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는 하나님이 복음으로 불러 모으신 백성입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그분의 몸이며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고, 신경은 이 교회를 하나이며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적인 교회로 고백합니다.
불러 모으신 백성
교회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먼저 십자가가 달린 건물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신약에서 교회로 옮긴 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모임을 가리킵니다. 그리스 도시에서는 소집되어 모인 시민의 회의를 뜻했고, 구약을 그리스어로 옮긴 성경에서는 하나님 앞에 모인 이스라엘 회중에 쓰였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불러 모으신 사람들이고, 건물은 그들이 모이는 곳일 뿐입니다.
베드로는 여러 지방에 흩어져 사는 신자들에게 그들이 누구인지 이렇게 일러 줍니다.
그러나 너희는 선정된 세대요 왕가의 제사장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특별한 백성이니 이것은 너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신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께 대한 찬양을 너희가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그리고 "너희가 지나간 때에는 백성이 아니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긍휼을 얻지 못하였으나 이제는 긍휼을 얻었느니라."라고 덧붙입니다 (벧전 2:10). 교회는 뜻이 맞는 사람들이 만든 모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복음으로 불러내신 백성이며, 그 부르심에는 그분의 덕을 세상에 알리는 목적이 있습니다.
몸, 성전, 신부, 가족
신약은 이 백성을 여러 그림으로 보여 줍니다. 가장 자주 나오는 것은 몸입니다. 바울은 "이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개별적으로 지체니라."고 말하고 (고전 12:27), 그 몸의 머리가 누구신지 밝힙니다.
또 모든 것을 그분의 발아래 두셨으며 그분을 모든 것 위에 머리가 되게 하사 교회를 위해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분의 몸이니 곧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의 충만이니라.
엡 1:22-23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기도 합니다.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모퉁이 돌로 하여 함께 지어져 "그분 안에서 너희도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처소로 함께 세워져 있느니라." 되어 갑니다 (엡 2:22).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주기까지 사랑하신 신부이고 (엡 5:25), 서로 돌보는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되 특히 믿음의 집안에 속한 자들에게 할지니라."입니다 (갈 6:10). 매튜 헨리는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교회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진실하고 순수하며 변함없는 본보기입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교회가 아직 티와 주름을 지니고 있어도 신랑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그림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바울은 "아무도 이미 놓은 기초 외에 능히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나니 이 기초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 하고 (고전 3:11), 예수께서는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마 16:18). 이 반석을 베드로로, 그의 고백으로, 또는 그리스도로 읽는 해석이 갈리지만, 오리게네스는 "음부의 문이 반석도 교회도 이기지 못할 것은 분명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오리게네스.
처음 교회의 삶은 한 구절에 담겨 있습니다.
그들이 흔들리지 아니하며 사도들의 교리와 교제 안에 머물고 빵을 떼며 기도하더라.
행 2:42
말씀과 교제와 성찬과 기도가 교회를 교회 되게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자기 안에 머물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세례를 주고 가르치라고 교회를 보내셨고, 세상 끝날까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 28:19-20). 교회가 왜 필요한지는 교회는 왜 필요한가?에서 더 다룹니다.
교회가 고백해 온 것
니케아 신경은 교회를 하나이며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적인 교회라고 고백합니다 니케아 신경. 교회는 한 주님과 한 믿음과 한 세례 안에서 하나이고 (엡 4:4-6), 하나님께 구별되었기에 거룩하며, 모든 곳과 모든 시대의 신자를 아우르기에 보편되고, 사도들의 가르침 위에 서서 그들의 사명을 잇기에 사도적입니다. 사도신경은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사도신경. 여기서 ‘공회’, 곧 공교회는 ‘보편적’이라는 뜻의 catholic을 옮긴 말로, 로마 가톨릭 교회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남아 있는 문헌 가운데 이 말을 교회에 쓴 가장 이른 것은 110년경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의 편지인데,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에 보편 교회가 있다고 썼습니다 이그나티우스, 서머나 교회에 보낸 편지 8장.
종교개혁자들은 참된 교회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루터교의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1530) 7조는 교회를 복음이 바르게 가르쳐지고 성례가 바르게 집행되는 성도의 모임이라고 정의합니다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7조. 개혁교회의 벨직 신앙고백(1561) 29조는 여기에 죄를 바로잡는 권징을 더하고, 모든 일을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을 따라 행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유일한 머리로 인정하는 곳을 참 교회라고 고백합니다 벨직 신앙고백 29조. 개신교회는 또 하나님만 아시는 모든 시대의 참 신자를 보이지 않는 교회로, 땅 위에서 함께 믿음을 고백하는 무리를 보이는 교회로 구별해 왔습니다. 성경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기초는 확고히 서 있고 거기에는, 주께서 자신의 백성인 자들을 아시느니라, 하며 또,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법에서 떠날지어다, 하는 글이 담긴 이 봉인이 있느니라."고 말합니다 (딤후 2:19).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는 이렇게 나누기보다, 교회가 눈에 보이는 공동체이면서 동시에 영적인 실재인 하나의 교회라고 말합니다.
