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과 참고 자료

성경 관주: TSK

19세기 영국에서 나온 『Treasury of Scripture Knowledge』(TSK)는 성경 각 절의 낱말마다 함께 읽을 다른 구절을 모아 놓은 관주 모음입니다. 한 낱말이나 주제를 성경 전체에서 따라가고, 분명한 말씀으로 어려운 말씀을 비추어 보는 데 좋습니다.

관주란 무엇인가

관주는 한 구절 곁에 함께 읽을 다른 구절의 장과 절을 적어 둔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도 절 옆이나 아래에 이런 참조를 달아 둔 ‘관주 성경’이 있어서,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읽다가 창세기 22장이나 로마서 8장으로 건너가 볼 수 있습니다. 관주는 무엇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저 말씀과 함께 읽으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킬 뿐이고, 왜 그런지는 두 말씀을 나란히 읽는 사람이 알아보게 됩니다.

이런 표시 뒤에는 오래된 믿음이 있습니다. 성경은 여러 시대에 여러 사람의 손으로 기록되었지만 한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한 곳의 말씀은 다른 곳의 말씀으로 가장 잘 풀린다는 믿음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도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성경을 그렇게 풀어 주셨습니다.

모세와 모든 대언자들의 글에서 시작하여 모든 성경 기록들에서 자기에 관한 것들을 그들에게 풀어 설명해 주시니라.

눅 24:27

매튜 헨리는 이 대목에서 "성경 전체에 걸쳐 그리스도에 관한 구절이 많이 있어서, 그것들을 한데 모으는 것이 큰 유익이 됩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눅 24:27. 관주는 바로 그렇게 구절을 한데 모으는 일을 미리 해 둔 목록입니다.

교회는 일찍부터 이 일을 해 왔습니다. 4세기에 가이사랴의 에우세비우스는 네 복음서에서 같은 이야기를 전하는 대목을 서로 찾아볼 수 있도록 표를 만들었고,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교 교양』(De doctrina christiana)에서 뜻이 어두운 대목은 더 분명한 대목으로 밝히라고 권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이것을 성경 해석의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성경이 스스로를 해석한다고 말했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성경 해석의 무오한 규칙이 ‘성경 자체’라고 고백한 뒤, 한 구절의 뜻에 의문이 있으면 더 분명하게 말하는 다른 구절들로 찾아 알아야 한다고 덧붙입니다(1장 9항).

이 원칙은 개신교만의 것이 아닙니다.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도 성경을 한 책으로, 그 전체의 통일성 안에서 읽으라고 가르칩니다. 다만 그 읽기가 교회의 살아 있는 전승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보는 점에서 종교개혁의 전통과 강조가 다릅니다. 이 차이는 성경의 영감과 권위에서 다룹니다. 어느 전통에서든 성경의 한 구절을 다른 구절과 맞대어 읽는 것은 가장 오래되고 기본적인 성경 읽기입니다.

관주가 지금처럼 장과 절 번호로 적히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장 구분은 13세기 초에, 절 번호는 16세기 중엽에 자리 잡았습니다. 1560년의 영어 제네바 성경은 절 번호와 함께 여백에 풍부한 주와 참조를 실었고, 1611년의 킹제임스 역본도 여백에 참조 구절을 두었습니다. 번역자들이 받은 규칙에도 성경의 한 곳을 다른 곳과 맞대어 보게 하는 구절을 여백에 적으라는 항목이 있었습니다. 그 뒤 두 세기 동안 킹제임스 역본을 새로 펴내는 사람들이 이 여백의 참조를 계속 늘려 갔고, TSK는 그 흐름 끝에서 나왔습니다.

TSK가 나오기까지

TSK의 참조는 여러 사람이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은 것입니다. 앱의 출처 표시는 이 책을 캔, 브라운, 블레이니, 스콧 등이 엮은 성경 상호 참조라고 소개하는데, 이 이름들은 흔히 다음 사람들로 여겨집니다. 존 캔(John Canne)은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한 잉글랜드 분리파 목사로, 17세기 중엽에 여백에 참조를 단 영어 성경을 펴냈고 그의 관주는 오래도록 거듭 찍혔습니다. 존 브라운(John Brown, 1722–1787)은 스코틀랜드 해딩턴의 목사로, 그가 펴낸 『스스로 풀이하는 성경』(The Self-Interpreting Bible, 1778)은 제목부터 성경이 성경을 푼다는 원칙을 담고 있습니다.

