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사전

자연법

Natural law

자연법은 하나님이 창조 때 사람의 본성과 양심에 새겨 두신 도덕의 기본 질서로, 기록된 계시를 받지 못한 사람도 이성으로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옳고 그름의 원리입니다. 교회는 그 내용이 십계명의 도덕 계명과 같다고 보아 왔으며, 자연을 서술하는 물리 법칙과는 다른 말입니다.

마음에 새긴 법

하나님의 법은 시내산에서 처음 생긴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율법을 받지 못한 이방인에게도 하나님의 법이 마음에 새겨져 있다고 말합니다.

율법을 소유하지 않은 이방인들이 본성을 통해 율법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을 행할 때에 이런 사람들은 율법을 소유하지 않아도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롬 2:14

그들의 양심이 증인이 되어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을 드러냅니다 (롬 2:15). 죄를 짓는 이들도 "그들이 이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은 죽어야 마땅하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알고도 같은 일들을 행할 뿐 아니라 그런 일들 행하는 자들을 기뻐하느니라." 그렇게 합니다 (롬 1:32). 아모스서에서 하나님은 율법을 받지 않은 이웃 민족들도 그들의 잔혹함 때문에 심판하십니다 (암 1:3). 살인과 거짓 증언과 배신을 악으로 아는 앎이 모든 사람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웨슬리는 바울이 말한 ‘율법의 일’을 두고 "십계명은 자연법의 본질일 뿐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풉니다 웨슬리. 다만 그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그 일을 하는 것도 엄밀히는 선행하는 은혜로 말미암는다고 덧붙입니다. 그러므로 자연법은 하나님 없이 서는 법이 아니라 창조주의 뜻이 피조물 안에 새겨진 것이며, 일반 계시의 한 부분입니다. 여기서 ‘자연’은 물리 세계의 법칙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의 본성을 가리킵니다.

교회가 이 말을 쓰게 된 길

자연법이라는 말은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 특히 스토아학파에서 왔지만, 교부들은 이를 창조주의 법으로 새롭게 읽었습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모든 사람 안에 ‘말씀의 씨앗’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유스티누스, 제2변증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성을 가진 피조물이 하나님의 영원한 법에 참여하는 것이 자연법이며, 그 첫 원리는 선을 행하고 추구하며 악을 피하라는 것이라고 정리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종교개혁자들도 자연법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칼뱅은 하나님이 주신 도덕법이 사람의 마음에 새기신 자연법과 양심의 증언이라고 보았습니다 칼뱅, 기독교 강요 4.20. 그러나 이 앎은 죄로 흐려졌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본성의 빛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을 보여 주어 사람을 핑계할 수 없게 하지만 구원에 필요한 지식을 주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고백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1. 그래서 하나님은 마음에 새긴 법을 돌판에 다시 밝히셨고, 그 요약이 율법의 십계명입니다.

전통들이 다르게 말하는 곳

가톨릭 교회는 자연법을 도덕 가르침의 중요한 바탕으로 삼아, 모든 사람이 이성으로 알 수 있는 이 법이 사람의 존엄과 권리, 사회의 정의를 떠받친다고 가르칩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6–17세기 루터교와 개혁파 신학자들도 자연법을 시민 생활과 국가의 법을 세우는 바탕으로 가르쳤고, 하나님이 일반 은총으로 사회에 정의를 지키신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개신교는 죄가 이성을 흐리게 했으므로 자연법은 반드시 성경으로 바로잡혀야 하고, 그것으로 구원에 이를 수는 없다는 점을 더 강조합니다.

20세기에는 카를 바르트처럼 자연 신학을 거부하며 하나님을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말씀으로 안다고 한 이들이 자연법에 기대는 윤리도 경계했습니다 바르트, 교회 교의학. 오늘날 복음주의 안에서도 공적인 자리에서 자연법으로 함께 말하자는 이들과 성경에서 바로 말하자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모두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에 옳고 그름을 새기셨다는 데 함께 섭니다. 선과 악은 누가 정하는가?와 신학 과정의 토마스 아퀴나스 과도 읽어 보십시오.

출처

  1. 유스티누스, 제2변증서 13
  2.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읽기
  3. 장 칼뱅, 기독교 강요 1559 읽기
  4. 가톨릭교회, 가톨릭 교회 교리서 1992
  5. 카를 바르트, 교회 교의학 1932–1967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