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19과

성령은 누구신가

성령은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막연한 힘이 아니라 가르치시고 증언하시고 간구하시는 인격이시며, 성부와 성자와 함께 경배와 영광을 받으시는 참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창조 때부터 일하셨고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셨으며, 그리스도의 생애 내내 함께하시고 오순절에 교회에 부어지셨습니다.

또 다른 보혜사

지난 과에서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부어 주셨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그 성령은 누구실까요? 많은 사람이 성령을 하나님에게서 흘러나오는 에너지나 분위기, 혹은 뜨거운 감정쯤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떠나시기 전날 밤,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하신 약속은 다르게 말합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할 터인즉 그분께서 다른 위로자를 너희에게 주사 그분께서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거하게 하시리니

요 14:16

‘보혜사’로 옮긴 는 곁으로 부름받은 사람, 곧 법정에서 편들어 주는 변호인이나 곁에서 돕고 위로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요한일서에서는 같은 말이 예수께 쓰였고, 개역한글은 이를 ‘대언자’로 옮겼습니다 (요일 2:1). 그러니 ‘또 다른’ 보혜사란, 지금까지 제자들 곁에서 가르치고 지키시던 예수처럼 그들 곁에 계실 또 한 분이 오신다는 뜻입니다. 크리소스토무스는 이 구절을 풀며 "또 다른이라는 말은 성령의 구별되는 위격을 보여 주고, 보혜사라는 말은 그분의 동일 본질을 보여 줍니다"라고 말합니다 크리소스토무스.

예수께서는 이어서 성령이 하실 일을 말씀하십니다. 성령은 제자들에게 "위로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 그분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말하였든지 너희가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하시리라." 하시고 (요 14:26), 그리스도를 증거하시며 (요 15:26), 제자들을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분은 스스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무엇이든지 자기가 들을 것만을 말씀하시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시리라."는 분입니다 (요 16:13). 무엇보다 성령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그리스도를 높이십니다.

그분께서 나를 영화롭게 하시리니 이는 그분께서 내게서 받아 그것을 너희에게 보이실 것이기 때문이라.

요 16:14

사도행전과 서신서도 같은 말로 성령을 그립니다. 성령은 안디옥 교회에 "그들이 주를 섬기며 금식할 때에 성령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서 시킬 일을 위해 그들을 내게로 구별하라, 하시니"고 말씀하시고 (행 13:2), 두 사람을 선교의 길로 보내십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고 권하고 (엡 4:30),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모를 때 성령이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말로 할 수 없는 신음으로 친히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느니라."고 씁니다 (롬 8:26). 가르치고 증언하고 말씀하고 보내고 근심하고 간구하는 것은 힘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성경이 성령을 바람과 불과 부어지는 물에 빗대기도 하지만, 그 그림들은 이 인격의 말들과 함께 읽어야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인격이실 뿐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아나니아가 땅 값의 일부를 감추고 전부를 바친 것처럼 꾸몄을 때, 베드로는 그가 성령을 속였다고 책망한 뒤 곧바로 "땅이 남아 있었을 때에 네 것이 아니었느냐? 그것을 판 뒤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속에 품었느냐? 네가 사람들에게 거짓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였도다, 하니"라고 말했습니다 (행 5:4). 바울은 성령만이 하나님을 속속들이 아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으로 우리에게 그것들을 계시하셨으니 성령께서는 참으로 모든 것 즉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살피시느니라. 사람의 것들을 사람의 속에 있는 사람의 영 외에 어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것들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고전 2:10-11

매튜 헨리는 이 말씀이 "성령의 참된 신성과 구별되는 위격에 대한 가장 분명한 증거"라고 말합니다 매튜 헨리. 바울은 또 "이제 주께서는 그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거기에는 자유가 있느니라."라고 쓰고 (고후 3:17), 예수께서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 세례를 주라고 명하셨습니다 (마 28:19). 세 이름이 아니라 한 이름입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나란히, 같은 한 이름 안에 계십니다.

교회는 이 고백을 지키기 위해 애써야 했습니다. 4세기에 성자의 신성은 받아들이면서도 성령은 천사보다 높은 섬기는 영, 곧 피조물이라고 가르친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령과 싸우는 자들’이라 불렸고, 흔히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이던 마케도니우스의 이름과 연결됩니다. 바실리우스는 375년경 성령론을 써서 이에 답했습니다. 우리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함께 세례를 받았으니 세 분을 함께 믿어야 하고, 함께 믿는 분을 함께 영화롭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피조물의 자리로 내리면 우리를 구원한 세례 자체가 흔들린다고 그는 보았습니다 바실리우스, 성령론.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니케아 신경을 넓혀 성령에 관한 고백을 더했습니다. 성령은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고, 성부와 성자와 함께 경배와 영광을 받으시며,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분입니다 니케아 신경. 신경은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하나님께만 드리는 경배를 성령께 드림으로 같은 것을 고백합니다. 성령이 성부에게서 나오신다는 고백에 서방 교회가 훗날 ‘그리고 성자에게서’를 더한 문제는 삼위일체 과에서 다룹니다.

