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사전

소명

Vocation

소명은 하나님이 사람을 부르시는 부르심으로, 먼저 그리스도께 나아와 그분의 백성이 되라는 부르심이며, 나아가 가정과 일터와 사회의 각자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부르심입니다. 종교개혁은 목회나 수도원의 삶뿐 아니라 정직한 모든 일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부르심 그대로

‘소명’(召命)은 부르심이라는 뜻입니다. 신약에서 부르심, 곧 클레시스(κλῆσις)는 먼저 하나님이 복음으로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부르시는 일을 가리킵니다(효과적 부르심 참고). 바울은 신자들에게 "그러므로 주의 갇힌 자 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너희를 부르실 때에 허락하신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걷고"라고 권합니다 (엡 4:1). 그런데 그 부르심은 사람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받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대로, 주께서 각 사람을 부르신 대로 그는 걸을지니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같이 규정하노라."고 말하고 (고전 7:17), 종이든 자유인이든, 결혼했든 아니든 그 자리가 곧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가 된다고 가르칩니다.

또 너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해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너희가 상속 유업의 보상을 주에게서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골 3:23-24

일은 타락의 벌이 아니라 처음부터 주신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에덴 동산에 두사 "주 하나님께서 남자를 데려다가 에덴의 동산에 두시고 그것을 가꾸고 지키게 하셨더라." (창 2:15),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합니다 (고전 10:31). 매튜 헨리는 동산의 아담을 두고, 하늘의 상속자들도 이 땅에서 할 일이 있으며 "그들이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일을 한다면, 무릎을 꿇고 있을 때와 똑같이 참으로 그분을 섬기는 것입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종교개혁이 되찾은 부르심

중세 교회에서 ‘소명’(vocatio)은 흔히 수도원이나 성직으로 부르시는 부르심을 가리켰습니다. 일상의 일을 귀히 여긴 수도회와 신학자들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은 기도와 관상의 삶을 더 높은 길로 여겼습니다. 루터는 세례받은 모든 신자가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이며, 구두장이와 대장장이와 농부도 저마다 자기 일과 직분으로 이웃을 섬긴다고 가르쳤습니다 루터, 독일 귀족에게 보내는 글. 이것이 만인 제사장의 가르침과 이어집니다. 칼뱅은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삶의 자리를 정해 주시고 그것을 부르심이라 하셨으며,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하는 일이라면 아무리 낮아 보이는 일도 하나님 앞에서 빛나고 귀하다고 말했습니다 칼뱅, 기독교 강요 3.10.6. 19세기 말 아브라함 카이퍼는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권자이시라고 말했습니다 카이퍼, 영역 주권.

전통마다 다른 강조

가톨릭 교회에서는 소명을 흔히 ‘성소’라고 부르며 사제나 수도자의 길로 부르시는 부르심을 가리키는 일이 많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모든 신자가 어떤 처지에 있든 거룩함으로 부름받았다고 가르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 40항. 루터교회는 소명을 무엇보다 이웃을 섬기는 자리로, 개혁교회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명으로 강조해 왔습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소명’이 흔히 목회자나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그런 특별한 부르심도 귀하지만, 종교개혁 전통은 이 말을 그리스도인 모두의 부르심으로 넓혀 읽습니다. 소명은 우리의 선행이 구원을 얻는 수단이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은 이가 일상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길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개혁주의 신앙 과정의 소명: 삶의 모든 영역 과와 일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도 읽어 보십시오.

출처

  1. 마르틴 루터, 독일 귀족에게 보내는 글 1520
  2. 장 칼뱅, 기독교 강요 1559 읽기
  3. 아브라함 카이퍼, 영역 주권 1880
  4.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인류의 빛) 40 (1964)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