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1과

하나님이 자신을 알리심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먼저 자신을 알리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창조 세계와 양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능력과 선하심을 보이시고, 선지자들과 마침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하셨으며, 그 말씀은 지금 성경으로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다가오십니다

하나님을 알고 싶은 마음은 많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망원경으로 찾아내거나 실험으로 증명할 수 있는 세상 속의 한 물건이 아닙니다. 그분은 온 세상을 지으신 무한하고 거룩한 분이시고, 피조물은 제힘으로 그분께 올라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일이 우리의 탐구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알리시는 데서 시작된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을 계시라고 부릅니다.

신약에서 ‘계시’로 옮긴 말은 입니다. 덮여 있던 것을 벗겨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풀어야 할 수수께끼가 아니라, 스스로 덮개를 걷고 자신을 보여 주시는 인격이십니다. 교회는 그 방식을 크게 둘로 나누어 설명해 왔습니다. 창조 세계와 양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일반 계시, 그리고 역사 속에서 말씀하시고 마침내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특별 계시입니다.

하늘과 양심의 증언

시편 기자는 하늘을 바라보며 그것이 설교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하늘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드러내고 궁창이 그분의 손으로 행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낮은 낮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보이니

시 19:1-2

말소리는 없지만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진다고 시편은 이어 갑니다. 바울은 이 증언이 무엇을 알려 주는지 더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분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권능과 신격은 세상의 창조 이후로 분명히 보이며 만들어진 것들을 통해 깨달아 알 수 있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변명할 수 없느니라.

롬 1:20

창조 세계는 지으신 분이 계시다는 것과 그분이 영원하고 능력 있는 분이심을 보여 줍니다. 그분의 선하심도 보여 줍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르던 루스드라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비와 결실기로 그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시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한 일을 행하시고 우리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주시며 결실의 계절을 주사 음식과 기쁨으로 우리 마음을 채워 주심으로써 증거 없이 자신을 내버려두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었다고 말했습니다 (행 14:17).

사람 안에도 증인이 있습니다. 율법을 받지 못한 이방인에게도 양심이 있어, 그 생각이 "이런 사람들은 또한 자기 양심이 증언하며 자기 생각들이 서로 고소하고 변명하는 가운데 자기 마음속에 기록된 율법의 행위를 보이느니라.)" 옳고 그름을 증언합니다 (롬 2:15). 양심이 우리를 찌를 때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책임이 있는 존재임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 증언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지만 죄인을 향한 그분의 긍휼은 말하지 않고, 양심은 고발할 수는 있어도 용서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바울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면서도 영화롭게 하지 않아 "그들이 하나님을 알되 그분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지도 아니하고 감사하지도 아니하며 오히려 자기들의 상상 속에서 허망해지고 또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고 덧붙입니다 (롬 1:21). 매튜 헨리는 이 장의 이방 세계를 두고 "그들은 하나님에게서 떠나 방황하여, 복음의 계시가 막아 주지 않았다면 참된 종교의 모든 흔적이 사라졌을 것입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일반 계시는 우리를 핑계할 수 없게 하지만, 그것만으로 우리를 하나님께 돌아가게 하지는 못합니다.

선지자들과 아들 안에서

그래서 하나님은 더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지시고,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시고, 선지자들을 보내어 하신 일과 하실 일을 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행하심과 말씀하심은 늘 함께 갔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말씀이 가리키던 분이 오셨습니다.

지나간 때에는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언자들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며 그분을 모든 것의 상속자로 정하시고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들을 만드셨느니라.

히 1:1-2

아무도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으되 아버지 품속에 계신 독생자께서 그분을 밝히 드러내셨느니라.