창조에서 오순절까지

성령은 신약에서 처음 일하기 시작하신 분이 아닙니다. 성경은 창조 때부터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시니라."고 말합니다 (창 1:2). 개역한글의 ‘신’은 하나님의 영을 가리킵니다. 시편 기자는 모든 생물을 두고 "주께서 주의 영을 보내시매 그것들이 창조되었사온즉 주께서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라고 노래합니다 (시 104:30). 신경이 성령을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 부르는 까닭입니다.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도 "대언은 옛적에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아 나오지 아니하였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자기들을 움직이시는 대로 말하였느니라." 일이었습니다 (벧후 1:21). 성경의 영감에서 본 대로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생애 전체에 함께하셨습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천사가 그녀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님께서 네게 임하시고 가장 높으신 이의 권능이 너를 덮으시리니 그런즉 또한 네게서 태어날 그 거룩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리라."라고 말했고 (눅 1:35),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는 성령이 "성령님께서 몸의 형태로 비둘기같이 그분 위에 내려오시고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매우 기뻐하노라, 하시니라."셨습니다 (눅 3:22). 나사렛 회당에서 예수께서는 이사야의 말씀을 읽으시고 그것이 자기에게 이루어졌다고 하셨습니다.

주의 영께서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그분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기 때문이라. 그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마음이 상한 자들을 고치며 포로 된 자들에게 구출을, 눈먼 자들에게 다시 보게 함을 선포하고 상처 입은 자들을 자유롭게 하며

눅 4:18

그리고 오순절에 모인 제자들은 "그들이 다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성령께서 그들에게 말하게 하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더라."했습니다 (행 2:4). 두려워 문을 닫고 모여 있던 이들이 담대히 예수를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날부터 일어난 일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성령께서는 자기 증거로 다른 이들도 증거하게 하시어, 그리스도의 친구들에게서 두려움을 없애시고 그분의 원수들의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셨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우리 곁에, 우리 안에

성령이 인격이시고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은 신앙생활을 바꿉니다. 성령이 힘이라면 우리는 그 힘을 더 얻어 쓰려고 하겠지만, 인격이시라면 우리 자신을 그분께 더 온전히 내어 드리게 됩니다. 성령은 우리가 다루는 무엇이 아니라 우리를 이끄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홀로 남겨지지 않았습니다. 기도할 말을 몰라도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고, 성경을 펼 때 그리스도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며, 우리의 눈을 늘 그리스도께로 돌리십니다. 성령을 사모하는 마음은 결국 예수를 더 알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성령이 사람을 어떻게 새로 나게 하시고 그 안에 거하시는지는 다음 과에서, 교회에 주시는 선물은 성령의 은사에서 다룹니다. 더 읽으려면 성령은 누구신가?와 삼위일체란 무엇인가?를 보십시오.

연습

  1. 연습 1 / 8

    요한복음 14:16에서 ‘보혜사’로 옮긴 헬라어 파라클레토스는 본래 어떤 사람을 가리킵니까?

  2. 연습 2 / 8

    성령께 거짓말한 것이 곧 하나님께 거짓말한 것이라고 베드로가 말한 사건은 무엇입니까?

  3. 연습 3 / 8

    다음 중 성경이 성령께서 하신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4. 연습 4 / 8

    고린도전서 2:10-11은 성령이 하나님이심을 어떻게 보여 줍니까?

  5. 연습 5 / 8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가 니케아 신경에 더한 성령에 관한 고백은 무엇입니까?

  6. 연습 6 / 8

    바실리우스가 성령의 신성을 변호하며 내세운 중요한 근거는 무엇입니까?

  7. 연습 7 / 8

    크리소스토무스는 ‘또 다른 보혜사’라는 말씀에서 무엇을 읽었습니까?

  8. 연습 8 / 8

    예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읽으신 이사야의 말씀(눅 4:18)은 성령에 대해 무엇을 보여 줍니까?

출처

  1. 바실리우스, 성령론 — 375년경. 성령이 아버지, 아들과 함께 경배와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이심을 변호한다.
  2. 니케아·콘스탄티노플 공의회, 니케아 신경 325/381 — 동서방 교회가 함께 고백하는 신조. 읽기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공교회의 신경(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칼케돈 신앙정의)을 기준으로 삼았고,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