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4과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고 영원하시며 변하지 않으시고, 어디에나 계시며 모든 것을 아시고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동시에 거룩하시고 사랑이시며 의롭고 선하고 신실하신 분이시니, 이 모든 성품은 나뉘지 않는 한 분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알려 주신 이름

이 과정의 첫 과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일이 하나님이 먼저 자신을 알리시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사람은 자기 바람과 두려움을 따라 신을 그려 내기 쉽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자신에 대해 하신 말씀에서 출발합니다. 불붙은 떨기나무 앞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을 때 하나님은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곧 스스로 있는 자니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스스로 계신 이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느니라, 하라.

출 3:14

하나님은 무엇에도 기대지 않고 스스로 계십니다. 다른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존재를 받지만, 하나님은 누구에게서도 받지 않으십니다. 매튜 헨리는 이 이름을 풀며 하나님이 영원하고 변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그 본성에서와 마찬가지로 말씀에서도 변하지 않으십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스스로 계신 분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다시 반포하시며 그 성품을 밝히셨습니다.

주께서 그 앞으로 지나가시며 선포하시되, 주로다. 긍휼이 많고 은혜롭고 오래 참고 선함과 진리가 풍성한 주 하나님이로다.

출 34:6

‘인자’로 옮긴 말은 입니다. 언약으로 묶인 이를 끝까지 저버리지 않는 변함없는 사랑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같은 자리에서 "내가 긍휼을 수천에게 베풀며 불법과 범법과 죄를 용서하되 그것이 결코 죄 있는 자를 깨끗하게 하지는 아니하리라. 내가 아버지들의 불법을 자녀들과 자녀들의 자녀들에게 벌하여 삼대와 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라고도 하십니다 (출 34:7). 성경은 자비와 공의 가운데 하나를 지워서 하나님을 단순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교회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이런 성품을 ‘속성’이라 부르고, 흔히 두 갈래로 나누어 설명해 왔습니다.

하나님께만 있는 것

첫째는 하나님께만 있고 피조물에게는 없는 속성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므로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바울은 아덴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또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시는 것처럼 사람들의 손을 통해 경배를 받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숨과 모든 것을 주시기 때문이라."라고 말했습니다 (행 17:25).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시편은 "산들이 생기기 전 혹은 주께서 땅과 세상을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노래합니다 (시 90:2).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나는 주라 변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너희 야곱의 아들들이 소멸되지 아니하였느니라." (말 3:6), 빛들의 아버지는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선물은 위에서 오며 빛들의 아버지로부터 내려오거니와 그분께는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느니라." (약 1:17). 매튜 헨리는 구름이 끼어도 해가 그대로이듯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며 우리의 변화와 그림자는 그분의 어떤 변화나 바뀜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합니다 매튜 헨리.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고 모든 것을 아십니다. 시편 139편은 이것을 기도로 고백합니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리이까? 혹은 내가 주의 앞을 떠나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주께서 거기 계시오며 내가 지옥에 내 침상을 펼지라도, 보소서, 주께서 거기 계시나이다.

시 139:7-8

시인은 주께서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서는 것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이해하시오며"라고 고백하고 (시 139:2), 히브리서는 "그분의 눈앞에서 드러나지 아니하는 창조물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우리와 상관하시는 그분의 눈에 벌거벗은 채 드러나 있느니라."라고 말합니다 (히 4:13). 그러나 시인에게 이것은 차가운 감시가 아닙니다. 그는 바다 끝에 가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시 139:10).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예레미야는 "아, 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주께서 주의 크신 권능과 뻗은 팔로 하늘과 땅을 만드셨사오니 주께는 너무 어려운 일이 없나이다."라고 기도했고 (렘 32:17), 천사는 마리아에게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느니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눅 1:37). 그러나 전능은 하나님이 자기 성품에 어긋나는 일까지 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것은 우리 앞에 놓인 소망을 붙잡으려고 피난처로 도피한 우리가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실 수 없는 두 가지 불변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확고한 안위를 얻게 하려 하심이라." 분이십니다 (히 6:18). 이 문제는 하나님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가?에서 더 다룹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들이 반드시 영과 진리로 그분께 경배할지니라, 하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요 4:24). 하나님께는 몸이 없으니 어느 산이나 성전도 그분을 담지 못합니다. 성경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무슨 뜻인지는 하나님은 남성인가?에서 다룹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대목에서 높은 산을 찾는 이에게 "하나님은 높은 곳에 거하시나 낮은 자를 돌아보십니다. 그러므로 올라가려면 내려가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가장 높으신 하나님은 가장 가까이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와 나누시는 성품

둘째는 하나님이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 나누어 주시는 속성입니다. 이사야가 본 스랍들은 서로 화답하여 외쳤습니다.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 외쳐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주여, 그분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사 6:3

거룩하심은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시고 모든 악에서 깨끗하시다는 뜻입니다. 요한은 "그런즉 우리가 그분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밝히 드러내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요 그분 안에는 전혀 어둠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요일 1:5), 또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요일 4:8).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주께서는 모든 것에게 선하시니 그분의 친절한 긍휼은 그분께서 지으신 모든 것 위에 있도다." (시 145:9), 그 긍휼이 아침마다 새로워 "그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신실하심은 크시나이다."라는 고백을 낳습니다 (애 3:23). 그분의 지혜 앞에서 바울은 "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분의 판단들은 헤아릴 수 없으며 그분의 길들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라고 외칩니다 (롬 11:33).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거룩하고 사랑하며 의롭고 신실하라고 하십니다. 이 성품들은 하나님께는 무한히 있고, 우리에게는 그분을 닮아 가는 만큼 있습니다.

