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사전

효과적 부르심

Effectual calling

효과적 부르심은 하나님이 복음의 말씀과 성령으로 사람의 마음에 일하셔서 죄를 깨닫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며 의지를 새롭게 하셔서, 그리스도께 실제로 나아오게 하시는 부르심입니다. 개혁교회가 복음이 듣는 모든 이에게 전하는 바깥의 부르심과 구별하여 쓰는 말입니다.

귀에 들리는 부르심과 마음 안의 부르심

성경에서 구원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시작됩니다. 신약은 ‘부르다’라는 뜻의 칼레오(καλέω)로, 하나님이 사람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그분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을 말합니다 (벧전 2:9). 그런데 성경은 부르심을 두 가지로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혼인 잔치 비유 끝에 "부름 받은 자는 많으나 선정된 자는 적으니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마 22:14). 복음은 듣는 모든 이를 부르지만 모두가 응답하지는 않습니다. 한편 바울은 하나님이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는 자신이 예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자신이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자신이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영화롭게 하셨다고 말하고 (롬 8:30), 같은 십자가의 말씀이 어떤 이에게는 미련하게 들리지만 다른 이에게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들에게나 그리스인들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권능이시요 하나님의 지혜이시니라.

고전 1:24

빌립보의 루디아가 그 예입니다. 바울은 말씀을 전했고 "두아디라 시 출신의 자주색 옷감 장수로서 하나님께 경배하던 루디아라 하는 어떤 여자가 우리의 말을 들으매 주께서 그녀의 마음을 여시므로 그녀가 바울이 말하는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니라." (행 16:14). 개혁교회는 복음이 귀에 들리는 바깥의 부르심과, 성령께서 그 말씀으로 마음을 열어 실제로 그리스도께 나아오게 하시는 부르심을 구별하고, 뒤의 것을 효과적 부르심이라고 부릅니다. 이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은혜를 따른 것입니다 (딤후 1:9).

교회가 고백해 온 말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서의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을 두고, 부르심을 들은 모든 이가 아니라 택하신 이들을 실제로 이끄는 부르심이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도의 예정. 종교개혁 이후 개혁교회는 이 가르침을 신앙고백에 담았습니다. 도르트 신경은 하나님이 택하신 이들 안에서 참된 회심을 이루실 때 복음을 바깥으로 전하게 하실 뿐 아니라, 성령으로 마음을 밝히시고 닫힌 마음을 열며 죽어 있던 의지를 살리신다고 고백합니다 도르트 신경 셋째·넷째 교리 11조.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이렇게 요약합니다.

효과적 부르심은 하나님의 영의 사역으로서, 그분은 우리에게 우리의 죄와 비참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밝히시며, 우리의 의지를 새롭게 하셔서,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영접하도록 설득하시고 능력을 주십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31문

이 부르심은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가지 않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하나님이 부르신 이들을 "그분의 은혜로 기꺼이 하게 되어 가장 자유롭게 나아오도록" 하신다고 고백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0.1. 개혁교회는 이 부르심 안에서 성령께서 사람을 새로 나게 하시고(중생) 믿음을 일으키시며 그리스도와 연합시키신다고 보아, 이를 구원의 서정의 첫머리에 둡니다.

전통들이 다르게 말하는 곳

부르심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나오며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진심으로 전해야 한다는 데는 모든 전통이 동의합니다. 차이는 부르심이 왜 어떤 이에게 열매를 맺느냐에 있습니다. 개혁교회는 하나님이 영원 전에 택하신 이들을 정하신 때에 반드시 그리스도께 이끄시며, 그 부르심은 사람 안에서 미리 보신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에서 나온다고 가르칩니다 (선택 참고). 웨슬리·아르미니우스 전통은 복음과 함께 오는 성령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응답할 힘을 주며, 부르심은 사람이 순종할 때 열매를 맺고 거부될 수도 있다고 가르칩니다. 존 웨슬리는 로마서 8:30의 ‘부르신 그들’을 풀면서 "하늘의 부르심에 순종할 때"라고 썼습니다 웨슬리.

루터교는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거짓 시늉이 아니라 진심이며, 하나님은 그렇게 부르신 이들 안에서 말씀으로 일하기를 원하신다고 가르칩니다. 많은 이가 부름받고도 택함받지 못하는 것은 말씀을 멸시하고 성령을 거스르는 사람의 잘못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일치신조 11조. 그래서 루터교는 택하신 이들만을 위한 마음 안의 부르심을 따로 말하지 않습니다. 가톨릭 교회 안에서도 은총이 어떻게 효과를 내는지를 두고 도미니코회와 예수회가 오래 논쟁했고, 교황청은 1607년 어느 쪽도 정죄하지 않은 채 논쟁을 맺었습니다 몰리나, 자유의지와 은총의 조화. 이 차이 속에서도 모두가, 그리스도께 나아온 사람은 그 걸음을 자기 공로로 돌릴 수 없다는 데 함께 섭니다. 개혁교회의 가르침은 효과적 부르심과 성도의 견인 과에서 더 자세히 다룹니다.

출처

  1. 아우구스티누스, 성도의 예정
  2. 루터교, 일치신조 11 (1577)
  3. 루이스 데 몰리나, 자유의지와 은총의 조화 1588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