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읽는가
주석은 성경을 읽는 사람 곁에서 본문을 풀어 주는 안내자이지 성경이 아닙니다. 말씀을 먼저 읽고, 여러 시대와 전통의 목소리를 견주며, 모든 풀이를 본문으로 시험하는 법과 이 앱의 주석·관주·주제·원어 자료를 함께 쓰는 법을 소개합니다.
주석은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가
에디오피아 여왕의 내시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는 병거에 앉아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고, 성령의 지시를 받은 빌립이 그 곁으로 달려갔습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말은 성경을 읽는 모든 사람의 물음이기도 합니다.
빌립이 거기로 내시에게로 달려가 그가 대언자 이사야의 글을 읽는 것을 듣고 이르되, 그대가 읽는 것을 깨닫느냐? 하매 내시가 이르되, 누가 나를 지도해 주지 않으면 어찌 내가 깨달을 수 있으리요? 하고 빌립이 올라와 자기와 같이 앉을 것을 청하니라.
행 8:30-31
주석은 이 물음에 대한 교회의 오랜 대답입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 곁에 앉아 본문이 무슨 뜻인지 풀어 주는 글, 곧 성경 한 권을 단락이나 절을 따라가며 설명하고 적용하는 책을 주석이라고 합니다. 이 일은 성경 안에서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 앞에서 레위 사람들은 율법책을 읽고 "이와 같이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에서 책에서 명료하게 낭독하고 의미를 알려 주어 그들로 하여금 그 낭독하는 것을 깨닫게 하니라." 하였습니다 (느 8:8).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서 자기에 관한 것을 풀어 주셨습니다 (눅 24:27).
교회는 그 뒤로 이 일을 쉬지 않았습니다. 3세기의 오리게네스는 성경 여러 권을 차례로 풀이하는 긴 주석을 썼고, 4세기 말의 크리소스토무스는 복음서와 바울 서신을 단락마다 풀어 회중에게 설교했습니다. 중세의 학자들은 성경 본문의 여백과 행간에 교부들의 풀이를 적어 넣었고,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성경 각 권의 주석을 써서 설교자와 회중이 본문의 뜻을 따라가도록 도왔습니다. 그 뒤로 오늘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주석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주석은 성경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씀이고, 주석은 그 말씀을 읽은 사람의 말입니다. 성경은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서리라, 하라."고 말합니다 (사 40:8). 주석은 한 시대의 지식과 물음과 언어로 쓰였고, 틀릴 수 있습니다. 좋은 주석은 이것을 압니다. 매튜 헨리는 엠마오 길의 예수를 성경의 가장 훌륭한 해설자라고 부르면서, 그분이 "새로운 생각을 내놓으신 것이 아니라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이시고 그들을 성경의 열심 있는 연구로 돌이키게 하신 것입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눅 24:27. 주석이 할 일도 그와 같습니다. 성경에 새 말을 보태는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을 본문으로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성경과 그 풀이를 구별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함께 지키는 생각입니다. 다만 교회의 전승이 성경 해석에서 어떤 자리를 갖는지는 전통마다 다르게 말합니다. 루터교회와 개혁교회, 성공회처럼 종교개혁에서 나온 교회들은 성경만이 최종 규범이며 교부와 신경과 주석은 귀하지만 성경으로 시험받는다고 고백합니다. 가톨릭 교회는 성경과 거룩한 전승이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교회의 가르치는 직무가 이를 권위 있게 해석한다고 가르치며, 정교회는 교부들과 공의회와 예배로 이어져 온 전승 안에서 성경을 읽습니다. 이 차이는 성경의 영감과 권위에서 더 다룹니다. 그러나 어느 전통도 주석가 한 사람의 글을 성경과 같은 자리에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석을 읽을 때는 그것이 누구의 목소리인지 아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이 앱의 자료들도 저마다 한 시대와 한 전통에서 왔습니다. 카테나 아우레아는 13세기 도미니코회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초대 교회 이래 헬라와 라틴 교부들의 풀이를 모은 책이고, 매튜 헨리의 주석은 18세기 초 잉글랜드에서 청교도 전통의 장로교 목사가, 웨슬리 주해는 같은 세기에 감리교 부흥을 이끈 성공회 사제가 썼습니다. 관주와 주제 색인은 19세기 영어권 개신교인들이 킹제임스 역본을 따라 엮었고, 원어 자료는 오늘의 학자들이 만들었습니다.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고 읽으면 그 강점은 더 잘 보이고, 그 한계에는 덜 휘둘립니다.
