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과 참고 자료

웨슬리 주해

감리교 부흥을 이끈 잉글랜드 국교회 사제 존 웨슬리(1703–1791)가 평범한 신자와 설교자를 위해 쓴 신구약 성경 주해입니다. 한두 줄의 짧고 분명한 주해로 낱말의 뜻을 짚고 은혜와 거룩한 삶으로 이끌어 주므로, 한 절씩 곱씹으며 읽는 데 좋습니다.

존 웨슬리와 감리교 부흥

존 웨슬리는 1703년 잉글랜드 동부 링컨셔의 작은 마을 엡워스에서 국교회 목사 새뮤얼 웨슬리와 수재나 웨슬리의 여러 자녀 가운데 하나로 태어났습니다. 다섯 살 때 목사관에 불이 나자 그는 아이들 가운데 마지막으로 이층 창문에서 가까스로 구출되었고, 훗날 자신을 불에서 꺼낸 나무에 견주며 이 일을 하나님의 건지심으로 기억했다고 전해집니다(슥 3:2). 옥스퍼드에서 공부한 그는 링컨 칼리지의 펠로가 되었고 국교회의 사제로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동생 찰스와 몇몇 학생이 함께 성경을 읽고 자주 성찬에 참여하며 감옥의 죄수와 가난한 이들을 찾아가는 작은 모임을 꾸렸는데, 생활을 규칙대로 꾸려 가는 그들을 사람들은 놀림 삼아 ‘메소디스트’라고 불렀습니다. 감리교인을 가리키는 영어 이름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1735년 그는 선교사로 북아메리카의 조지아 식민지에 갔으나 두 해 만에 실망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가는 배에서 만난 모라비아 형제단의 고요한 믿음은 그에게 자기에게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게 했습니다. 1738년 5월 24일 저녁, 런던 올더스게이트 거리의 한 모임에서 누군가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을 때, 웨슬리는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고 그리스도께서 자기 죄를 없애 주셨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일기에 적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것, 그리고 성령께서 그 사실을 마음에 증언하신다는 것은 이후 그가 평생 전한 가르침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듬해 그는 조지 휫필드의 권유로 브리스틀 근처의 들판에서 광부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 반세기 동안 그는 말을 타고 잉글랜드와 웨일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를 다니며 교회 밖에 있던 노동자와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회심한 이들을 작은 모임인 속회로 묶어 서로 돌보고 권면하게 했습니다. 동생 찰스는 그 부흥을 수천 편의 찬송으로 노래했습니다. 웨슬리는 1791년 런던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국교회의 사제로 남았고, 감리교회가 국교회에서 따로 선 것은 대부분 그가 죽은 뒤의 일입니다. 1885년 아펜젤러를 비롯한 미국 감리교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한국에도 감리교회가 시작되었고, 성결교회와 구세군과 나사렛교회도 웨슬리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신약 주해와 구약 주해

1753년 말 웨슬리는 목숨이 위태로울 만큼 앓았고, 회복하던 1754년 초에 신약 주해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신약성서 주해』(Explanatory Notes upon the New Testament)는 1755년에 나왔습니다. 서문에서 그는 이 책을 학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국어밖에 모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고 자기 영혼의 구원을 바라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쓴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주해는 될 수 있는 대로 짧게 하여 독자의 눈이 주해가 아니라 본문에 머물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킹제임스 역본을 여러 곳에서 고친 자기 번역도 주해와 함께 실었습니다.

같은 서문에서 웨슬리는 처음에는 자기 생각만 적으려 했으나 독일의 루터교 경건주의 학자 요한 알브레히트 벵겔(1687–1752)의 신약 주해 『그노몬』(1742)을 알고 나서 계획을 바꾸었다고 말합니다. ‘그노몬’은 해시계의 바늘처럼 가리키는 것이라는 뜻인데, 벵겔은 낱말 하나하나의 무게를 짧고 날카로운 문장으로 짚었습니다. 웨슬리는 그의 주해를 많이 옮기고 더 많이 줄여 썼으며, 국교회 학자 존 헤일린의 강의와 비국교도 목사 필립 도드리지와 존 가이즈의 주해에서도 가져왔다고 밝혔습니다. 요한일서 5장 7절에서는 본문을 둘러싼 논란을 두고 독자를 벵겔의 논증으로 돌려보내며, 그것이 "어떤 공정한 사람에게도 충분히 만족을 줄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웨슬리, 요일 5:7.

