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9과

효과적 부르심과 성도의 견인

복음은 모든 사람을 부르지만, 성령께서는 그 말씀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마음속에서 효과적으로 부르셔서 새로 나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믿게 하십니다. 그렇게 부르신 이들을 하나님은 끝까지 지키시며, 흔들리는 확신도 다시 새롭게 하십니다.

모든 이를 향한 부르심, 마음 안의 부르심

로마서 8:30의 사슬에서 미리 정하심 바로 다음 고리는 부르심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는 자신이 예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자신이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자신이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 8:30). 개혁교회는 성경이 말하는 부르심을 둘로 나누어 이해합니다. 하나는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모든 사람에게 가는 바깥의 부르심이고, 다른 하나는 성령께서 그 말씀으로 마음 안에서 일하시는 효과적 부르심입니다. 예수께서는 "부름 받은 자는 많으나 선정된 자는 적으니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마 22:14). 같은 설교가 어떤 이에게는 미련하게 들리고 어떤 이에게는 생명이 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노니 그분은 유대인들에게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요 그리스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들에게나 그리스인들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권능이시요 하나님의 지혜이시니라.

고전 1:23-24

매튜 헨리는 로마서 8:30의 부르심을 두고 "이것은 효과적인 부르심이니, 우리의 목적이신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천국을 향하여 자아와 땅에서 부르시는 것"이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빌립보의 루디아가 그 예입니다. 강가에서 바울의 말을 듣던 여인들 가운데 루디아에 대해 누가는 "두아디라 시 출신의 자주색 옷감 장수로서 하나님께 경배하던 루디아라 하는 어떤 여자가 우리의 말을 들으매 주께서 그녀의 마음을 여시므로 그녀가 바울이 말하는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니라."고 기록합니다 (행 16:14). 바울은 말씀을 전했고, 마음을 여신 분은 주님이셨습니다. 매튜 헨리의 말대로 "그분의 말씀을 받아 믿도록 마음을 열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뿐입니다" 매튜 헨리.

설득하시고 능하게 하시는 성령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31문은 효과적 부르심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하시는 일로, 우리의 죄와 비참을 깨닫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우리 마음을 밝히시며, 우리의 의지를 새롭게 하셔서, 복음 안에서 값없이 제시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우리를 설득하시고 또 능하게 하시는 일입니다 소요리문답 제31문. 깨닫게 하심과 밝히심과 새롭게 하심이 모두 성령의 일이고, 그 끝에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예수께서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며 내게 오는 그를 마지막 날에 내가 일으키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요 6:44). ‘이끌다’로 옮긴 는 베드로가 그물을 육지로 끌어 올릴 때에도 쓰인 힘 있는 말입니다 (요 21:11). 그러나 이 이끄심은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버지께서 어떻게 이끄시는지 보십시오. 사람에게 필연을 지우심으로가 아니라 진리를 가르치심으로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0장도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가장 자유롭게 나아오되, 그분의 은혜로 기꺼이 원하게 되어 나아온다고 고백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0장. 도르트 신경은 이 은혜가 사람을 감각 없는 나무토막이나 돌덩이처럼 다루지 않고, 의지를 영적으로 살리고 고치며 부드럽고도 힘 있게 돌이킨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부르실 때 성령은 사람을 새로 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또 내가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고 새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 살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너희에게 살로 된 마음을 주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겔 36:26). 개혁교회는 이 거듭남이 믿음에 앞서고, 새로 난 사람이 회개하고 믿는다고 가르칩니다. 믿음은 우리 자신의 행위이지만 처음부터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도 믿음의 시작까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도의 예정. 웨슬리·아르미니우스 전통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행 은총이 응답을 가능하게 하며 은혜는 거부될 수 있다고 보고, 루터교는 회심이 오직 하나님의 일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은혜가 거부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 차이는 교리 과정에서 거듭남을 다룬 과에서 살펴보았습니다.

끝까지 지키시는 하나님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노니 그들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또 아무도 내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하리라.

요 10:27-28

효과적으로 부르신 이들을 하나님은 끝까지 지키십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7장은 하나님이 받아들이시고 효과적으로 부르시고 거룩하게 하신 이들이 은혜의 자리에서 완전히, 또 끝내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이 견인은 그들의 자유의지가 아니라 변하지 않는 선택의 작정, 그리스도의 공로와 중보, 그들 안에 거하시는 성령, 은혜 언약의 본질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7장. 베드로는 신자들이 "너희는 마지막 때에 드러내려고 예비된 구원에 이르도록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호받고 있느니라."라고 말하고 (벧전 1:5), 매튜 헨리는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은혜를 주실 뿐 아니라 영광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보존하십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어떤 피조물도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창조물이라도 능히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지 못하리라."는 것이 바울의 확신입니다 (롬 8:39).