벤저민 블레이니(Benjamin Blayney, 1728–1801)는 1769년 옥스퍼드에서 킹제임스 역본의 본문을 바로잡아 새로 펴내면서 여백의 참조를 크게 늘렸습니다. 오늘 흔히 읽는 킹제임스 역본의 본문이 이 판을 따릅니다. 토머스 스콧(Thomas Scott, 1747–1821)은 잉글랜드 국교회의 목사로, 18세기 말에 해설과 함께 풍부한 여백 참조를 단 주석 성경을 펴냈습니다. 이들은 서로 다른 교회에 속했지만 모두 종교개혁 이후의 개신교인이었고, 성경 전체를 한 책으로 읽고 구약을 그리스도를 향해 읽는 전통에 대체로 함께 서 있었습니다.

이 참조들을 한 권에 모아 『Treasury of Scripture Knowledge』, 곧 ‘성경 지식의 보고’라는 이름으로 펴낸 것은 런던의 성경 출판사 새뮤얼 배그스터(Samuel Bagster, 1772–1851)의 회사였습니다. 처음 나온 해는 흔히 1830년대로 보지만, 정확한 해와 실제로 엮은 사람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 책은 성경 본문을 싣지 않고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절마다 그 절의 낱말과 참조만 차례로 실었습니다. 성경 곁에 펴 놓고 함께 쓰는 책이었던 셈입니다. 책은 영국과 미국에서 여러 번 다시 찍혔고, 훗날 미국에서 나온 판에는 전도자이자 성경 교사였던 R. A. 토레이(1856–1928)가 서문을 붙여 이 책을 성경 공부의 도구로 권했습니다. 오늘 구할 수 있는 판들에도 이 서문이 흔히 함께 실려 있습니다.

앱의 출처 표시는 연대를 1880년경으로 적는데, 앱이 받은 크로스와이어(CrossWire)의 TSK 모듈 소개를 따른 것입니다. 그러나 앞의 네 사람은 모두 1830년대 이전에 세상을 떠났으니, 그들이 이 책을 함께 엮었다는 뜻이 아니라 이 책이 그들의 앞선 작업에서 참조를 모았다는 뜻으로 읽어야 합니다. 1880년이라는 연대도 책이 처음 나온 때라기보다 거듭 찍힌 판 가운데 하나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글은 그 이상을 단정하지 않겠습니다.

TSK는 큰 책입니다. 이 앱의 자료로 세어 보면 킹제임스 역본의 31,102절 가운데 29,362절에 관주가 있고, 65,062개의 낱말 묶음 아래 참조가 338,373개 있습니다. 요일 4:9-10처럼 이어진 몇 절을 하나로 센 수이고, 그 절들을 하나하나 세면 63만 7천 개쯤 됩니다. 모듈의 소개 글은 참조가 오십만 개라고 하는데, 세는 방식에 따라 수가 달라지니 그것도 그런 셈법의 하나일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한 절에 평균 열 개가 넘는 참조가 달려 있는 셈이고, 사도행전 24장 25절처럼 백 개가 넘는 절도 있습니다.

TSK가 관주를 다는 방식

TSK는 한 절을 통째로 다른 절에 잇지 않고, 절 안의 낱말 하나하나에서 길을 냅니다. 한 절의 항목은 그 절의 낱말이나 짧은 구절을 먼저 적고, 그 아래 함께 읽을 구절들을 늘어놓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이라면 ‘하나님이’ 아래에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 롬 5:8과 요일 4:9-10이, ‘주셨으니’ 아래에 아브라함이 아들을 바친 창 22:12와 롬 8:32가, ‘저를 믿는 자마다’ 아래에는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다는 딤전 1:15-16이 있습니다. 같은 절에서도 어느 낱말을 따라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곳에 이르게 됩니다.