말씀을 먼저, 문맥 안에서
주석을 잘 읽는 첫걸음은 주석을 잠시 덮어 두는 것입니다. 먼저 본문을 읽으십시오. 천천히, 할 수 있으면 두세 번 읽고, 누가 누구에게 말하는지, 무엇을 말하는지, 무엇이 놀랍고 무엇이 궁금한지 스스로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시편 기자처럼 기도하십시오.
주께서 내 눈을 여사 주의 법에서 나오는 놀라운 것들을 내가 보게 하소서.
시 119:18
웨슬리는 이 기도를 "주의 성령의 빛으로 내 마음을 밝히시고 모든 무지와 오류를 흩어 주소서"라고 풀어 씁니다 웨슬리, 시 119:18. 성경을 깨닫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고, 주석은 그 일을 돕는 손일 뿐입니다.
순서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주석을 먼저 읽으면 본문을 주석가의 눈으로만 보게 되기 쉽습니다. 그가 짚은 것만 보이고 그가 지나친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본문을 먼저 읽은 사람은 주석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내 물음에 답해 주는 곳,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보여 주는 곳, 그리고 이것이 정말 본문에 있는 말인지 되묻게 되는 곳이 보입니다. 매튜 헨리도 에디오피아 내시 이야기에서 이렇게 권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성경 기자들이 누구에 대해서, 무엇에 대해서 말하는지 자주 멈추어 묻는 것이 좋습니다" 매튜 헨리, 행 8:31.
다음은 문맥입니다. 한 절은 단락 안에, 단락은 장과 책 안에, 책은 성경 전체 안에 있습니다. 시와 율법, 역사와 예언, 복음서와 편지는 저마다 읽는 법이 다르고, 같은 말도 앞뒤에 따라 뜻이 달라집니다. 예수께서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거니와 그것들은 곧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라고 하신 말씀은 (요 5:39) 따로 떼어 읽으면 성경 공부를 권하는 말로만 들립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절은 그들이 생명을 얻으러 예수께 오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성경을 그토록 연구하면서도 성경이 가리키는 분께는 오지 않는 이들을 향한 안타까운 책망입니다. 카테나에서 크리소스토무스는 이 대목을, 그들이 "믿음 없이 성경을 읽기만 해도 구원받으리라고 생각하여 성경에서 많은 열매를 거두지 못했다"는 뜻으로 풉니다 크리소스토무스.
이 앱의 주석 탭이 고른 절 하나만이 아니라 그 절을 다루는 단락 전체를 보여 주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주석을 펴기 전에 그 단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주석 안에서 내 절을 찾으십시오.
여러 목소리를 듣고, 본문으로 시험하기
한 주석만 읽으면 한 사람의 시대와 전통이 곧 성경의 뜻처럼 느껴지기 쉽습니다. 여러 세기와 전통의 목소리를 견주어 보면, 무엇이 한 시대의 강조이고 무엇이 교회가 언제나 함께 읽어 온 뜻인지가 드러납니다. 이 앱에서는 세 주석이 모두 있는 복음서에서 그 일을 가장 쉽게 해 볼 수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눅 24:13-35)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교부들의 목소리가 먼저입니다. 3세기의 오리게네스는 두 제자의 뜨거워진 마음에서 "구주께서 하신 말씀이 듣는 이들의 마음을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불붙였음"을 봅니다 오리게네스. 8세기 잉글랜드의 수도사 베다는 모세와 선지자들이 그리스도를 말하였다면 이렇게 묻습니다. "이 성경들이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인지 찾지도 않고 고난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기를 바라는 그 영광에 이르기를 원하지도 않는 사람이 어찌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랑하겠습니까?" 베다 아우구스티누스와 테오필락투스는 주께서 떡을 떼실 때 제자들의 눈이 열린 일에서 성찬의 신비를 봅니다.
