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속죄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교회는 이 죽음을 몸값과 승리, 만족, 대신 받으신 형벌, 사랑의 본 같은 여러 그림으로 설명해 왔고, 강조점은 달라도 십자가가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와 죄인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한 일이라는 데는 한 목소리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로마 세계에서 십자가는 가장 잔인하고 수치스러운 처형 도구였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바로 그것을 자기의 표로 삼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왜 죽으셔야 했을까요? 니케아 신경은 짧게 답합니다. 성자께서 ‘우리 인간과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고, ‘우리를 위하여’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것입니다 니케아 신경.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죄가 없어지고 우리가 하나님과 다시 이어진 일을 교회는 속죄라고 부릅니다.
이사야는 예수께서 오시기 오래전에 남의 죄를 짊어지는 고난받는 종을 노래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의 불법들로 인해 상하였노라.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길을 잃고 각각 자기 길로 갔거늘 주께서는 우리 모두의 불법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5-6
예수께서도 자기 죽음을 그렇게 이해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아니하고 도리어 섬기며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느니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막 10:45). 사도들은 이 일을 여러 방향에서 풀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나무에 달려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지셨으니 이것은 죄들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살아서 의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고침을 받았나니"고 (벧전 2:24), 하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 그분을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 못한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셨습니다 (고후 5:21). 그분은 죽음으로 "그런즉 자녀들은 살과 피에 참여한 자들이므로 그분도 마찬가지로 같은 것의 일부를 취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죽음을 통해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 없이 하시고 (히 2:14) "정사들과 권능들을 벗기사 십자가 안에서 그들을 이기시고 공공연히 그들을 구경거리로 삼으셨느니라."습니다 (골 2:15). 바울은 이 일의 중심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을 하나님께서 그분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한 화해 헌물로 제시하셨으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참으심을 통해 과거의 죄들을 사면하심으로써 자신의 의를 밝히 드러내려 하심이요, 내가 말하거니와 이때에 자신의 의를 밝히 드러내사 자신이 의롭게 되며 또 예수님을 믿는 자를 의롭게 만드는 이가 되려 하심이라.
롬 3:25-26
‘화목제물’로 옮긴 는 헬라어 구약과 히브리서 9:5에서 언약궤를 덮는 ‘속죄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피를 뿌리던 자리입니다. 이 말이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는 쪽에 무게가 있는지, 죄를 덮어 씻는 쪽에 무게가 있는지는 학자들 사이에 논의가 있고, 많은 이는 두 뜻을 함께 읽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죄를 가볍게 넘기지 않으시면서 죄인을 의롭다 하신다는 것, 그리고 그 일을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사람이 하나님을 달래려고 바친 제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내미신 사랑입니다 (롬 5:8, 요일 4:10).
교회가 그려 온 그림들
교회는 십자가의 사실을 한 목소리로 고백했지만, 그것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는지를 하나의 공식 이론으로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성경에서 나온 여러 그림이 함께 쓰여 왔습니다.
| 그림 |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 | 대표하는 증인 |
|---|---|---|
| 몸값과 승리 | 죄와 죽음과 마귀에 사로잡힌 사람을 풀어 내심 | 이레나이우스와 교부들 |
| 만족 | 죄로 빼앗긴 하나님의 영예를 넘치게 갚으심 | 안셀무스 |
| 형벌 대속 | 우리가 받을 죄의 형벌을 우리 자리에서 받으심 | 칼뱅과 종교개혁자들 |
| 사랑의 본 | 끝까지 사랑하신 사랑으로 우리 마음을 돌이키심 | 아벨라르 |
2세기의 이레나이우스는 그리스도를 새 아담으로 보았습니다. 아담이 넘어진 자리를 그리스도께서 다시 걸으시며 불순종을 순종으로 바꾸시고, 사람을 이겼던 원수를 사람으로서 이기셨다는 것입니다 이레나이우스, 이단 반박. 20세기 스웨덴의 루터교 신학자 구스타프 아울렌은 이 승리의 그림을 교부들의 ‘고전적’ 속죄론이라 부르고, 서방에서는 그것이 다른 설명들에 가려졌다고 보았습니다 아울렌, 승리자 그리스도.
