 사람과 장소의 이름은 STEPBible이 성경의 인물과 지명을 하나하나 가려 정리한 자료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어 항목은 헬라어 항목보다 짧은 것이 많습니다. 헤세드의 정의는 선함, 인자, 신실함이라는 한 줄입니다.

한국어 화면은 정의를 우리말 번역으로 먼저 보여 주고, ‘원문 보기’를 누르면 영어 원문을 보여 줍니다. 짧은 뜻도 우리말로 나오며, 히브리어 인명과 지명의 우리말은 개역한글의 이름을 따릅니다. 정의 속의 성경 구절 표시는 링크여서, 누르면 지금 읽는 번역으로 그 구절이 열립니다. 번역이 걸리는 문장은 영어 원문과 견주어 보십시오.

사전도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애벗스미스는 아가파오 항목 끝에서, 추정되는 어원 때문에 이 말이 흔히 존중에 바탕을 둔 사랑으로, 필레오(φιλέω)는 저절로 우러나는 정의 사랑으로 구별된다고 소개하면서도 ‘이 구별이 타당하다면’이라는 단서를 답니다. 앱의 루아흐(רוּחַ) 항목은 바람과 숨과 마음과 영으로 뜻을 갈래지어 나열하다가, 마지막 갈래에서 하나님의 영을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삼위이신 성령이라고 적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고백이 사전 안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사전은 학자들이 한 낱말의 쓰임을 어떻게 나누어 보았는지 보여 주는 지도이고, 그 지도에는 그린 사람의 이해가 담깁니다.

무엇에 좋고, 어디까지인가

원어 자료는 먼저 번역 뒤의 낱말을 보여 줍니다. 히브리서 4:8은 개역한글로 읽으면 여호수아가, 흠정역으로 읽으면 예수가 안식을 주었더라면 하고 말합니다. 어느 한쪽이 틀린 것이 아닙니다. 원어 탭을 열면 두 번역 뒤에 같은 Ἰησοῦς가 있습니다. 여호수아라는 히브리어 이름을 헬라어로 적으면 예수와 같은 이름이 되기 때문입니다. 킹제임스 역본과 그것을 옮긴 흠정역은 헬라어 이름을 그대로 옮겼고, 개역한글과 BSB는 문맥을 따라 백성을 가나안으로 이끈 여호수아로 옮겼습니다. 번호도 여호수아를 가리키는 G2424I입니다. 번역이 서로 다를 때 그 까닭이 원문에 있는지 번역자의 선택에 있는지를 이렇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같은 낱말이 어디에 또 쓰였는지도 보여 줍니다. 에클레시아의 ‘이 낱말이 쓰인 곳’을 열면, 예수께서 세우겠다고 하신 교회(마 16:18)와 함께 사도행전 19장에서 에베소 사람들이 연극장에 몰려든 소동이 나옵니다. 개역한글은 거기서 같은 낱말을 모인 무리, 민회, 모임으로 옮깁니다(행 19:32, 39, 41). 이 말이 본래 사람들이 함께 모인 무리를 가리키는 평범한 말이었고, 신약이 그 말로 그리스도께서 불러 모으신 백성을 불렀다는 것이 보입니다.

번역이 왜 서로 다른지도 알려 줍니다. 개역한글에서 시편 23:6의 인자하심과 호세아 6:6의 인애와 룻기 1:8의 선대는 다 다른 말이지만, 원문에서는 모두 헤세드입니다. 흠정역은 앞의 두 절에서 긍휼로, BSB는 mercy나 loving devotion으로 옮깁니다. 언약 관계 안에서 베푸는 변함없는 사랑과 신실함을 흔히 이 말의 뜻으로 보는데, 그것을 우리말 한 낱말에 다 담기는 어렵습니다. 240절 가까운 쓰임을 차례로 읽어 보면 어느 한 번역어보다 넓은 그 뜻이 몸에 익습니다.