18세기 초의 매튜 헨리는 같은 대목에서 "복음 은혜의 금실이 구약의 온 직물을 관통하여 흐르고 있습니다"라고 쓰고 매튜 헨리, 눅 24:27, 둘이 함께 그리스도를 이야기하는 곳에 그분이 오셔서 셋째가 되어 주신다는 위로도 건넵니다. 웨슬리는 한두 문장으로 논리를 짚습니다. "너희의 의심을 일으키는 바로 이 고난들이 그분이 메시야이심의 증거입니다" 웨슬리, 눅 24:27.
천 년이 넘는 거리와 서로 다른 전통에도 이 목소리들은 한 가지에 뜻을 같이합니다. 구약 전체가 그리스도를 증언하며, 그렇게 읽는 법을 처음 가르치신 분이 부활하신 주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강조는 서로 다릅니다. 교부들은 본문에서 신비와 성례로 나아가고, 헨리는 읽는 사람의 경건과 교제로 적용하며, 웨슬리는 짧게 논리를 밝힙니다. 견주어 읽으면 그 차이가 보이고, 차이가 보이면 본문을 다시 보게 됩니다.
이 앱에 다 담기지 않은 목소리도 기억해 두십시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교부들을 존중하면서도 무엇보다 본문의 문자적이고 역사적인 뜻을 찾으려 했고, 그 전통이 청교도를 거쳐 헨리에게 이어졌습니다. 근대 이후의 학자들은 사본과 고대 언어와 역사 연구로 본문의 첫 뜻을 더 정밀하게 밝혀 왔습니다. 이 앱에는 현대 주석이 없고 원어 자료가 그 연구의 일부를 보여 줄 뿐이므로, 역사와 언어에 관한 물음은 새 연구서와 견주어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모든 풀이는 본문으로 시험해야 합니다.
이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던 자들보다 더 고귀하여 온전히 준비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므로
행 17:11
베뢰아 사람들이 성경으로 확인한 것은 사도 바울의 설교였습니다. 사도의 말도 그렇게 살폈다면 주석가의 말은 더욱 그렇습니다. ‘상고하다’로 옮긴 헬라어 아나크리노(ἀνακρίνω)는 빌라도가 예수를 조사할 때에도 (눅 23:14), 공회 앞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신문을 받을 때에도 (행 4:9) 쓰인 말입니다. 재판관이 증언을 따지듯 꼼꼼히 살핀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의심하는 마음으로 읽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웨슬리는 이 구절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 것과 진리에 대한 가장 정확한 탐구는 잘 어울립니다"라고 말합니다 웨슬리, 행 17:11.
주석을 읽다가 이런 물음을 던져 보십시오. 이 풀이는 본문의 말에서 나오는가, 그리고 문맥이 그것을 받쳐 주는가. 성경의 다른 곳과 어울리는가. 본문의 첫 뜻인가, 아니면 거기서 끌어낸 적용이나 비유적인 읽기인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에서 한 전통의 입장을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이 앱의 질문 글들이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하니 견주어 보십시오. 역사나 언어에 관한 설명이라면 그 뒤의 연구가 바로잡지는 않았는가.
바울의 권면은 주석에도 해당합니다.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선한 것을 굳게 붙들라." (살전 5:21). 본문에서 나온 좋은 것은 붙들고, 본문에서 멀어진 것은 내려놓으면 됩니다. 다만 낯설다는 이유만으로 버리지는 마십시오. 여러 세기의 교회가 함께 읽어 온 풀이는 나 혼자의 첫인상보다 무게가 있고, 시험은 겸손과 함께 갈 때 바른 시험이 됩니다.
네 가지 도움과 그 쓰임
이 앱이 성경 곁에 두는 도움은 네 가지이고, 하는 일이 저마다 다릅니다. 복 있는 사람을 두고 "그는 주의 율법을 기뻐하며 그분의 율법을 밤낮으로 묵상하는도다."라고 한 말씀으로 (시 1:2)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주석은 설명과 적용입니다. 한 사람이 단락을 따라가며 이 말씀이 무슨 뜻이고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글로 풀어 줍니다. 헨리는 이 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그 안에 담긴 큰 일들에 관하여 마음을 기울이고 생각을 고정하여 스스로 곰곰이 따져 보는 것입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시 1:2. 주석은 가장 많은 것을 주지만, 그만큼 주석가의 시대와 전통도 가장 많이 담고 있습니다.