참조가 낱말과 이어지는 방식은 여러 가지입니다. 신약이 구약을 인용하는 곳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시험받으실 때 하신 말씀 마 4:4의 ‘사람이’ 아래에는 그 말씀의 출처인 신 8:3이 있습니다. 같은 사건을 다른 책이 전하는 평행 본문도 있어서, 산헤립의 침공을 전하는 사 36:1은 왕하 18:13, 대하 32:1과 이어집니다. 그 밖에 같은 낱말이 쓰인 곳, 같은 생각을 다른 말로 하는 곳, 예언과 그 성취로 읽히는 곳, 서로 대조되는 곳이 있습니다. TSK는 이 가운데 어느 것인지 표시하지 않습니다. 참조를 열어 읽고 어떤 연결인지 알아보는 것은 읽는 사람의 몫입니다.

참조는 대개 같은 책의 가까운 구절이 먼저 오고, 그다음 구약과 신약의 구절이 성경 순서대로 이어집니다. 어떤 구절을 골랐는지에는 엮은이들의 읽기가 드러나는데, 그들은 구약 곳곳에서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의 ‘이 말씀은’ 아래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심을 증언하는 구절로 요 20:28, 롬 9:5, 딛 2:13과 함께 구약의 시 45:6과 사 9:6이 모여 있습니다. 니케아 신경 이래 교회가 고백해 온 믿음을 따라 성경을 읽은 것입니다. TSK는 해설을 쓰지 않지만, 무엇을 무엇 곁에 놓았는지가 곧 그들의 해석입니다.

좋은 점과 한계

TSK가 가장 잘하는 일은 한 낱말이나 주제를 성경 전체에서 따라가게 해 주는 것입니다. 시 23:1에서 ‘나의 목자시니’ 아래에는 참조가 열다섯 개 있습니다. 그 가운데 몇 개만 따라가 보아도 길이 보입니다.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그분께서는 목자같이 자기 양 떼를 먹이시고 어린양들을 자기 팔로 모아 품에 안아 옮기시며 어린것들과 함께하는 어미들을 부드럽게 인도하시리로다."라고 노래하고(사 40:11), 에스겔은 하나님이 친히 양을 찾으시겠다고 하신 뒤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우고 그가 그들을 먹이게 하리니 그는 곧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되리라."는 약속을 전합니다(겔 34:23). 다윗이 세상을 떠난 지 오랜 뒤에 주어진, 다윗의 자손에 대한 약속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니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자기 생명을 주거니와

요 10:11

베드로는 이 목자가 다시 오실 날을 내다보며 장로들에게 "그리하면 목자장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가 사라지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받으리라."고 씁니다(벧전 5:4). 다윗의 고백 한 줄이 선지자의 약속과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나 마지막 날의 소망에까지 이어집니다. 네이브 주제별 성경의 목자 항목처럼 주제별로 모은 목록과 함께 보면 그 길이 더 넓게 보입니다.

둘째로 관주는 분명한 말씀으로 어려운 말씀을 비추어 줍니다. 하나님이 뱀에게 하신 창 3:15의 말씀은 짧고 수수께끼 같습니다. TSK는 여자의 후손이라는 말 아래에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사 "그러나 충만한 때가 이르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있게 하셨나니"라고 말하는 갈 4:4를 두고,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말 아래에 "평강의 하나님께서 곧 사탄을 너희 발밑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는 롬 16:20과,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마귀를 없이 하셨다는 히 2:14-15를 둡니다. 2세기의 이레나이우스 때부터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구절을 구원자에 대한 첫 약속으로 읽어 왔고, TSK도 그 읽기를 따릅니다. 유대교 전통과 오늘의 여러 학자들은 이 구절을 사람과 뱀, 또는 사람과 악 사이의 오랜 싸움으로 더 넓게 읽기도 합니다. 어느 쪽으로 읽든 관주는 신약이 이 오래된 말씀을 어떻게 이어받았는지 보여 줍니다. 한 말씀이 다른 말씀을 열어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들이 들어오면 빛을 주며 이 빛이 단순한 자에게 명철을 주나이다.