이 책은 한 사람의 묵상집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1763년 감리교 예배당의 표준 증서는 그 설교단에 서는 설교자가 웨슬리의 신약 주해와 설교집에 담긴 것과 다른 교리를 전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신약 주해는 설교집과 함께 감리교 교리의 표준이 되었고, 오늘날에도 여러 감리교회가 이 둘을 교리의 기준으로 꼽습니다.

구약 주해(Explanatory Notes upon the Old Testament)는 1765년부터 이듬해까지 세 권으로 나왔습니다. 이 책은 대부분 매튜 헨리의 큰 주석과 매튜 풀(1624–1679)의 『성경 주해』를 크게 줄이고 다듬어 엮은 것으로, 웨슬리 자신도 서문에서 헨리에게 크게 빚졌음을 밝혔습니다. 헨리와 풀은 모두 1662년 통일령 무렵 쫓겨난 이들의 전통에 선 개혁파 비국교도였으니, 웨슬리는 예정론에서 생각이 다른 이들의 글을 기꺼이 가져다 쓴 셈입니다. 창세기 첫 절의 주해에는 헨리의 문장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어서, 우리의 본분이 "늘 하늘을 눈에 두고 땅을 발아래 두는 것임을 일깨워 주기를 바랍니다"라고 맺습니다 웨슬리, 창 1:1.

그러나 그는 헨리를 그대로 옮기기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무엘상 19장 6절에서는 헨리의 말을 이름을 들어 인용하고 웨슬리, 삼상 19:6, 창세기 9장 4절에서는 피에 관한 헨리의 풀이를 두고 그것이 "본문에 너무도 명백한 폭력을 가하는 것"이라며 물리칩니다 웨슬리, 창 9:4. 그래도 구약 주해에서는 웨슬리 자신의 목소리보다 헨리와 풀의 목소리가 더 자주 들리고, 교리의 표준이 된 것도 신약 주해뿐입니다.

웨슬리가 성경을 읽는 방식

웨슬리의 주해는 본문의 낱말 몇 개를 적고 줄표 뒤에 짧은 설명을 붙이는 식으로 이어집니다. 요한복음 3장 1절의 주해는 "관원 - 대공회의 일원입니다"가 전부입니다 웨슬리, 요 3:1. 로마서 13장 10절에서는 사랑이 율법의 완성인 까닭을 한 문장으로 말합니다. "모든 악에서 막아 주는 바로 그 사랑이 우리를 모든 선으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웨슬리, 롬 13:10. 헨리처럼 한 단락을 풀어 설교하기보다, 벵겔처럼 낱말을 하나씩 가리켜 보이는 주해입니다.

구약 주해 서문에서 웨슬리는 성경을 읽을 때 늘 ‘믿음의 유비’, 곧 성경 전체를 꿰는 큰 가르침들의 연결과 조화를 눈여겨보라고 권합니다. 그가 꼽는 것은 원죄,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 새로 남, 그리고 안과 밖의 거룩입니다. 칭의에서 그는 종교개혁자들과 같은 말을 합니다. 사람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믿음이 행위여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며" 웨슬리, 롬 3:28, "믿음은 빈손으로, 개인의 공로를 내세울 것 없이 그 하늘의 복을 받습니다" 웨슬리, 엡 2:8. 그러나 그는 칭의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모든 죄악에서 모든 거룩으로 속사람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웨슬리, 요 3:7(거듭남과 성령의 내주).

은혜와 선택에서 웨슬리는 아르미니우스를 따르는 자리에 섰고, 말년에는 『아르미니우스 잡지』라는 월간지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은혜가 사람의 응답보다 먼저 온다고 믿었고, 그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을 ‘선행 은총’이라 부릅니다. 요한복음 1장 9절의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을 그는 "흔히 자연적 양심이라 불리는 것으로" 풉니다 웨슬리, 요 1:9. 사람이 제 본성으로 가졌다고 여기는 양심조차 그리스도께서 주신 빛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사람을 이끄시는 것도 억지가 아니라 "강하고도 부드러우나 여전히 거절할 수 있는 움직임"이라고 합니다 웨슬리, 요 6:44.