그렇다면 성경의 엄한 경고는 무엇입니까? 히브리서는 빛을 받고 성령에 참예했다가 타락한 이들을 다시 새롭게 할 수 없다고 경고하고 (히 6:4-6), 바울은 "그런즉 스스로 서 있는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할지니라."고 합니다 (고전 10:12). 도르트 신경은 하나님이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게 하심으로, 또 말씀의 권면과 경고와 약속과 성례로 이 은혜의 일을 지키시고 이루신다고 말합니다 도르트 신경 다섯째 교리. 경고는 견인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깨어 있게 하시는 수단입니다.

신자도 넘어집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신자가 사단의 시험과 남은 부패와 은혜의 방편을 소홀히 함으로 큰 죄에 빠져 한동안 머물 수 있고, 그때 하나님의 노여우심을 사고 성령을 근심하게 한다고 정직하게 말합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예수께서는 그가 부인할 것을 아시고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쇠하지 않도록 기도하였은즉 너는 돌이킨 뒤에 네 형제들을 강하게 하라, 하시니"고 하셨습니다 (눅 22:32). 테오필락투스는 이 말씀을 두고 "시험 중에 영이 잎사귀를 떨어뜨렸어도 뿌리는 견고합니다"라고 씁니다 테오필락투스. 큰 죄를 지은 다윗도 "주의 구원의 기쁨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주의 자유로운 영으로 나를 떠받쳐 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시 51:12).

흔들리고 다시 서는 확신

견인과 확신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키시는 일은 변함이 없지만, 그것을 아는 우리의 확신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8장은 참된 신자도 확신에 이르기까지 오래 기다리며 많은 어려움과 씨름할 수 있고, 얻은 확신이 여러 모양으로 흔들리고 줄어들고 끊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하나님의 씨와 믿음의 생명은 결코 완전히 없어지지 않으며, 성령께서 때가 되면 확신을 다시 살리신다고 위로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8장. 그래서 확신은 선물이면서 힘써 구할 일입니다. 베드로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열심을 내어 너희를 부르신 것과 선택하신 것을 확고히 하라. 너희가 이것들을 행하면 결코 넘어지지 아니하리니"고 권하고 (벧후 1:10), 매튜 헨리는 "그리스도인들은 믿음과 선행으로 자기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확신하려고 힘쓰십시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들을 쓴 것은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하고 또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라.

요일 5:13

웨슬리·아르미니우스 전통, 루터교,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는 참된 신자도 믿음을 저버리고 떨어져 나갈 수 있으며 회개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 비교는 교리 과정의 성화와 견인 과와 구원은 잃을 수 있는가?에서 다룹니다. 개혁교회가 고백하는 견인은 방종의 허가가 아니라, 넘어진 이에게도 돌아갈 길이 열려 있다는 약속입니다. 우리를 붙드는 것은 우리의 붙듦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손입니다. 다음 단원에서는 하나님이 이 구원을 언약으로 베푸신다는 것을 봅니다.

연습

  1. 연습 1 / 7

    개혁교회가 말하는 바깥의 부르심과 효과적 부르심은 어떻게 다릅니까?

  2. 연습 2 / 7

    사도행전 16:14에서 루디아가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된 까닭은 무엇입니까?

  3. 연습 3 / 7

    소요리문답 제31문이 설명하는 효과적 부르심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4. 연습 4 / 7

    아우구스티누스는 요한복음 6:44의 아버지의 이끄심을 어떻게 설명합니까?

  5. 연습 5 / 7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7장에 따르면 성도의 견인은 무엇에 달려 있습니까?

  6. 연습 6 / 7

    베드로의 부인과 회복은 성도의 견인에 대해 무엇을 보여 줍니까?

  7. 연습 7 / 7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8장은 구원의 확신에 대해 무엇을 가르칩니까?

출처

  1. 웨스트민스터 총회,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647 —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요리문답(107문). 제1문: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과 창조, 구원, 십계명, 성례와 기도를 가르친다. 읽기
  2. 웨스트민스터 총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646 — 장로교회의 신앙고백. 성경, 하나님과 작정, 언약, 구원, 교회와 성례, 종말을 33장에 걸쳐 고백한다. 읽기
  3. 아우구스티누스, 성도의 예정 — 428–429년경. 믿음의 시작까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며, 예정은 그 은혜를 미리 준비하심이라고 가르친다.
  4. 도르트 총회, 도르트 신경 1619 — 항론파에 대한 개혁교회의 답. 무조건적 선택, 택자를 위한 속죄, 은혜로 말미암는 거듭남, 성도의 견인을 다섯 교리로 고백한다. 읽기

성경과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벨직 신앙고백, 도르트 신경)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개혁주의 신앙을 가르치되, 다른 전통의 견해도 공정하게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