관주는 성경으로 성경을 푸는 도구입니다. 한 절의 낱말과 구절마다 성경의 다른 곳을 짝지어 둘 뿐 설명은 하지 않으므로, 연결의 뜻은 읽는 사람이 찾아야 합니다. 시편 1편 2절의 관주는 묵상을 말하는 낱말 아래 여섯 곳을 모아 둡니다. 그 가운데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은 주야로 묵상하는 일이 기록된 대로 지켜 행하는 순종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수 1:8). 관주도 사람이 엮은 것이어서, 어떤 연결은 깊고 어떤 연결은 같은 낱말이 나온다는 것뿐일 수 있습니다.
주제 색인은 한 주제를 성경 전체에서 모읍니다. 이 절은 네이브의 열 개 주제에 들어 있고, 그 가운데 묵상은 성경에서 묵상을 말하는 구절 마흔두 곳을 한자리에 모읍니다. 관주가 한 절에서 출발해 가지를 뻗는다면, 주제 색인은 한 주제를 중심에 두고 흩어진 구절들을 불러 모읍니다.
원어 도구는 한 낱말이 무슨 뜻이고 어떻게 쓰이는지 보여 줍니다. 이 절에서 묵상한다고 옮긴 히브리어는 하가(הָגָה)입니다. 사전은 이 낱말을 중얼거리다, 말하다, 묵상하다, 신음하다 등으로 풀고, 이 낱말이 쓰인 스물네 절을 모두 보여 줍니다. 바로 다음 시편에서는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 데에 쓰였고 (시 2:1), 이사야서에서는 사자가 먹이를 움키고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쓰였습니다 (사 31:4). 성경의 묵상이 조용히 마음을 비우는 일이라기보다 말씀을 입으로 되뇌며 곱씹는 일에 가깝다는 것을 이 용례들이 보여 줍니다. 여호수아에게도 하나님은 율법책을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네 가지는 서로를 채웁니다. 원어는 낱말의 폭을 보여 주고, 관주는 성경이 같은 일을 어디서 또 말하는지 들려주며, 주제 색인은 그 가르침이 성경 전체에서 차지하는 자리를 보여 주고, 주석은 교회가 그 말씀을 어떻게 읽고 살아 왔는지 들려줍니다. 정해진 순서는 없지만, 본문에서 시작해 본문으로 돌아오십시오.
그리고 넷 모두 사람의 손을 거쳤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사전의 뜻풀이와 문법 분석도 학자들의 판단이고, 한 낱말의 뜻은 어원보다 실제로 쓰인 문맥에서 정해집니다. 낱말 하나 위에 교리를 세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주제 색인에도 엮은 사람의 읽기가 담깁니다. 네이브의 하나님의 말씀 항목은 요한복음 5장 39절을 ‘상고하라는 명령’이라는 소제목 아래 두는데, 킹제임스 역본과 그것을 옮긴 흠정역이 이 말씀을 명령으로 옮겼기 때문입니다. 개역한글과 BSB는 같은 말을 서술로 읽습니다. 헬라어의 이 형태는 어느 쪽으로도 읽을 수 있고, 이 앱의 원어 탭은 직설법으로 분석합니다. 이런 곳에서는 문맥이 판단의 열쇠가 됩니다.
이 앱에서 함께 보기
이 네 가지 도움은 한 화면에서 만납니다. 성경을 읽다가 구절을 누르면 화면 아래에 막대가 나타나고, 거기서 ‘원어·주석’을 누르면 원어·주석·관주·용어 네 탭이 있는 창이 열립니다. 창 안에서 앞뒤 절로 옮겨 갈 수 있고, 마지막에 본 탭이 다음에도 먼저 열립니다.
