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
Eschatology
종말론은 마지막 일들, 곧 죽음과 그 뒤의 일, 그리스도의 재림, 죽은 자의 부활, 최후 심판,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성경은 이 마지막이 그리스도의 첫 오심으로 이미 시작되었고 그분이 다시 오실 때 완성된다고 말합니다.
이미 시작된 마지막
‘종말론’은 ‘마지막’을 뜻하는 헬라어 에스카토스(ἔσχατος)에서 이름을 얻은 신학의 한 분야로, 역사가 어디를 향해 가며 우리 각 사람에게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묻습니다. 한 사람이 죽은 뒤에 맞는 일, 곧 중간 상태가 그 한 부분이고, 온 세상이 함께 맞을 일, 곧 그리스도의 재림과 몸의 부활, 최후 심판, 새 하늘과 새 땅이 다른 부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마지막 일을 먼 미래에만 두지 않습니다. 히브리서는 하나님이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며 그분을 모든 것의 상속자로 정하시고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들을 만드셨느니라."라고 하고 (히 1:2), 베드로는 오순절에 성령이 부어진 일을 요엘이 말한 "말세"의 성취로 선포했습니다 (행 2:17).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이미 왔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마지막 부활의 첫 열매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각 사람이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분께 속한 사람들이라. 그때에 끝이 오리니 곧 그분께서 모든 치리와 모든 권세와 권능을 물리치시고 왕국을 하나님 곧 아버지께 넘겨 드리실 때라.
고전 15:23-24
마지막은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죽음은 여전히 찾아오고 악은 아직 남아 있으며, 교회는 "저 복된 소망과 위대하신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느니라."을 기다립니다 (딛 2:13). 많은 신학자는 이 긴장을 ‘이미’와 ‘아직’이라는 말로 요약합니다. 존 웨슬리는 하나님이 만유 안에 계실 그날을 두고 "이것이 끝입니다. 영감을 받은 사도조차 이 너머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라고 씁니다 웨슬리.
교회가 고백해 온 소망
교회는 처음부터 이 소망을 신경에 담았습니다. 사도신경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께서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고 고백하고 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은 이렇게 끝납니다.
우리는 죄 사함을 위한 한 세례를 인정하며, 죽은 자의 부활과 오는 세상의 생명을 기다립니다. 아멘.
니케아 신경
중세 교회는 죽음과 심판과 천국과 지옥을 ‘네 가지 마지막 일’이라 부르며 설교하고 묵상했습니다. ‘종말론’이라는 이름은 17세기 루터교 신학에서 쓰이기 시작해 19세기에 널리 퍼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전통들이 다르게 읽는 곳
종말론의 중심, 곧 그리스도께서 몸으로 영광 중에 다시 오시고, 죽은 자가 일어나며, 심판이 있고, 만물이 새로워진다는 것은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와 개신교회가 함께 고백합니다. 차이는 그 둘레에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의 천년왕국을 두고 복음주의 안에서도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이 갈리고, 전천년설 가운데 세대주의는 환난 전의 휴거를 가르칩니다. 에큐메니컬 신경들은 이 문제를 정하지 않았으므로, 어느 견해를 따르느냐가 믿음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지는 않습니다.
죽음 뒤의 상태에 대해서는 가톨릭 교회가 연옥을 가르치고 개신교회는 받아들이지 않으며, 소수의 그리스도인은 죽은 이가 부활 때까지 의식 없이 잠든다고 봅니다. 지옥의 형벌이 끝없이 의식하는 고통인지 마침내 소멸하는 것인지도 논의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어느 전통이든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른다는 주의 말씀 (마 24:36) 앞에서 날짜를 계산하는 일을 경계합니다. 종말론은 호기심을 채우려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늘의 삶을 빚으려고 주어졌습니다. 요한의 말처럼 이 소망을 가진 이는 "그분 안에서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분께서 순결하신 것 같이 자기를 순결하게 하느니라." (요일 3:3). 더 자세한 내용은 교리 과정의 재림과 천년왕국 과와 세상의 끝은 언제 오는가?에서 다룹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