시 119:130

셋째로 관주는 성경 공부와 설교를 준비하는 사람에게 좋은 출발점입니다. 한 본문의 열쇠가 되는 낱말 두세 개를 골라 관주를 따라가면 그 본문이 성경 전체 안에서 어디에 서 있는지 보입니다. 그리고 TSK에는 해설이 없어서 주석보다 엮은이의 목소리가 훨씬 덜 들립니다. 성경 곁에 성경을 놓아 줄 뿐이니, 어느 전통의 그리스도인이든 함께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합니다. 첫째로 TSK는 영어 킹제임스 역본으로 만든 관주입니다. 낱말은 킹제임스 역본의 영어 낱말이고, 참조도 그 영어를 따라 이어진 곳이 있습니다. 마 5:22의 지옥 불을 말하는 낱말 아래에는 부자가 고통받는 곳을 말하는 눅 16:23과 사망과 그곳이 불못에 던져지는 계 20:14가 있습니다. 킹제임스 역본은 세 곳을 모두 hell로 옮겼고 흠정역도 누가복음에서 ‘지옥’이라고 옮겼지만, 개역한글은 뒤의 두 곳을 ‘음부’라고 옮깁니다. 마태복음의 낱말은 게엔나(γέεννα)이고 누가복음과 계시록의 낱말은 하데스(ᾅδης)이기 때문입니다. 두 낱말이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따로 살펴야 할 물음입니다.

본문의 차이도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의 ‘말씀이’ 아래에는 요한일서 5장 7절이 있습니다. 킹제임스 역본과 그것을 옮긴 흠정역에서 이 절은 하늘에서 증언하시는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을 말하지만, 오늘 학자들이 세운 헬라어 본문에는 그 말이 없어서 개역한글과 대부분의 현대 번역에서 이 절은 성령이 증언하신다는 짧은 말씀입니다. 개역한글로 읽는 사람이 이 참조를 열면 무엇 때문에 여기 놓였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둘째로 참조의 질이 고르지 않습니다. 본문을 곧바로 인용하거나 같은 사건을 전하는 참조는 단단하지만, 낱말 하나가 같을 뿐 문맥은 먼 참조도 있습니다. 잘못 찍힌 참조도 드물게 있습니다. 앱이 받은 TSK 본문에서 요 1:4의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라는 말 아래에는 시 49:6과 시 60:1-3이 있는데, 열어 보면 재물을 의지하는 사람과 하나님께 버림받은 백성의 탄식이 나옵니다. 앞뒤의 참조로 보아 이방의 빛을 말하는 사 49:6과 빛이 이르렀으니 일어나 빛을 발하라는 사 60:1-3을 가리키려던 것이 시편으로 잘못 적힌 것으로 보입니다.

셋째로 관주는 연결을 보여 줄 뿐 교리를 증명하지 않습니다. 구절 목록은 논증이 아닙니다. 목록에는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연결도 있고 엮은이들의 해석에 기댄 연결도 있습니다. 앞에서 본 대로 TSK는 개신교 신앙의 눈으로 성경을 읽었고, 그 읽기는 교회의 오랜 신앙과 대체로 함께 가지만 모든 참조가 같은 무게를 지니지는 않습니다. 어떤 가르침을 세우려고 관주를 모을 때는 그 구절이 제자리에서 정말 그것을 말하는지 물어야 합니다.

넷째로 참조는 절 번호일 뿐이어서 한 절만 떼어 읽으면 뜻을 놓치기 쉽습니다. 누가복음 16장 23절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가운데 있고, 창세기 22장 12절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던 이야기의 절정에 있습니다. 참조를 열었으면 그 앞뒤를 함께 읽어야 그 구절이 원래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끝으로 TSK는 19세기의 책이고 왜 그 구절을 놓았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사본과 원어와 고대 근동에 관한 연구의 진전은 그 뒤에 왔습니다. 설명은 주석에서, 낱말의 뜻은 원어 탭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 앱에서 보기

성경을 읽다가 구절을 누르면 화면 아래에 막대가 나타나고, 거기서 ‘원어·주석’을 누르면 원어·주석·관주·용어 네 탭이 있는 창이 열립니다. 관주 탭을 고르면 TSK가 그 절에 단 관주가 나옵니다. 창은 마지막에 고른 탭을 기억하므로 다음에도 관주 탭이 먼저 열리고, 창 위의 화살표로 앞뒤 절로 옮겨 가며 볼 수 있습니다.