그러나 원어 자료는 조심해서 써야 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첫째, 사전의 뜻이 모든 구절의 뜻은 아닙니다. 사전은 한 낱말이 쓰이는 여러 뜻을 모아 놓은 것이고, 한 구절에서 그 낱말은 대개 그 가운데 하나를 뜻합니다. 필레오의 항목에는 입 맞춘다는 뜻도 있어서,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줄 때 정한 표가 바로 이 낱말이었습니다(마 26:48). 그러나 요한복음 21장에서 베드로가 주께 입 맞추겠다고 말했다고 읽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전의 뜻을 한 구절에 한꺼번에 들여오는 것은 풍성하게 읽는 것이 아니라 잘못 읽는 것입니다. 이런 잘못을 ‘부당한 총체 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둘째, 어원이 뜻을 정하지 않습니다. 에클레시아가 ‘밖으로’와 ‘부르다’로 이루어진 말이라서 교회를 세상에서 불러낸 사람들이라고 풀이하는 설교를 자주 듣습니다(어근의 오류). 교회가 부르심을 받은 백성이라는 것은 성경이 여러 곳에서 가르치는 진리이지만, 그 진리가 이 낱말의 어원에서 나오지는 않습니다. 에베소의 시민들도 같은 낱말로 불렸습니다. 낱말의 뜻은 그 말이 실제로 어떻게 쓰였는지에서 옵니다. 뒤나미스(δύναμις)를 다이너마이트와 엮는 풀이는 같은 잘못을 거꾸로 저지르는 것입니다. 다이너마이트는 19세기에 이 헬라어에서 이름을 따온 폭약이니, 바울이 복음을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할 때 그것을 떠올렸을 리 없습니다. 히브리어의 세 글자 어근은 낯선 낱말을 알아보는 좋은 열쇠지만(세 글자 어근), 어근이 같다고 뜻이 같은 것은 아닙니다.

셋째, 문법 분석과 뜻 번호도 해석입니다. 꼬리표는 학자들이 본문을 분석한 결과이고, 대개는 의심할 것이 없지만 판단이 갈리는 곳도 있습니다.

바람이 마음대로 불매 네가 그것의 소리는 들어도 그것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에게서 난 사람도 다 이러하니라, 하시니라.

요 3:8

이 절의 바람과 성령은 원문에서 같은 πνεῦμα입니다. 예수께서는 한 낱말의 두 뜻을 겹쳐, 보이지 않으나 분명히 일하시는 성령을 바람에 비기셨습니다. 그런데 STEPBible은 이 절의 두 낱말에 모두 바람과 숨의 번호 G4151H를 붙였기 때문에, 성령에 해당하는 낱말에도 ‘숨, 호흡’이라는 뜻이 달립니다. 창세기 1:2의 루아흐에는 영의 번호가 붙었는데, 개역한글과 흠정역과 BSB는 이 절을 하나님의 신(영)으로 읽지만 하나님에게서 온 바람으로 옮기는 현대 번역도 있습니다. 시제도 그렇습니다. 부정과거는 그 자체로 ‘단번에’라는 뜻이 아닙니다(부정과거). 꼬리표가 무엇이라고 적었는지와 그것으로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넷째, 판본에 따라 낱말이 다른 곳이 있습니다. 주기도문 끝의 송영에는 원어 탭에서 모두 TR 표시가 붙어 있습니다. 공인본문에는 있고 네슬레-알란트에는 없다는 뜻입니다. 개역한글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을 괄호에 넣었고 (마 6:13), 흠정역은 본문에 두었으며, BSB는 넣지 않았습니다. 많은 교회가 이 송영으로 주기도를 마치지만, 어느 본문을 따를지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 사이에 생각이 다릅니다. 이 앱은 어느 쪽도 정하지 않고 두 본문의 낱말을 함께 보여 주며 표시만 붙입니다(읽기: 주기도문).

다섯째, 번역은 여전히 우리의 성경입니다. 성경을 옮기고 풀어 주는 일은 성경 안에서부터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에서 책에서 명료하게 낭독하고 의미를 알려 주어 그들로 하여금 그 낭독하는 것을 깨닫게 하니라.

느 8:8

개역한글과 흠정역과 BSB는 원어를 깊이 아는 많은 번역자가 이 모든 자료를 오래 저울질하여 내놓은 것이고, 짧은 뜻 하나로 그 결론을 뒤집을 수 있는 경우는 드뭅니다. 원어를 들여다본 결과가 모든 번역과 다르다면, 번역을 고치기 전에 내 읽기를 먼저 의심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원어 탭은 번역을 더 잘 이해하게 하는 창이고, 우리가 읽고 묵상하고 외우는 말씀은 여전히 번역된 성경입니다.

이 앱에서 보기

성경을 읽다가 구절을 누르면 화면 아래에 막대가 나타나고, ‘원어·주석’을 누르면 원어·주석·관주·용어 네 탭이 있는 창이 열립니다. 원어 탭에는 그 절의 원어 낱말이 원문 순서대로 놓이고 낱말마다 짧은 뜻이 달립니다. ‘목록으로 보기’를 누르면 낱말마다 한 줄씩 형태, 음역, 뜻, 번호, 문법이 나옵니다. 표제가 있는 시편은 1절을 고르면 ‘표제’ 아래 표제의 낱말이 먼저 나옵니다.

낱말을 누르면 형태와 음역, 뜻, 스트롱 번호와 문법 꼬리표가 나오고, 한 판본에만 있는 낱말에는 NA나 TR 표시가 붙습니다. ‘문법 배우기’는 그 꼬리표를 가르치는 과로 이어집니다. 이어지는 사전 항목에서 ‘이 낱말이 쓰인 곳’을 누르면 그 번호가 나오는 모든 절이 책별로, 지금 읽는 번역의 본문과 함께 나오고, 절을 누르면 그곳으로 갑니다.

