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의
The righteousness of God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이 언제나 옳으시고 자기 약속에 신실하셔서 공정하게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성품과 행하심입니다. 복음에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이에게 값없이 주셔서 그분 앞에 설 수 있게 하시는 의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옳으시고 신실하신 하나님
구약에서 ‘의’로 옮긴 체다카(צְדָקָה)와 그 짝말 체데크는 바른 기준에 맞는 것, 특히 관계와 약속에 신실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 기준이 되시는 분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그분은 반석이시요 그분의 일은 완전하니 그분의 모든 길은 판단의 공의이니라. 그분은 진실하고 불법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의로우시고 올바르시도다."라고 노래했고 (신 32:4), 아브라함은 소돔을 두고 "주께서 이런 식으로 행하여 의로운 자들을 사악한 자들과 함께 죽이시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의로운 자들을 사악한 자들처럼 여기시는 것도 결코 있을 수 없나이다. 온 땅의 심판자께서 의롭게 행하여야 하지 아니하리이까? 하매"라고 물었습니다 (창 18:25). 하나님의 의는 죄를 가볍게 넘기지 않으시는 공정한 심판에서 드러납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하나님의 의는 자기 백성을 건지시는 구원의 행하심이기도 합니다. 시편은 "주께서 자신의 구원을 알리시며 자신의 의를 이교도들의 눈앞에서 공개적으로 보이셨도다."라고 노래하고 (시 98:2), 이사야서에서도 하나님의 의와 구원은 나란히 다가옵니다 (사 46:13). 의로우신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고 억눌린 이를 바로 세우시는 분입니다.
복음에 나타난 의
바울은 복음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까지 계시되어 있나니 이것은 기록된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7
사람은 아무도 자기 의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러나 이제는 율법 밖에 있는 하나님의 의 곧 율법과 대언자들이 증언한 의가 드러났느니라." (롬 3:21), 그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에게 차별 없이 미치는 의입니다 (롬 3:22).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세우셔서 죄를 벌하시는 자신의 의를 보이시고, 동시에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십니다 (롬 3:26). 십자가에서 공의와 긍휼이 함께 드러납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에서 난 자기 의가 아니라 "율법에서 난 내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난 의를 소유한 채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를 바랐습니다 (빌 3:9). 이 의를 받는 일이 칭의이고,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 것으로 여겨지는 일을 전가라고 합니다.
존 웨슬리는 로마서 1:17을 풀며 두 뜻을 함께 말합니다. 이 말은 때로 "하나님의 영원하고 본질적인 의를 뜻하는데, 그것은 공의와 긍휼을 모두 포함하며 죄를 정죄하시면서도 죄인을 의롭다 하심에서 특별히 드러납니다" 웨슬리. 그러나 바울이 칭의를 말할 때에는 하나님이 마련하시고 주시는 믿음의 의를 뜻한다고 그는 덧붙입니다.
이 말을 읽어 온 길
마르틴 루터는 이 말을 죄인을 벌하시는 공의로만 알아 오래 괴로워하다가,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믿음으로 받는 선물임을 깨달았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는 뒤에 아우구스티누스도 이 말을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의로 풀었음을 발견했다고 덧붙입니다 루터, 라틴어 저작 전집 서문. 이 이야기는 신학 과정의 루터: 십자가 신학과 칭의 과에서 더 읽을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 교회들은 로마서 1:17과 3:21-22의 하나님의 의를 무엇보다 하나님이 주셔서 믿는 이에게 돌려지는 의로 읽었습니다. 가톨릭 교회도 아우구스티누스를 따라 그것을 하나님이 스스로 의로우신 의가 아니라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의로 보지만, 트리엔트 공의회는 그 의가 은혜로 우리 안에 부어져 속사람을 새롭게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 의화에 관한 교령. 20세기 이후 많은 성경학자는 이 말을 무엇보다 하나님 자신의 구원하시는 행하심과 언약에 대한 신실하심으로 읽습니다. 복음주의 안에서도 ‘바울에 관한 새 관점’과 연결된 학자들은 이 뜻을 강조하고, 다른 이들은 그것이 선물로 주시는 의라는 뜻을 밀어내지 않는다고 답합니다. 많은 해석자는 웨슬리처럼 두 뜻이 십자가에서 만난다고 봅니다.
출처
- 마르틴 루터, 라틴어 저작 전집 서문 1545
- 트리엔트 공의회, 의화에 관한 교령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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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