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와 성찬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에 세례와 성찬을 주셨습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와 합하여 그분의 백성이 되는 표이고, 성찬은 그분의 죽으심을 기념하고 전하며 그분께 참여하는 식탁입니다. 성례의 수, 세례를 받는 사람과 그 방식, 성찬에서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방식은 교회마다 다르게 이해합니다.
보이는 말씀
복음은 귀로 듣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교회에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입으로 맛보는 것도 주셨습니다. 물로 씻는 세례와,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성찬입니다. 교회는 이것을 성례라고 불러 왔습니다. 라틴어 성경은 ‘비밀’을 뜻하는 을 여러 곳에서 사크라멘툼으로 옮겼습니다 (엡 5:32). 서방 교회의 ‘성례’(sacrament)라는 말은 이 라틴어에서 왔고, 정교회는 지금도 성례를 ‘신비’라고 부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요한복음 15:3을 풀며 "요소에 말씀이 더해지면 성례가 됩니다"라고 썼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대목에서 그는 성례를 ‘보이는 말씀’이라고 불렀습니다. 다른 설교에서는 성례라는 이름의 뜻을 "거기서 보이는 것은 하나이고 이해되는 것은 다른 하나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설명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92문도 성례를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거룩한 규례로서, 감각할 수 있는 표로 그리스도와 새 언약의 은덕을 신자에게 나타내고 인 치고 적용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92문.
세례: 그리스도와 합하여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을 보내시며 세례를 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
마 28:19
오순절에 베드로는 "이에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고 외쳤고 (행 2:38), 그날 삼천 명가량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세례의 뜻을 이렇게 풉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분과 함께 묻혔나니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힘입어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진 것 같이 우리도 생명의 새로움 속에서 걷게 하려 함이라.
롬 6:4
세례를 받은 이는 "너희 중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자는 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갈 3:27). 세례는 그리스도와 합하여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에 참여하고 그분의 백성이 되는 표이며, 평생에 한 번 받습니다. 니케아 신경도 죄 사함을 위한 한 세례를 고백합니다 니케아 신경. 100년 무렵의 『디다케』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흐르는 물에서 세례를 주되, 물이 넉넉하지 않으면 머리에 세 번 물을 부으라고 가르칩니다 디다케 7장. 세례와 거듭남의 관계를 교회마다 어떻게 이해하는지는 거듭남과 성령의 내주에서 다룹니다.
성찬: 주의 죽으심을 전하는 식탁
내가 너희에게도 전해 준 것은 내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님께서 배반당하신 바로 그 밤에 빵을 집으사 감사를 드리신 뒤에 그것을 떼시고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찢긴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라, 하시고
고전 11:23-24
바울은 이어서 "이는 너희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분께서 오실 때까지 보이기 때문이니라."고 말합니다 (고전 11:26). 성찬은 십자가를 돌아보고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는 식탁이며,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서로 하나 됨을 보여 주는 식탁입니다 (고전 10:17). 많은 이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느니라."라는 말씀도 (요 6:56) 이 식탁의 빛으로 읽습니다. 155년경 유스티누스는 세례를 받은 이들만 이 음식에 참여하며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을 보통의 떡과 음료로 받지 않는다고 증언합니다 유스티누스, 제1변증서 66장. 매튜 헨리는 "외적 행위가 이 거룩한 규례에서 해야 할 일의 전부이거나 주된 부분은 아닙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참여하는 이는 그리스도를 자기의 주와 생명으로 모시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마다 다르게 이해하는 것
성례는 몇 가지인가. 개신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제정하시고 복음의 약속을 담으신 세례와 성찬 둘을 성례로 지키며, 침례교회 등은 이를 흔히 ‘규례’라고 부릅니다.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는 여기에 견진(정교회는 세례 때 베푸는 도유), 고해, 병자, 성품, 혼인 성사를 더해 일곱 성사를 말합니다. 어느 쪽에서든 세례와 성찬이 가장 중심에 있는 성례입니다.
누구에게 세례를 주는가. 정교회, 가톨릭 교회, 루터교, 개혁교회·장로교회, 성공회, 감리교회는 믿음을 고백하는 어른과 함께 신자의 자녀에게도 세례를 줍니다. 약속이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손과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을 향한 것이니라, 하고"에게 있다는 말씀과 (행 2:39) 루디아와 간수의 온 집이 세례를 받은 기록 (행 16:15, 행 16:33), 할례와 세례를 나란히 놓는 말씀에 기대어 (골 2:11-12), 세례가 아이의 응답보다 먼저 다가오는 하나님의 언약의 표라고 봅니다.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에게 세례는 아이에게도 어른만큼 필요한 새로 남이며, 가톨릭 교회는 세례가 원죄를 씻는다고 덧붙입니다. 침례교회와 재세례파, 많은 오순절 교회와 자유 교회는 회개하고 믿음을 고백한 이에게 세례를 줍니다 슐라이트하임 신앙고백 1조 제2차 런던 침례교 신앙고백. 신약의 세례는 말씀을 받은 이들의 세례였고 (행 2:41), 세례는 믿는 이 자신의 고백이라고 봅니다.