그래서 그는 선택을 믿음을 내다보신 선택으로 읽습니다. 에베소서 1장에서 택하심을 받은 이들은 "그분이 그리스도를 믿을 자로 미리 아신 이들입니다" 웨슬리, 엡 1:4. 로마서 8장 30절의 사슬도 정해진 사람들이 반드시 끝까지 간다는 말이 아니라고 하며, "그는 다만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한 걸음 한 걸음 하늘로 이끄시는 방법임을 단언할 뿐입니다"라고 맺습니다 웨슬리, 롬 8:30. 로마서 9장의 야곱과 에서는 두 민족의 이야기로 읽으며 "이것이 야곱이나 에서 개인에 관한 것이 아님을 살펴보십시오"라고 덧붙입니다 웨슬리, 롬 9:13.

개혁파 그리스도인들은 같은 본문을 달리 읽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하나님이 믿음이나 선행을 미리 보신 것을 조건으로 삼지 않고 오직 값없는 은혜로 택하셨다고 고백하고(3장 5항), 도르트 총회는 믿음 자체가 선택에서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답했습니다(도르트 신경의 다섯 교리). 헨리에게 로마서 8장 30절은 "끊어질 수 없는 황금 사슬"입니다 매튜 헨리, 롬 8:30. 웨슬리는 베드로전서 1장 2절에서 당시의 예정론을 "잔인한 사람 차별"이라고까지 부릅니다 웨슬리, 벧전 1:2. 그가 겨냥한 것은 거룩한 삶을 소홀히 하게 만든다고 그가 본 예정론이었지만, 개혁파 신앙고백도 택하심이 거룩함에 이르는 택하심이라고 가르치므로(엡 1:4) 개혁파 독자는 그 묘사에서 자기 신앙을 알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같은 주해에서 그는 하나님의 정하심 안에서 "약속과 의무는 손을 맞잡고 갑니다"라고도 말합니다 웨슬리, 벧전 1:2. 여러 전통의 이해는 예정이란 무엇인가?와 은혜와 선택에, 믿는 이가 은혜에서 떨어질 수 있느냐는 물음은 구원은 잃을 수 있는가?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웨슬리 전통의 또 다른 특징은 확신입니다.

성령께서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롬 8:16

웨슬리는 이 증거가 "그 자신의 영의 증거나 선한 양심의 증거와는 구별되는 증거"라고 풉니다 웨슬리, 롬 8:16. 내 삶을 돌아보고 미루어 아는 것만이 아니라, 성령께서 직접 하나님의 자녀임을 마음에 증언하신다는 것입니다. 개혁파도 성령으로 말미암는 확신을 가르치지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이 확신이 믿음의 본질에 속하지는 않아서 참된 신자도 오래 기다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18장 3항). 웨슬리 자신도 말년에는 아직 확신을 누리지 못한 이들의 믿음을 더 너그럽게 말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마지막은 그리스도인의 완전, 또는 온전한 성화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

마 5:48

헬라어 동사가 미래형이어서 웨슬리는 이 말씀을 명령이자 약속으로 읽어 ‘너희는 온전하게 될 것이니’로 옮기고, "원문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라고 덧붙입니다 웨슬리, 마 5:48. 그가 말하는 완전은 실수나 연약함이나 유혹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마음을 다스려 고의로 짓는 죄를 몰아내는 상태입니다(웨슬리, 『그리스도인의 완전』).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인 완전의 전부를 담고 있으며" 웨슬리, 골 3:14, 빌립보서 3장에서는 "온전한 사람과 온전하게 된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웨슬리, 빌 3:12. 경주에 알맞게 갖추어진 사람과 이미 상을 받은 사람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개혁파는 성화가 온 사람에게 미치지만 이 세상에서는 불완전하여 부패의 잔재가 남는다고 고백하고(13장 2항), 루터파는 그리스도인을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이 차이는 성화란 무엇인가?와 성화와 견인에서 견주어 볼 수 있습니다.

좋은 점과 한계

웨슬리 주해의 가장 큰 장점은 짧고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한 절을 읽고 한두 줄의 주해를 읽으면 그 절의 열쇠가 되는 낱말과 그 뜻이 곧 드러납니다. 성경을 처음 읽는 사람도 길을 잃지 않고, 설교나 성경 공부를 준비하는 사람은 본문의 요점을 한눈에 잡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짧은 글 속에 따뜻한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을 두고 그는 "이 짧은 문장은 성 요한에게, 그것을 쓰고 있던 그때에도, 온 세상이 가져다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달콤함을 가져다주었습니다"라고 씁니다 웨슬리, 요일 4:8.

