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15과

성찬: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

개혁교회는 성찬에서 믿는 이가 떡과 잔을 받을 때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와 그 죽으심의 모든 은덕을 참으로 받아 먹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하늘에 계시지만 성령께서 우리를 그분과 하나로 묶으시므로, 성찬은 떡이 몸으로 변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한 기념에 그치는 것도 아닌 그리스도와의 참된 교제입니다.

주께서 세우신 식탁

주님은 잡히시던 밤, 유월절 식탁에서 성찬이라는 새 식탁을 세우셨습니다.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집으사 축복하시고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집으사 감사를 드리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다 그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린 나의 피 곧 새 상속 언약의 피니라.

마 26:26-28

바울은 주께 받은 이 말씀을 고린도 교회에 전하면서 "감사를 드리신 뒤에 그것을 떼시고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찢긴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라, 하시고"는 명령과 (고전 11:24) 이 식탁이 "이는 너희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분께서 오실 때까지 보이기 때문이니라."이라는 뜻을 함께 전합니다 (고전 11:26). 그리고 다른 곳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아니냐?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아니냐?

고전 10:16

‘참예함’으로 옮긴 말은 , 곧 함께 나누어 가짐입니다. 바울은 떡이 그리스도의 몸을 떠올리게 한다고만 말하지 않고, 그 떡을 나누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개혁교회의 성찬 이해는 이 말씀을 붙듭니다. 성례가 은혜 언약의 표와 인이라는 것은 언약의 표: 세례와 유아세례 과에서 보았습니다.

성령으로, 믿음으로 받는 그리스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9장 7절은 합당하게 받는 이가 눈에 보이는 떡과 잔을 받을 때 속으로는 믿음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와 그 죽으심의 모든 은덕을 실제로 받아 먹되, 육체적으로가 아니라 영적으로 받는다고 고백합니다. 떡과 포도주가 우리 감각에 실제로 있듯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믿는 이의 믿음에 실제로, 그러나 영적으로 임재한다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9장 7절. 개혁교회가 말하는 ‘영적 임재’는 덜 실제적인 임재가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는 임재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이 위로를 더 가까이 들려줍니다. 목사의 손에서 떡과 잔을 받아 입으로 맛보는 것만큼 확실하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몸과 흘리신 피로 내 영혼을 영생에 이르도록 먹이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몸을 먹는다는 것은 그분의 고난을 믿고 죄 사함을 얻는 것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우리 안에 함께 계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몸에 점점 더 연합하는 것이며, 그분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어도 우리가 그분의 살 중의 살이 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75–76문. 벨직 신앙고백 35조도 그리스도께서 하늘 아버지 우편에 계속 앉아 계시면서 믿음으로 자신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고백합니다 벨직 신앙고백 35조.

칼뱅은 『성찬에 관한 짧은 논고』(1541)에서 신자가 성찬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으로 참여한다고 가르쳤고 칼뱅, 성찬에 관한 짧은 논고, 기독교 강요에서는 이 신비의 열쇠를 성령에게서 찾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하늘에 있고 우리는 땅에 있지만, 공간으로 떨어져 있는 것을 성령께서 참으로 하나로 묶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떡 속으로 끌어내리려 하지 말고, 고대 교회의 성찬 예전이 ‘마음을 드높이’ 하고 불렀듯이 마음을 들어 올려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께 나아가라고 권했습니다 칼뱅, 기독교 강요 4.17. 제네바 교회의 예배 순서도 성찬 앞에서 이렇게 권합니다 제네바 기도 형식. 바울도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켜졌거든 위에 있는 그것들을 추구하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고 말합니다 (골 3:1). 요한복음 6장에서 무리가 주님의 살을 먹는다는 말씀에 걸려 넘어졌을 때, 아우구스티누스는 주님의 대답을 이렇게 풉니다. "그분은 이제 자기가 온전하고 완전한 채로 하늘에 올라가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아우구스티누스. 1549년에는 칼뱅과 취리히의 불링거가 성례에 대한 이해를 하나로 모아 취리히 일치 신조를 냈고 취리히 일치 신조, 많은 학자는 이 합의가 스위스 개혁교회들이 성찬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는 바탕이 되었다고 봅니다.

다른 전통과 나란히

가톨릭 교회는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집으사 축복하시고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는 말씀을 (마 26:26) 글자 그대로 받고 "내 살은 참으로 양식이요 내 피는 참으로 음료이니"라는 말씀도 (요 6:55) 그렇게 읽어, 축성으로 떡과 포도주의 실체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고 겉모습만 남는다고 가르칩니다 트리엔트 공의회, 성체성사에 관한 교령.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은 이 화체설을 배격합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9장 6절). 성경은 축사한 뒤에도 그것을 "이 떡"이라 부르고 (고전 11:26), 표는 표로 남아야 표가 가리키는 실체를 증언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님께서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자신의 모든 거룩한 대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때 곧 모든 것을 회복하시는 때까지는 하늘이 반드시 그분을 받아들여야 하느니라." 하늘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행 3:21).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78문은 세례의 물이 그리스도의 피로 바뀌지 않듯 성찬의 떡도 그분의 몸으로 바뀌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루터교도 주님의 말씀을 글자 그대로 받아 그리스도의 참 몸과 피가 떡과 포도주 안에, 함께, 아래에 계신다고 고백하며, 두 전통의 차이는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인성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와 이어져 있습니다. 1529년 마르부르크에서 루터와 츠빙글리가 갈라선 것도 성찬 문제 때문이었습니다(종교개혁 이야기 과).