원어 탭에는 그 절의 헬라어나 히브리어 낱말이 차례로 나오고, 낱말마다 음역과 뜻과 문법이 붙어 있습니다. 낱말을 누르면 사전 항목이 열리고, 거기서 그 낱말이 쓰인 모든 절을 볼 수 있습니다. 헬라어 판본에 따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낱말에는 NA나 TR 표시가 붙습니다. 이 탭을 읽는 법은 배우기의 원어 패널 사용법에서 차근차근 익힐 수 있습니다.
주석 탭에서는 책에 따라 매튜 헨리, 교부들(카테나), 웨슬리 가운데 하나를 골라 그 절을 다루는 단락의 주석을 읽습니다. 헨리는 성경 전체에, 카테나는 네 복음서에, 웨슬리는 대부분의 책에 있습니다. 탭 아래의 ‘이 장의 주석 전체’를 누르면 그 장을 다루는 주석이 모두 단락 순서대로 실린 주석 페이지가 열립니다.
관주 탭에는 TSK의 참조가 그 절의 낱말 아래 묶여 나오고, 낱말 표시는 개역한글의 말로 붙어 있습니다. 참조를 누르면 그 말씀을 지금 읽는 번역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용어 탭에는 그 절이 들어 있는 네이브의 주제들과, 그 절을 다루는 질문 글이 있으면 그 글이 나옵니다. 주제를 누르면 그 주제와 관련 주제의 지도가 열리고, 원어 낱말과 대표 구절도 함께 나옵니다. 화면 아래 메뉴의 ‘용어’에서는 주제를 찾고, 관련 주제의 지도나 목록으로 둘러볼 수 있습니다.
주석과 사전의 뜻풀이는 우리말 번역으로 먼저 나오고, ‘원문 보기’를 누르면 언제든 영어 원문이 나옵니다. 번역은 요약이 아니라 원문의 모든 문장을 옮긴 것이지만, 뜻이 걸리는 문장은 원문과 견주어 보십시오. 헨리와 웨슬리의 영어는 그들이 직접 쓴 말이고, 카테나의 영어는 아퀴나스의 라틴어를 19세기에 옮긴 번역입니다. 주석 속의 성경 인용은 대체로 개역한글을 따르지만, 헨리와 웨슬리는 킹제임스 역본으로, 카테나는 라틴어 성경으로 읽었다는 것도 기억해 두십시오.
각 자료 아래 출처 표시 옆의 ‘이 자료는?’을 누르면 이 서재에서 그 자료의 안내 글이 열리고, 설정의 원어·주석 자료에는 모든 출처와 저작권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검색에서도 주석과 용어와 원어를 찾을 수 있고, 설정의 오프라인 저장에서 원어·주석·관주·용어 자료를 내려받으면 인터넷 없이도 볼 수 있습니다.
여섯 자료 안내
이 서재에는 여섯 자료의 안내 글이 있습니다. 각 글은 그 자료가 어디서 왔고 성경을 어떻게 읽으며, 무엇에 좋고 어디까지인지를 다룹니다.
매튜 헨리 간추린 주석은 잉글랜드의 비국교도 장로교 목사 매튜 헨리(1662–1714)가 쓴 큰 주석을 후대에 간추린 책입니다. 성경 66권 전체를 단락마다 따라가며 말씀을 믿음과 삶에 따뜻하게 적용하고, 그 바탕에는 청교도의 개혁파 신앙이 있습니다. 이 앱에서 성경 전체를 다루는 유일한 주석이고, 묵상과 가정 예배에 가장 좋은 길동무입니다. 시편 119편에서 그는 하나님의 율법과 복음의 기이한 일을 보려는 사람은 성령의 빛으로 깨닫게 해 주시기를 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매튜 헨리, 시 119:18.
카테나 아우레아는 13세기 도미니코회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네 복음서를 한 절씩 따라가며 헬라와 라틴 교부들의 풀이를 이어 붙인 책입니다. 이름은 ‘황금 사슬’이라는 뜻이고, 이 앱은 19세기에 존 헨리 뉴먼이 펴낸 영어 번역을 옮겼습니다. 한 절을 두고 아우구스티누스와 크리소스토무스와 베다가 차례로 말하므로 초대 교회와 중세 교회가 복음서를 어떻게 읽었는지 한자리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첫 절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로고스를 두고 "이 구절에서는 말씀으로 해석하는 편이 더 낫습니다"라고 하듯이 아우구스티누스, 교부들도 낱말을 꼼꼼히 따졌습니다. 복음서만 다루고, 비유적이고 영적인 읽기가 많으며,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전해진 글도 섞여 있다는 것을 알고 읽으면 좋습니다.