관주 탭은 그 절의 낱말 묶음을 차례로 보여 줍니다. 묶음마다 맨 위에 그 절의 낱말이 있고, 그 아래에 ‘요 10:11’ 같은 참조 단추가 늘어섭니다. 참조가 열두 개를 넘으면 나머지는 ‘+’ 단추를 눌러 펼칩니다. 낱말 표시 없이 참조만 있는 묶음도 있는데, 대개 TSK가 특정 낱말이 아니라 그 절 전체에 붙인 참조입니다.

낱말 표시는 우리말입니다. TSK가 고른 것은 킹제임스 역본의 영어 낱말이고, 앱은 그 영어 낱말에 해당하는 개역한글 절의 낱말을 찾아 표시로 붙였습니다. 그래서 묶음의 순서는 영어 절의 낱말 순서를 따르고, 우리말 절에서는 앞뒤가 바뀌어 보일 때가 있습니다. 또 흠정역 같은 다른 번역으로 읽고 있으면 창 위의 본문과 표시의 낱말이 조금 다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의 ‘저를 믿는 자마다’를 흠정역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이라고 옮깁니다. 영어의 that이나 when 같은 작은 낱말은 그 낱말로 시작하는 구절을 대표하므로 표시도 그 구절의 중심 낱말을 보여 줍니다. 드물게는 표시가 같은 절의 다른 낱말에 붙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니, 참조가 표시와 맞지 않아 보이면 절의 다른 부분과 견주어 보십시오.

참조 단추를 누르면 작은 창에 그 구절이 지금 읽는 번역으로 나옵니다. 여러 절에 걸친 참조는 여덟 절까지 보여 줍니다. 그 아래 ‘읽기’를 누르면 그 자리로 가서 앞뒤 문맥과 함께 읽을 수 있고, ‘원어·주석’을 누르면 그 절의 원어·주석 창이, ‘주석’을 누르면 그 장의 주석 페이지가 열립니다. 작은 창을 닫으면 원래 절의 관주 탭으로 돌아옵니다.

앱이 보여 주는 것은 TSK의 낱말과 참조뿐입니다. TSK 원본에는 장마다 붙은 짧은 개요, 낱말에 대한 짧은 설명(마태복음 5장 22절의 공회가 산헤드린이라는 것 같은),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직역한 여백 읽기, 그리고 요한복음 1장 3절에 붙은 B.C. 4004처럼 17세기 아일랜드의 대주교 제임스 어셔의 연대 계산을 따른 것으로 보이는 연도도 있지만 앱은 이것들을 뺐습니다. 그 절 자신을 가리키는 참조와 겹치는 참조, 앱이 읽어 낼 수 없는 참조도 뺐고, 나머지는 킹제임스 역본에 실제로 있는 장과 절인지 확인했습니다. 다만 이 확인으로는 앞에서 본 시편 49편 6절처럼 있는 절을 잘못 가리킨 참조까지 걸러 낼 수는 없습니다. 이어진 절을 쉼표로 늘어놓은 참조는 요일 4:9-10처럼 하나로 묶었습니다.

설정의 오프라인 저장에서 원어·주석·관주·용어 자료를 내려받으면 인터넷 없이도 관주를 볼 수 있습니다. 관주 탭 맨 아래에는 출처가 적혀 있고, 그 옆의 ‘이 자료는?’을 누르면 이 글이 열립니다. 자세한 출처는 설정의 원어·주석 자료에 있습니다.