다른 한편, 흔히 츠빙글리와 연결되고 많은 침례교회가 따르는 기념설은(제2차 런던 신앙고백을 따르는 개혁파 침례교회는 위의 영적 먹음을 고백합니다) 성찬을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억하고 고백하는 식탁으로 봅니다. 츠빙글리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정리할지는 학자마다 설명이 다르지만, 이 견해는 "나를 기념하라"는 명령을 진지하게 받고 미신을 경계하려는 것입니다. 개혁교회는 기념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그보다 더 많이 고백합니다. 성찬은 멀리 계신 그리스도를 떠올리기만 하는 자리가 아니라, 성령으로 지금 우리를 먹이시는 그리스도께 참여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여러 전통의 이해는 교리 과정의 ‘세례와 성찬’ 과와 ‘승천과 다스리심’ 과에서 나란히 살펴보았습니다.

합당하게 나아오는 사람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이 빵과 이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가 있으리로다. 오직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뒤에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실지니

고전 11:27-28

‘합당하게’ 나아온다는 것은 완전한 사람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81문은 성찬이 자기 죄를 슬퍼하면서도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용서받았음을 믿고, 믿음이 더 굳세어지고 삶이 새로워지기를 바라는 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매튜 헨리도 "그러나 두려워하는 신자들이 이 거룩한 규례에 참석하는 것을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자기를 살피는 일은 식탁에서 물러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회개와 믿음으로 다시 식탁에 나아오게 하려는 것입니다.

칼뱅은 성찬을 자주, 될 수 있으면 매주 거행하기를 바랐으나 칼뱅과 파렐, 제네바 교회 조직에 관한 조항, 제네바 시의회는 1년에 네 번으로 정했다고 전해집니다. 오늘날 개혁교회와 장로교회가 성찬을 거행하는 횟수는 교회마다 다릅니다. 그러나 어디서든 이 식탁은 우리를 한 몸으로 묶습니다. "우리가 많아도 한 빵이요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그 한 빵에 참여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라." (고전 10:17). 아우구스티누스는 "떡은 많은 낟알로 만들어지고 포도주는 많은 포도 알에서 나옵니다. 이로써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나타내셨고, 자기의 식탁에서 우리의 평화와 일치의 신비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연습

  1. 연습 1 / 8

    고린도전서 10:16은 축복의 잔과 우리가 떼는 떡을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2. 연습 2 / 8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9장 7절에 따르면 합당하게 받는 이는 성찬에서 그리스도를 어떻게 받습니까?

  3. 연습 3 / 8

    칼뱅은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와 땅에 있는 우리가 성찬에서 어떻게 하나가 된다고 가르쳤습니까?

  4. 연습 4 / 8

    1549년 취리히 일치 신조는 무엇입니까?

  5. 연습 5 / 8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이 화체설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로 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6. 연습 6 / 8

    성찬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고백하는 전통을 바르게 연결한 것은 무엇입니까?

  7. 연습 7 / 8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81문에 따르면 성찬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8. 연습 8 / 8

    칼뱅은 성찬을 얼마나 자주 거행하기를 바랐다고 전해집니까?

출처

  1. 웨스트민스터 총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646 — 장로교회의 신앙고백. 성경, 하나님과 작정, 언약, 구원, 교회와 성례, 종말을 33장에 걸쳐 고백한다. 읽기
  2.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563 — 독일 개혁교회의 요리문답(129문). 제1문: 살아서나 죽어서나 유일한 위로는 무엇인가. 죄와 구원과 감사의 세 부분으로 신경, 성례, 십계명, 주기도문을 가르친다. 읽기
  3. 귀도 드 브레, 벨직 신앙고백 1561 —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신앙고백. 하나님을 아는 길(창조와 성경)에서 창조, 구원, 교회의 표지와 성례까지 37개 조항으로 고백한다. 읽기
  4. 장 칼뱅, 성찬에 관한 짧은 논고 1541 — 성찬에서 신자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으로 참여한다고 가르친다.
  5. 장 칼뱅, 기독교 강요 1559 — 개혁파 신학의 대표 저작. 읽기
  6. 장 칼뱅, 제네바 기도 형식 1542 — 제네바 교회의 예배 순서와 기도, 시편 찬송. 성찬 앞에서 마음을 하늘로 들어 올리라고 권한다.
  7. 칼뱅과 불링거, 취리히 일치 신조 1549 — 제네바와 취리히가 성례, 특히 성찬의 이해에 합의한 문서.
  8. 트리엔트 공의회, 성체성사에 관한 교령 1551 — 빵과 포도주의 실체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뀐다(화체)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9. 장 칼뱅과 기욤 파렐, 제네바 교회 조직에 관한 조항 1537 — 성찬을 자주, 적어도 매 주일 거행하기를 바라며 교회 권징을 제안한 문서.

성경과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벨직 신앙고백, 도르트 신경)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개혁주의 신앙을 가르치되, 다른 전통의 견해도 공정하게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