11세기 말 안셀무스는 죄를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영예를 빼앗은 빚으로 보았습니다. 그 빚은 사람이 갚아야 하지만 하나님만 갚으실 수 있으므로,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분이 자기 생명을 드려 넘치게 갚으셨다는 것입니다 안셀무스, 하나님은 왜 인간이 되셨는가. 종교개혁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죄인이 받을 형벌을 대신 받으셨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칼뱅은 그리스도께서 죄인의 자리에 서서 우리에게 돌아올 저주와 정죄를 짊어지셨다고 가르쳤고 칼뱅, 기독교 강요 2.16,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37문은 그분이 땅에 계시는 동안, 특히 생애 마지막에 온 인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몸과 영혼에 짊어지셨다고 고백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37문. 매튜 헨리도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고서는 죄에 대한 만족이 될 수 없었으니 그분이 죄를 미워하심이 분명합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12세기의 아벨라르는 십자가에서 드러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안에 사랑을 불러일으켜 우리를 하나님께 묶는다는 점에 무게를 두었습니다 아벨라르, 로마서 주석. 베드로도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사 "참으로 너희가 심지어 그 일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나니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심으로 우리에게 본을 남기사 너희가 자신의 발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느니라."고 말합니다 (벧전 2:21). 많은 그리스도인은 이 그림들이 서로를 지우지 않고 한 사건의 여러 면을 비춘다고 봅니다.
서로 다르게 말하는 두 가지
첫째는 어느 그림을 중심에 두느냐입니다. 많은 복음주의자는 형벌 대속을 중심에 둡니다. 그것이 거룩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가라는 물음에 답하고, 다른 그림들도 그 위에 선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거스르던 증서를 먼저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이기셨다는 골로새서의 순서에 주목합니다 (골 2:14-15). 정교회 신학은 대체로 죽음의 세력을 멸하시고 사람의 본성을 고치시는 그리스도의 승리를 앞세우며 (히 2:14-15), 부활절마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 죽음을 짓밟으셨다고 노래합니다. 가톨릭 신학은 토마스 아퀴나스 이래 그리스도의 수난을 공로와 만족과 희생 제사와 구속으로 함께 설명해 왔고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여러 전통의 많은 신학자가 이처럼 여러 그림을 한데 묶어 읽습니다. 형벌 대속이 아버지와 아들을 맞세운다는 비판과 그에 대한 답은 예수는 왜 죽어야 했는가?에서 다룹니다.
둘째는 속죄의 범위입니다. 개혁교회의 도르트 신경(1619)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무한한 가치를 지녀 온 세상의 죄를 속하기에 넘치도록 충분하다고 고백하면서도, 그 죽음이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택하신 이들을 실제로 구속하도록 정해졌다고 가르칩니다 도르트 신경 2장. 존 오웬은 선한 목자가 "나는 선한 목자니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자기 생명을 주거니와" 목숨을 버린다는 말씀 (요 10:11) 등을 들어, 그리스도의 죽음은 구원을 가능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분이 위하여 죽으신 이들의 구원을 실제로 이룬다고 변호했습니다 존 오웬,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죽음의 죽음. 이를 ‘제한 속죄’ 또는 ‘확정 속죄’라고 부릅니다.
항론파의 다섯 조항(1610)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과 각 사람을 위하여 죽으셔서 구속과 죄 사함을 얻으셨으나 믿는 사람만 그것을 누린다고 고백했습니다 항론서. 웨슬리 전통의 감리교회와 루터교도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고 그 은혜가 믿는 이들에게 효력을 낸다고 가르치며,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도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고 가르칩니다 트리엔트 공의회, 의화에 관한 교령.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의 죄를 위하" 화목제물이 되셨고 (요일 2:2) "그분께서 정하신 때에 증언을 받기 위해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자신을 주셨느니라."라는 말씀을 듭니다 (딤전 2:6).