웨슬리 주해는 영국 국교회 사제로서 18세기 감리교 부흥을 이끈 존 웨슬리(1703–1791)가 평범한 신자들을 위해 쓴 짧은 주해입니다. 신약 주해는 독일의 경건주의 학자 벵겔의 주석에 많이 기대었고, 구약 주해는 헨리의 큰 주석을 줄여 쓴 곳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는 믿음과 마음과 삶의 거룩함을 강조하는 웨슬리 전통의 목소리입니다. 짧지만 따뜻해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을 두고 "이 짧은 문장은 성 요한에게, 그것을 쓰고 있던 그때에도, 온 세상이 가져다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달콤함을 가져다주었습니다"라고 씁니다 웨슬리, 요일 4:8.
성경 관주: TSK는 19세기에 나온 『성경 지식의 보고』(The Treasury of Scripture Knowledge)로, 그보다 앞서 캔, 브라운, 블레이니, 스콧 등이 성경에 달았던 관주를 모아 엮은 것입니다. 이 앱의 관주 탭에는 33만 개가 넘는 참조가 실려 있습니다. 설명 없이 성경으로 성경을 비추게 하므로 어느 전통의 독자에게나 쓸모가 있지만, 킹제임스 역본의 낱말을 따라 엮였고, 어떤 연결은 뜻보다 낱말이 같다는 데 기대고 있습니다. 이 앱은 TSK의 메모와 장 개요는 싣지 않고 참조만 보여 줍니다. 행 17:11의 관주를 열어 베뢰아 사람들이 상고한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따라가 보십시오.
네이브 주제별 성경은 미국 육군 군목 오빌 J. 네이브가 1896년에 펴낸 주제 색인입니다. 성경의 사람과 장소와 가르침을 주제로 나누고 소제목 아래 구절을 모았습니다. 이 앱의 용어에는 5,300개가 넘는 주제가 우리말 이름과 함께 들어 있고, 앱은 주제마다 관련 주제를 지도로 잇고 원어 낱말도 함께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나 베뢰아 같은 주제에서 시작해 보십시오. 19세기 미국 개신교인이 킹제임스 역본으로 엮은 것이니, 소제목과 분류에는 그 시대의 읽기가 담겨 있습니다.
STEPBible 원어 자료는 영국 케임브리지의 성경 연구 기관 틴데일 하우스가 공개한 자료입니다. 헬라어와 히브리어 원문의 낱말마다 사전형과 스트롱 번호와 문법 분석을 붙이고, 헬라어는 애벗스미스의 신약 사전을, 히브리어는 BDB를 줄인 사전을 바탕으로 한 사전 항목에 이어 줍니다. 원어를 배우지 않은 사람도 한 낱말이 무슨 뜻이고 어디에 쓰였는지 볼 수 있습니다. 엠마오 길에서 예수께서 성경을 자세히 설명하셨다는 말은 디에르메네우오(διερμηνεύω)인데, 같은 낱말이 방언을 통역하는 일(고전 14:27)과 이름을 번역하는 일(행 9:36)에도 쓰였습니다. 해석과 통역과 번역이 한 낱말 안에 있는 셈입니다. 원어를 차근차근 익히고 싶다면 배우기의 헬라어와 히브리어 과정이 도와줄 것입니다.
여섯 자료는 저마다 다르지만 한 가지를 위해 여기 있습니다. 엠마오의 두 제자가 겪은 일이 오늘 성경을 읽는 사람에게도 일어나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들이 서로 이르되, 그분께서 길에서 우리와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 기록들을 열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는
눅 24:32
주석은 그 길에서 잠시 곁에 서는 동행자입니다. 마음을 뜨겁게 하시는 분은 성경을 풀어 주시는 주님 자신입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