서로 다르게 이해하는 것
교회를 어떻게 다스릴지에 대해서는 세 가지 이해가 두드러집니다. 감독제에서는 감독(주교)이 장로(사제)와 집사와 함께 교회를 섬깁니다. 정교회와 가톨릭 교회와 성공회는 사도들에게서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온 감독의 계승을 교회의 연속성을 지키는 표로 중시하고, 감독을 둔 많은 루터교회와 감리교회는 그 계승을 저마다 다르게 이해합니다. 이들은 이그나티우스의 편지가 이미 감독과 장로와 집사를 증언한다는 점도 듭니다.
장로제를 따르는 개혁교회와 장로교회는 신약에서 장로와 감독이 같은 직분을 가리킨다고 보고 (딛 1:5-7), 예루살렘에서 "이에 사도들과 장로들이 온 교회와 더불어 자기들의 동료 중에서 택한 사람들을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는 것을 기쁘게 여겼는데 그들은 곧 형제들 가운데 주요 인물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함께 결정한 일처럼 (행 15:22) 장로들이 함께 치리합니다. 회중제를 따르는 침례교회와 많은 자유 교회는 각 지역 교회가 그리스도 아래에서 교인들의 합의로 스스로 다스린다고 보며, "만일 그가 그들의 말 듣기를 무시하거든 교회에 그것을 말하되 그가 교회의 말 듣기를 무시하거든 너는 그를 이교도나 세리같이 여기라."라는 말씀과 (마 18:17) 온 무리가 일곱 일꾼을 택한 일을 듭니다 (행 6:5). 세 이해 모두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이시고, 직분자는 "하나님의 상속 백성 위에 주인처럼 군림하지 말고 오직 양 떼에게 본이 되라." 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벧전 5:3).
하나의 교회가 어떻게 눈에 보이는가에 대해서도 이해가 다릅니다. 가톨릭 교회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가 베드로의 후계자와 그와 친교를 이루는 주교들이 다스리는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한다고 가르치면서, 그 바깥에도 성화와 진리의 많은 요소가 있고 그것이 일치를 향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 정교회는 사도들의 믿음과 일곱 공의회의 가르침을 온전히 지켜 온 하나의 교회로 자신을 이해하며, 그 하나 됨이 같은 믿음과 감독을 중심으로 한 성찬의 친교에서 드러난다고 봅니다. 개신교회는 대체로 복음이 바르게 전해지고 성례가 바르게 집행되는 곳마다 참 교회가 있으며, 여러 교단으로 나뉜 신자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한 몸에 속한다고 봅니다. 교회가 나뉜 역사는 교회는 왜 이렇게 많이 나뉘었는가?에서 다룹니다.
이렇게 이해가 달라도 모든 전통은 같은 신경으로 하나의 교회를 고백하고, 제자들이 "다 하나가 되어" 달라는 주님의 기도를 함께 붙듭니다 (요 17:21). 그리스도인은 혼자 떨어진 돌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실 집으로 함께 지어져 가는 돌입니다. 그래서 함께 모여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서로의 짐을 집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신 세례와 성찬은 다음 과에서 다룹니다.
연습
- 연습 1 / 7
신약에서 ‘교회’로 옮긴 헬라어 에클레시아는 본래 무엇을 가리키는 말입니까?
- 연습 2 / 7
에베소서 1:22-23은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어떻게 말합니까?
- 연습 3 / 7
사도신경의 ‘거룩한 공회’에서 ‘공회’, 곧 공교회는 무슨 뜻입니까?
- 연습 4 / 7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7조는 참 교회가 어디에 있다고 말합니까?
- 연습 5 / 7
교회 정치의 형태와 그것을 따르는 교회의 연결이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6 / 7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가 베드로의 후계자와 그와 친교를 이루는 주교들이 다스리는 교회 안에 존재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어느 교회입니까?
- 연습 7 / 7
감독제, 장로제, 회중제를 따르는 교회들이 함께 동의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출처
- 니케아·콘스탄티노플 공의회, 니케아 신경 325/381 — 동서방 교회가 함께 고백하는 신조. 읽기
- 고대 교회, 사도신경 — 로마 교회의 세례 신앙고백에서 자란 서방 교회의 기본 신조. 읽기
-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서머나 교회에 보낸 편지 — 110년경. ‘보편 교회’(가톨릭 교회)라는 말이 처음 나오는 문헌. 8장: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 보편 교회가 있다.
- 루터교,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1530 — 루터교의 기본 신앙고백.
- 귀도 드 브레, 벨직 신앙고백 1561 —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신앙고백. 하나님을 아는 길(창조와 성경)에서 창조, 구원, 교회의 표지와 성례까지 37개 조항으로 고백한다. 읽기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인류의 빛) 8 (1964) — 그리스도의 한 교회가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하며(subsistit in), 그 밖에도 성화와 진리의 여러 요소가 있다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공교회의 신경(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칼케돈 신앙정의)을 기준으로 삼았고,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