두 견해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함께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충분하고,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거저 전해져야 하며, 믿는 사람이 구원에 이르고,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 물음은 은혜와 선택의 물음과 이어집니다.
십자가 앞에 선 우리
십자가는 이론이기 전에 사랑의 사건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이라고 부릅니다 (갈 2:20). 숨을 거두시기 전에 예수께서는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식초를 받으신 뒤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신 뒤 숨을 거두시니라." 하셨습니다 (요 19:30).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장면에서 "그분은 더 하실 일이 없을 때에만 돌아가셨으니, 목숨을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는 분다우십니다"라고 말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그분이 하셔야 할 일은 남김없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가볍게 여길 수도 없고, 내 죄가 너무 커서 용서받지 못한다고 절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복음이 무엇인지는 복음이란 무엇인가?에서, 십자가 뒤에 밝아 온 아침은 다음 과에서 봅니다.
연습
- 연습 1 / 7
마가복음 10:45에서 예수께서는 자기 목숨을 무엇으로 주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십니까?
- 연습 2 / 7
로마서 3:25-26에 따르면 하나님이 예수를 화목제물로 세우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 연습 3 / 7
속죄를 설명한 인물과 그가 강조한 그림의 연결이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4 / 7
골로새서 2:15와 히브리서 2:14-15가 특히 드러내는 십자가의 면은 무엇입니까?
- 연습 5 / 7
그리스도의 죽음이 무한한 가치로 온 세상에 충분하지만, 택하신 이들을 실제로 구속하도록 정해졌다고 가르친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6 / 7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고 가르치는 이들이 특히 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 연습 7 / 7
속죄에 대해 여러 전통이 함께 고백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출처
- 니케아·콘스탄티노플 공의회, 니케아 신경 325/381 — 동서방 교회가 함께 고백하는 신조. 읽기
- 이레나이우스, 이단 반박 — 180년경. 영지주의에 맞서 창조주 하나님과 성육신을 변호하고,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새롭게 하신다(총괄갱신)고 가르친다. 5권은 의인들이 새로워진 창조 안에서 다스린다는 소망을 말한다. 읽기
- 구스타프 아울렌, 승리자 그리스도 1930 — 교부들의 속죄론을 죄와 죽음과 마귀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로 정리한 책.
- 안셀무스, 하나님은 왜 인간이 되셨는가 1098 — 속죄와 성육신에 대한 고전적 논의. 읽기
- 장 칼뱅, 기독교 강요 1559 — 개혁파 신학의 대표 저작. 읽기
-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563 — 독일 개혁교회의 요리문답(129문). 제1문: 살아서나 죽어서나 유일한 위로는 무엇인가. 죄와 구원과 감사의 세 부분으로 신경, 성례, 십계명, 주기도문을 가르친다. 읽기
- 피에르 아벨라르, 로마서 주석 — 12세기.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안에 사랑을 불러일으킨다는 속죄 이해(도덕 감화설)와 연결되는 저작.
-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 1265–1274년. 중세 신학을 집대성한 저작. 하나님과 창조와 섭리, 인간과 은혜, 그리스도와 성례를 두루 다루며, 하나님은 이성으로도 알려지시나 구원의 진리는 계시로 주어진다고 가르친다. 읽기
- 도르트 총회, 도르트 신경 1619 — 항론파에 대한 개혁교회의 답. 무조건적 선택, 택자를 위한 속죄, 은혜로 말미암는 거듭남, 성도의 견인을 다섯 교리로 고백한다. 읽기
- 존 오웬,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죽음의 죽음 1647 —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이들을 위해 죽으셨다는 ‘제한 속죄’(확정 속죄)의 고전적 변호.
- 항론파, 항론서(다섯 조항) 1610 — 아르미니우스를 따르는 이들의 고백. 예지된 믿음에 따른 선택, 모든 이를 위한 속죄, 거부할 수 있는 은혜를 말한다.
- 트리엔트 공의회, 의화에 관한 교령 1547 — 칭의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공식 가르침.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공교회의 신경(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칼케돈 신앙정의)을 기준으로 삼았고,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