이 주해는 또 18세기 복음주의 부흥이 성경을 어떻게 읽었는지 보여 줍니다. 죄를 깨닫는 것, 믿음으로 용서받는 것, 성령의 증언, 사랑 안에서 자라 가는 것이 성경 곳곳에서 되풀이됩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의 주해는 그 길을 한 문장에 담습니다. "자연인은 두려움도 사랑도 없고, 깨어난 사람은 사랑 없는 두려움이 있고, 그리스도 안의 어린아이는 사랑과 두려움이 있고, 그리스도 안의 아비는 두려움 없는 사랑이 있습니다" 웨슬리, 요일 4:18. 루터교인 벵겔과 개혁파 헨리와 국교회 학자들의 글을 한데 모은 이 책에는, 의견이 달라도 사랑 안에서 손을 잡자던 웨슬리의 넓은 마음도 배어 있습니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합니다. 첫째로 짧다는 장점은 곧 약점입니다. 어려운 구절도 한두 줄로 지나갈 때가 많고, 여러 해석을 견주거나 이유를 길게 대지 않습니다. 시편 23편 1절처럼 주해가 아예 없는 절도 있습니다.

둘째로 이 앱의 웨슬리 주해에는 빠진 곳이 있습니다. 앱이 받은 크로스와이어(CrossWire) 성경 모듈에는 사사기, 열왕기상, 요나서, 빌레몬서의 주해가 없어서 이 네 권에서는 웨슬리를 읽을 수 없습니다. 몇몇 장도 비어 있는데, 사무엘하 22장(시편 18편과 거의 같은 노래)이나 이사야 36, 37, 39장(열왕기하 18–20장과 겹치는 이야기)처럼 대부분 다른 곳과 겹치는 본문입니다. 웨슬리의 서문과 책 서론도 실려 있지 않습니다.

셋째로 18세기의 책입니다. 웨슬리는 근대 성경학 이전에 썼고, 요한일서 5장 7절에서는 벵겔을 따라 개역한글에 없는 하늘의 세 증인 구절을 참된 본문으로 받아들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벵겔의 계산을 따라 예언의 날수를 햇수로 헤아리고, 짐승의 때가 1836년에 끝나리라고 내다봅니다 웨슬리, 계 17:10. 그 해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다만 웨슬리는 계시록 주해를 맺으며 "서든 넘어지든 무엇이든 주의 판단으로 서고 넘어집니다"라고 기도하여 웨슬리, 계 22:21, 자기 계산을 하나님의 판단 아래 두었습니다. 마지막 때에 대한 여러 이해는 세상의 끝은 언제 오는가?에서 볼 수 있습니다.

넷째로 그 시대의 거친 말이 남아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는 헨리처럼 교황을 불법의 사람으로 보아 "교황은 그 칭호들에 대하여 논란의 여지 없는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웨슬리, 살후 2:3. 웨슬리는 가톨릭 신자에게 화해를 청하는 편지를 쓰기도 했지만, 가톨릭 독자에게 이런 대목은 아픈 말입니다. 마태복음 27장 25절에서는 무리의 외침이 그 뒤로 "그 비참한 백성을 줄곧 따라다닌 재앙으로" 응답되었다고 하면서도 웨슬리, 마 27:25, 로마서 11장에서는 온 이스라엘이 돌아올 때 이방인 가운데 더 큰 추수가 있으리라고 소망합니다 웨슬리, 롬 11:26. 오늘 많은 교회는 유대 민족이 저주 아래 있다는 생각을 버렸고, 그런 생각이 낳은 아픈 역사를 기억합니다.

이 앱에서 보기

성경을 읽다가 구절을 누르고 화면 아래 막대에서 ‘원어·주석’을 누르면 원어·주석·관주·용어 네 탭이 있는 창이 열립니다. 주석 탭 위쪽에서 ‘웨슬리’를 고르면 그 절에 대한 웨슬리의 주해가 나옵니다. 맨 앞은 매튜 헨리이고, 복음서에서는 교부들의 카테나가 그다음이며, 웨슬리는 그 뒤에 있습니다. 웨슬리 주해가 없는 네 권에서는 이 선택지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헨리가 단락마다 쓰는 것과 달리 웨슬리는 절마다, 때로는 두세 절을 묶어 씁니다. 그래서 주석 탭은 고른 절을 다루는 짧은 주해 하나를 요한복음 3:8-10 같은 제목 아래 보여 주고, 주해가 없는 절에서는 주석이 없다고 알려 줍니다. 몇몇 시편 앞에만 짧은 개요가 접혀 있습니다.