어떤 방식으로 주는가. 물에 잠기는 방식(침수례), 물을 붓는 방식, 물을 뿌리는 방식이 있습니다. 침례교회는 대체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일으켜지는 그림에 맞는 물에 잠기는 방식만이 마땅하다고 보고, 정교회는 아기에게도 세 번 물에 잠기는 방식으로 세례를 줍니다. 가톨릭 교회는 잠기는 방식과 붓는 방식을 함께 인정하고, 많은 개신교회는 붓거나 뿌리는 방식도 같은 씻음을 나타낸다고 봅니다. 『디다케』가 보여 주듯 교회는 일찍부터 물과 삼위의 이름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성찬에서 그리스도는 어떻게 계시는가. 모든 전통이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집으사 축복하시고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는 말씀을 붙들지만 (마 26:26), 이해는 다섯 갈래로 나뉩니다.
| 전통 | 이해 |
|---|---|
| 가톨릭 교회 | 축성으로 떡과 포도주의 실체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고 겉모습만 남는다(화체) |
| 정교회 | 성령의 임하심으로 참된 변화가 일어나되, 그 방식은 신비로 남겨 둔다 |
| 루터교 | 떡과 포도주 안에, 함께, 아래에 그리스도의 참 몸과 피가 계신다(성례전적 연합) |
| 개혁교회·장로교회 | 그리스도의 몸은 하늘에 계시나 믿는 이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그분을 참으로 받아 먹는다(영적 임재) |
| 츠빙글리와 많은 침례교회 |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고 전하는 식탁이며, 그분은 성령으로 모인 이들 가운데 계신다(기념설) |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은 트리엔트 공의회의 교령에 트리엔트 공의회, 성체성사에 관한 교령, 루터교의 가르침은 루터의 소교리문답에 루터, 소교리문답, 개혁교회의 가르침은 칼뱅의 기독교 강요 4권 17장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75–79문에 담겨 있습니다 칼뱅, 기독교 강요 4.17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75–79문. 칼뱅은 이 신비를 머리로 다 이해하기보다 체험한다고 고백했습니다. 루터교와 개혁교회가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몸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는 승천과 다스리심에서 다룹니다.
이렇게 다르게 이해하면서도 모든 전통은 그리스도께서 이 식탁을 명하셨고, 성찬이 그분의 죽으심을 전하며, 믿음으로 받아야 하고, 한 떡에 참여하는 이들이 한 몸이라고 고백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요한복음 6장을 풀며 "그 떡을 먹는 사람들은 서로 다투지 않으니, 하나님이 그들을 하나로 함께 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세례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것임을 말해 주고, 성찬은 그분이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를 그분의 식탁으로 부르신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세례와 성찬은 무엇인가?와 가톨릭과 개신교는 무엇이 다른가?를 보십시오.
연습
- 연습 1 / 8
아우구스티누스는 성례가 어떻게 이루어진다고 말했습니까?
- 연습 2 / 8
로마서 6:4에 따르면 세례를 받은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 연습 3 / 8
고린도전서 11:26에 따르면 성찬의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마다 무엇을 합니까?
- 연습 4 / 8
100년 무렵의 『디다케』는 세례를 어떻게 주라고 가르칩니까?
- 연습 5 / 8
세례와 성찬 외에 견진, 고해, 병자, 성품, 혼인 성사를 더해 일곱 성사를 말하는 교회는 어디입니까?
- 연습 6 / 8
믿음을 고백하는 어른과 함께 신자의 자녀에게도 세례를 주는 교회들을 바르게 묶은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7 / 8
성찬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가르치는 전통의 연결이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8 / 8
성찬에 대해 모든 전통이 함께 고백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출처
- 웨스트민스터 총회,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647 —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요리문답(107문). 제1문: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과 창조, 구원, 십계명, 성례와 기도를 가르친다. 읽기
- 니케아·콘스탄티노플 공의회, 니케아 신경 325/381 — 동서방 교회가 함께 고백하는 신조. 읽기
- 초대 교회, 디다케(열두 사도의 가르침) — 100년경. 7장은 삼위의 이름으로 주는 세례를, 9–10장은 성찬의 기도를 전한다. 읽기
- 유스티누스, 제1변증서 — 155년경. 65–67장은 2세기 교회의 세례와 성찬, 주일 예배를 묘사한다.
- 스위스 형제단, 슐라이트하임 신앙고백 1527 — 재세례파의 첫 신앙고백. 회개하고 믿는 이에게 주는 세례(1조), 세상과의 구별, 칼을 쓰지 않음(6조), 맹세하지 않음(7조) 등 일곱 조항.
- 잉글랜드 특수침례교회, 제2차 런던 침례교 신앙고백 1689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하되, 믿음을 고백한 이에게 주는 세례를 가르친다.
- 트리엔트 공의회, 성체성사에 관한 교령 1551 — 빵과 포도주의 실체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뀐다(화체)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 마르틴 루터, 소교리문답 1529 — 십계명, 사도신경, 주기도문, 세례와 성찬을 가정에서 가르치도록 쓴 루터교의 요리문답.
- 장 칼뱅, 기독교 강요 1559 — 개혁파 신학의 대표 저작. 읽기
-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563 — 독일 개혁교회의 요리문답(129문). 제1문: 살아서나 죽어서나 유일한 위로는 무엇인가. 죄와 구원과 감사의 세 부분으로 신경, 성례, 십계명, 주기도문을 가르친다. 읽기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공교회의 신경(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칼케돈 신앙정의)을 기준으로 삼았고,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