구절을 고른 뒤 막대의 ‘비교’를 누르면 맨 위에 원문과 음역과 낱말별 뜻이, 그 아래에 개역한글, 흠정역, BSB, 킹제임스 역본이 함께 나옵니다. 거기서 ‘원어 자세히’를 누르면 원어 탭이 열립니다. 읽기 화면의 글자 설정이나 설정에서 ‘원어 줄 보기’를 켜면 절마다 본문 아래에 원어 낱말과 뜻이 나옵니다.

배우기의 헬라어 과정과 히브리어 과정은 각각 서른 과로, 같은 자료로 실제 구절을 한 낱말씩 읽어 갑니다. 과 안의 낱말을 누르면 형태와 음역, 뜻, 문법, 사전이 담긴 낱말 카드가 열리고, 기기의 현대 그리스어·히브리어 음성으로 들어 볼 수도 있습니다. 검색의 ‘원어’ 묶음과 용어 페이지의 ‘원어 낱말’, 이 글의 원어 링크도 같은 사전 항목을 엽니다. 설정 › 오프라인 저장에서 원어·주석·관주·용어 자료를 내려받으면 인터넷 없이도 볼 수 있습니다. 원어 탭 맨 아래의 출처를 누르면 STEPBible 사이트가 열립니다. STEPBible에는 이 앱이 보여 주지 않는 자료도 많아서, 여러 판본과 사본의 자세한 차이는 그곳에서 더 볼 수 있습니다.

잘 쓰는 법

먼저 번역으로 읽으십시오. 한 단락을 읽고 문맥을 잡은 다음, 궁금한 낱말 하나만 골라 원어 탭을 엽니다. 모든 낱말을 다 볼 필요는 없습니다. 짧은 뜻과 문법을 보고, 정의에서 뜻의 폭을 보고, ‘이 낱말이 쓰인 곳’에서 같은 책과 같은 저자의 쓰임부터 살핀 뒤, 다시 문맥으로 돌아와 판단은 문맥에 맡기십시오. 주석과 함께 읽는 법은 주석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읽는가에서 다룹니다.

요한복음 21장으로 연습해 봅시다. 부활하신 주님은 디베랴 바닷가에서 베드로에게 세 번 물으십니다.

세 번째 그에게 이르시되,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그분께서 자기에게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말씀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며 그분께 이르되, 주여,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 양들을 먹이라.

요 21:17

우리말 번역은 이 대화의 사랑을 모두 같은 말로 옮기지만, 원어 탭을 열면 두 낱말이 보입니다. 15절과 16절에서 예수께서는 아가파오로 물으시고 베드로는 필레오로 대답하며, 17절에서는 예수께서도 필레오로 물으십니다. 한국어 화면의 짧은 뜻은 둘 다 ‘사랑하다’이지만 번호가 다릅니다. 많은 해석자는 이 바뀜에 뜻이 있다고 보고 두 사랑의 차이로 베드로의 마음을 풀어 왔고, 다른 해석자들은 요한이 같은 뜻의 두 낱말을 번갈아 썼다고 봅니다.

원어 탭으로 살펴보면, 요한복음은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신다는 같은 말씀을 3:35에서는 아가파오로, 5:20에서는 필레오로 씁니다. 아가파오는 사람들이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일(3:19)과 데마가 이 세상을 사랑한 일(딤후 4:10)에도 쓰입니다. 같은 단락에서 요한은 양 떼를 먹이고 치는 두 동사와 어린 양과 양이라는 두 낱말을, 17절에서는 안다는 두 동사를 번갈아 쓰고, 사전도 두 사랑의 구별에 단서를 답니다. 이것만으로 어느 한쪽 해석이 정해지지는 않지만, 두 낱말의 차이에 너무 많은 것을 걸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해집니다. 어느 쪽으로 읽든 이 대화의 중심은, 세 번 주를 부인한 제자에게 주께서 세 번 물으시고 세 번 양 떼를 맡기셨다는 데 있습니다. 사랑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사랑이란 무엇인가?에서 더 다룹니다.

원어 탭의 꼬리표가 낯설면 배우기의 과정을 따라가 보십시오. 처음이라면 헬라어 알파벳 (1)이나 히브리어 알파벳 (1)부터 시작하고, 시편 23편을 원문으로 읽고 싶다면 읽기: 시편 23:1–3까지 가 보십시오. 원어를 조금 알면 번역이 얼마나 많은 수고의 열매인지 보이고, 번역이 더 고맙게 읽힙니다. 그리고 원어를 들여다보는 일은 결국 이 기도로 돌아갑니다.

주께서 내 눈을 여사 주의 법에서 나오는 놀라운 것들을 내가 보게 하소서.

시 119:18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