먼저 나오는 것은 우리말 번역이고, ‘원문 보기’를 누르면 웨슬리의 영어가, ‘번역 보기’를 누르면 다시 우리말이 나옵니다. 주해 첫머리에 적힌 본문 낱말은 대개 개역한글의 말로 옮겼지만, 마태복음 5장 48절처럼 웨슬리가 본문을 달리 읽은 곳에서는 그의 읽기를 따랐습니다. 영어 원문에서 그 낱말은 킹제임스 역본의 말이거나 웨슬리가 고친 번역입니다. 주해 속의 성경 구절 표시는 링크여서, 누르면 그 구절이 지금 읽는 번역으로 열립니다.

주석 탭 아래의 ‘이 장의 주석 전체’를 누르면 그 장의 주석 페이지(/study/jhn/3/ 같은 주소)로 갑니다. 거기에는 다른 주석 다음에 ‘웨슬리 주석’이라는 제목 아래 그 장의 주해가 절 순서대로 실려 있고, 주해마다 영어 원문이 접혀 있습니다. 검색의 주석 결과에서도 웨슬리를 찾을 수 있고, 설정의 오프라인 저장에서 원어·주석·관주·용어 자료를 내려받으면 인터넷 없이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안내 글들의 ‘웨슬리’ 링크를 누르면 그 절의 주해가 바로 열립니다. 주해 맨 아래의 이름을 누르면 영어 본문을 공개하는 CCEL의 페이지가 열리고, 출처는 설정의 원어·주석 자료에 있습니다.

잘 읽는 법

먼저 말씀을 읽으십시오. 웨슬리의 주해는 본문 없이 읽으면 뜻이 잘 잡히지 않습니다. 한 절을 천천히 읽고, 주해가 짚는 낱말을 그 절에서 찾아 짝지어 읽으면 그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보입니다. 주석을 읽는 일반적인 원칙은 주석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읽는가에서 다룹니다.

웨슬리 자신의 권고를 따라 보십시오. 구약 주해 서문에서 그는 아침저녁으로 조금씩 시간을 떼어 성경을 읽되,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대로 행하겠다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자주 멈추어 자기를 돌아보며 읽으라고 권합니다. 한두 줄의 주해는 그런 읽기를 돕기 위해 쓰였습니다.

다른 목소리와 견주십시오. 웨슬리가 많이 빚진 헨리를 나란히 읽으면 두 사람이 같은 곳과 다른 곳이 드러납니다. 구약에서는 닮은 문장이 자주 보이고, 로마서 8장처럼 두 전통이 갈리는 곳에서는 차이가 분명해집니다. 웨슬리가 "누가는 미리 정해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라고 쓴 곳에서는 웨슬리, 행 13:48 헨리의 주석도 함께 읽고, 본문과 앞뒤 문맥이 무엇을 말하는지 스스로 물어보십시오. 웨슬리가 감리교인으로서 강조하는 것과 거의 모든 교회가 함께 고백하는 것도 구별하면 좋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와 새로 남과 사랑은 함께 붙드는 것이고,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나 확신에 대한 그의 설명은 여러 전통 가운데 한 전통의 목소리입니다.

짧은 주해 뒤의 생각이 궁금하면 그의 설교를 떠올려 보십시오. 열왕기하 10장 15절의 주해는 예후의 물음을 짧게 풀 뿐이지만 웨슬리, 왕하 10:15, 웨슬리는 같은 본문으로 ‘보편적 정신’이라는 설교를 하여, 의견이 달라도 마음이 진실하면 서로 손을 잡자고 권했습니다. 설교집은 이 앱에 없지만, 표준 증서가 둘을 한 표준으로 묶었듯 주해와 설교는 서로 비추어 읽을 때 더 잘 보입니다.

끝으로, 웨슬리가 신앙 전체의 요약이라고 부른 말씀을 붙드십시오.

우리가 그분을 사랑함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

요일 4:19

이 절에 그는 "이것은 모든 종교의 요약이요 그리스도교의 참된 본보기입니다"라고 씁니다 웨슬리, 요일 4:19. 그의 짧은 주해들은 결국 이 한 문장을 향해 성경 전체를 읽습니다.

출처

  1. 존 웨슬리, 그리스도인의 완전 1766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