여기서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 속성을 모아 조립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거룩한 사랑이고, 그분의 거룩은 사랑하는 거룩입니다. 공의는 자비와 다투지 않고, 능력은 지혜와 따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교회는 이것을 하나님의 ‘단순성’이라 불렀습니다. 하나님이 쉬운 분이라는 뜻이 아니라, 부분으로 나뉘지 않는 한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자기도 의로우시며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십니다 (롬 3:26).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4문은 이 가르침을 한 문장에 담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그 존재와 지혜와 능력과 거룩하심과 공의와 선하심과 진실하심이 무한하시고 영원하시며 변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4문.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 첫머리에서 하나님을 가장 자비로우시면서 가장 의로우신 분, 가장 깊이 숨어 계시면서 가장 가까이 계신 분이라고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1.4.

하나님도 고통을 느끼실까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다고 하고 (창 6:6), 호세아에서는 하나님의 긍휼이 불붙듯 한다고 말합니다 (호 11:8). 그러면서도 성경은 하나님이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아들이 아니시니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는도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은즉 그것을 행하지 아니하시리요? 그분께서 이르셨은즉 그것을 실행하지 아니하시리요?"라고 말합니다 (민 23:19). 이 말씀들을 함께 어떻게 읽을지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의 설명은 다릅니다.

교부들과 토마스 아퀴나스,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이 그 신적 본성에서 변하지 않으시고 고난을 받지 않으신다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불변성’과 ‘고난불가능성’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이 차갑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바깥에서 흔들어 일으키는 감정이 아니라 처음부터 충만하고 흔들리지 않는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근심이나 후회 같은 말은 하나님이 우리를 참으로 대하신다는 것을 사람의 말로 낮추어 알려 주신 것이라고 봅니다. 고통에 휘둘리는 신이라면 우리가 기댈 반석이 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사랑은 정념이 아니기에 덜한 것이 아니라 더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장과 성공회의 39개 신조 1조는 하나님을 몸과 부분과 정념이 없으신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장 39개 신조 1조.

20세기에 들어 여러 전통의 많은 신학자들은 하나님이 피조물의 고통에 참으로 영향을 받으시고 함께 아파하신다고 말했습니다. 독일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십자가를 하나님 자신이 고통 속으로 들어오신 사건으로 읽었습니다 위르겐 몰트만,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이들은 하나님의 고통이 약함이 아니라 스스로 택하신 사랑에서 나온다고 하며, 사랑하는 이의 아픔에 함께 아파하지 않는 사랑은 선지자들이 그린 하나님의 사랑과 다르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호세아의 탄식 같은 말씀을 그 무게 그대로 읽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 논의는 지금도 이어지지만 함께 고백하는 것이 있습니다. 모두 하나님이 그 신실하심과 약속에서 변하지 않으신다고 믿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관심하지 않으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 육체로 참으로 고난받으셨다고 고백합니다. 베드로는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육체 안에서 고난을 당하셨은즉 그와 같이 너희도 같은 생각으로 무장하라. 육체 안에서 고난을 당한 자는 이미 죄를 그쳤나니"라고 말합니다 (벧전 4:1). 이것은 참 하나님, 참 사람에서 다시 봅니다. 이 질문은 하나님도 감정이 있으신가?와 하나님은 마음을 바꾸시는가?에서도 다룹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는 것은 시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근거입니다. 우리를 다 아시는 하나님이 변함없이 사랑하시고,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붙드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더 읽으려면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를 보십시오.

연습

  1. 연습 1 / 7

    출애굽기 3:14에서 하나님이 자기를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신 것은 무엇을 가장 먼저 말해 줍니까?

  2. 연습 2 / 7

    다음 가운데 하나님께만 있고 사람에게는 나누어 주시지 않는 속성은 무엇입니까?

  3. 연습 3 / 7

    시편 139:7-10에서 시인은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을 어떻게 고백합니까?

  4. 연습 4 / 7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5. 연습 5 / 7

    교회가 말하는 하나님의 ‘단순성’은 무슨 뜻입니까?

  6. 연습 6 / 7

    다음 중 가르침과 그것을 가르친 이의 연결이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7. 연습 7 / 7

    이 논의에서 서로 다른 견해들이 함께 고백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출처

  1. 웨스트민스터 총회,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647 —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요리문답(107문). 제1문: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과 창조, 구원, 십계명, 성례와 기도를 가르친다. 읽기
  2.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1.4 — 하나님은 가장 높으시고 가장 가까우시며, 가장 자비로우시고 가장 의로우시다고 찬양한다.
  3. 웨스트민스터 총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646 — 장로교회의 신앙고백. 성경, 하나님과 작정, 언약, 구원, 교회와 성례, 종말을 33장에 걸쳐 고백한다. 읽기
  4. 잉글랜드 교회, 39개 신조 1571 — 성공회의 신조. 하나님과 성경, 구원, 교회와 성례에 대한 잉글랜드 교회의 가르침을 39개 조항으로 정리했다.
  5. 위르겐 몰트만,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1972 —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고난에 참여하신다고 보는 20세기 신학의 대표작.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공교회의 신경(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칼케돈 신앙정의)을 기준으로 삼았고,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