잘 쓰는 법

먼저 그 절을 읽으십시오. 관주는 본문을 대신하지 않고, 다른 말씀을 거쳐 본문으로 돌아오게 하는 길입니다. 절을 읽고 무엇이 궁금한지, 어떤 낱말이 마음에 걸리는지 스스로 물은 다음 그 낱말의 묶음을 여십시오. 모든 참조를 다 열 필요는 없습니다. 서너 개를 골라 천천히 읽는 편이 스무 개를 훑어보는 것보다 낫습니다. 주석과 관주를 어떻게 함께 쓰는지는 주석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읽는가에서 다룹니다.

요 3:16으로 해 보겠습니다. ‘주셨으니’ 아래의 참조 가운데 세 개를 따라가 봅니다. 처음은 아브라함이 모리아 땅의 한 산에서 이삭을 바치려던 이야기입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그를 멈추게 하며 "그가 이르되, 네 손을 그 아이에게 대지 말라. 너는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곧 네 유일한 아들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므로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 내가 이제 아노라, 하니라."라고 말합니다(창 22:12). 다음은 포도원 농부의 비유입니다. 주인은 종들을 보냈다가 그들이 매를 맞거나 죽임을 당하자 마지막으로 "그에게 아직 한 아들 곧 그가 극진히 사랑하는 자가 있으므로 이런 까닭에 그가 마지막으로 그도 그들에게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으나"을 보냅니다(막 12:6). 그리고 바울이 이 모든 것을 한 문장에 모읍니다.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두를 위해 그분을 내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또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롬 8:32

세 구절을 나란히 놓으면 ‘주셨으니’라는 한 낱말이 얼마나 무거운지 보입니다. 아브라함에게서는 멈추게 하신 일을 하나님은 자기 아들에게서는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창세기와 로마서가 똑같이 아끼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도 우연이 아닌 듯하며, 많은 해석자는 바울이 여기서 창세기 22장을 떠올렸다고 봅니다. 포도원 비유는 그 아들이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보내신 분임을, 로마서는 그 선물이 다른 모든 은혜를 보증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아래의 요일 4:9-10까지 읽으면 요한이 직접 이 절을 풀어 주는 것처럼 들립니다.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신 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요한복음 3장 16절로 돌아오면 같은 절이 전보다 깊게 읽힙니다.

참조마다 어떤 연결인지 물어보십시오. 인용인지, 같은 사건인지, 같은 낱말인지, 같은 생각인지, 예언과 성취인지를 물으면 참조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보입니다. 창세기 22장과 로마서 8장은 같은 생각으로, 요한일서 4장은 같은 가르침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연결이 보이지 않는 참조는 억지로 맞추지 말고 넘어가도 됩니다.

참조는 제자리에서 읽으십시오. 작은 창에 나오는 한두 절로 그치지 말고 ‘읽기’를 눌러 앞뒤를 보십시오. 창세기 22장 12절은 그 장을 처음부터 읽어야 그 무게를 알 수 있고, 포도원 비유는 예수께서 누구에게 그 비유를 하셨는지 알아야 뜻이 분명해집니다.

원어로 확인하십시오. 관주가 영어 낱말을 따라 이어졌을 수 있으니, 낱말이 중요한 연결이라면 원어 탭에서 그 절의 헬라어나 히브리어 낱말을 눌러 보십시오. 사전 항목의 ‘이 낱말이 쓰인 곳’은 같은 원어가 쓰인 절을 모두 보여 주므로, 영어가 아니라 원어로 이어진 길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STEPBible 원어 자료). 주제로 넓혀 보는 것도 좋습니다. 관주가 한 절의 낱말에서 바깥으로 길을 낸다면, 용어 탭의 네이브 주제별 성경은 한 주제 아래 구절을 모아 둡니다(네이브 주제별 성경).

성경 공부를 준비할 때는 본문의 열쇠 낱말 두세 개를 골라 각각 서너 개의 참조를 적어 두고, 모임에서 그 구절들을 함께 소리 내어 읽어 보십시오. 해설을 길게 하지 않아도 성경이 성경을 풀어 주는 것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관주를 따라가는 목적은 더 많은 구절을 아는 데 있지 않고, 처음 읽은 그 말씀을 더 깊이 알고 그 말씀이 가리키는 분께 이르는 데 있습니다.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거니와 그것들은 곧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

요 5:39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