요 1:18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에 관한 소식을 전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보여 주십니다. 크리소스토무스는 아버지 품 속에 계신다는 말을 풀며 "품 속에 거하는 것은 단순히 보는 것보다 훨씬 큰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크리소스토무스. 아버지를 가장 깊이 아시는 분이 아버지를 알려 주셨다는 뜻입니다. 이 계시는 사도들의 증언으로 기록되어 지금 성경으로 우리 손에 있습니다. 성경이 어떤 뜻에서 하나님의 말씀인지는 다음 과에서 다룹니다.

개혁교회의 벨직 신앙고백(1561) 2조는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두 수단’을 고백합니다. 첫째는 창조와 보존과 통치입니다. 이 세계는 우리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책과 같아서, 크고 작은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글자와 같다고 말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으로, 하나님은 이 말씀으로 그분의 영광과 우리의 구원을 위해 알아야 할 만큼 자신을 더 분명하고 충분하게 알리신다고 고백합니다 벨직 신앙고백 2조. 칼뱅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마음에 ‘신성에 대한 감각’을 심어 두셨기에 누구도 하나님을 전혀 몰랐다고 핑계할 수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칼뱅, 기독교 강요 1.3.

이성은 어디까지 알 수 있을까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다르게 답해 온 질문이 있습니다. 성경 없이 이성만으로 하나님을 얼마나 알 수 있을까요?

가톨릭 전통은 이성을 높이 평가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세상에서 출발하여 하나님이 계심을 논증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진리도 이성에만 맡기면 소수의 사람만이 오랜 시간 끝에 많은 오류와 섞어서 알게 되므로 하나님이 계시로 알려 주시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고, 삼위일체와 성육신 같은 구원의 신비는 계시로만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70)는 로마서 1:20을 들어, 하나님이 인간 이성의 자연적인 빛으로 피조물에서 확실히 알려지실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 하느님의 아들.

많은 개혁파와 루터교 신학자들은 같은 장을 읽으면서 그다음 구절들을 강조합니다. 창조의 증언은 참되고 분명하지만, 죄로 어두워진 마음은 그것을 바르게 받지 못하고 오히려 우상으로 바꾼다는 것입니다 (롬 1:21-23). 칼뱅은 성경을 안경에 빗대었습니다. 눈이 흐린 사람이 안경을 써야 책을 읽듯, 우리도 성경을 통해서야 창조 안의 하나님을 바르게 본다는 것입니다 칼뱅, 기독교 강요 1.6. 루터는 하나님이 계시고 의로우시다는 일반적인 앎과,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시는지 그리스도 안에서 아는 참된 앎을 구별했습니다 루터, 갈라디아서 강해.

일부 현대 개신교 신학자들은 더 나아갔습니다. 스위스의 신학자 카를 바르트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친히 말씀하시는 곳에서만 알려지신다고 보고 자연 신학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카를 바르트, 교회 교의학. 1930년대 독일에서 민족과 역사 속에 하나님의 계시가 있다고 내세우는 목소리가 커질 때, 그는 사람이 자연에서 찾아낸 하나님은 결국 사람을 닮은 우상이 되기 쉽다고 경고했습니다.

이 견해들은 서로 다르지만 함께 고백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느 쪽도 이성으로 복음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모두 창조가 하나님의 작품이며,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 지식은 그분의 말씀과 아들을 통해 온다고 고백합니다.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에 대한 질문은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에서, 하나님이 왜 더 분명히 보이지 않으시는지는 하나님은 왜 보이지 않는가?에서 더 다룹니다.

계시는 선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찾아낸 업적이 아니라 그분이 우리를 찾아오신 은혜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하늘을 보며 감사하고, 양심이 찔릴 때 숨지 않고 그리스도께 나아가며, 성경을 펼 때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섭니다. 예수께서는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었으되 네가 아직도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 네가 말하기를,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하느냐?"이라고 하셨습니다 (요 14:9). 하나님이 오늘 어떻게 말씀하시는지는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시는가?를 보십시오.

연습

  1. 연습 1 / 8

    창조 세계와 양심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자기 알리심을 무엇이라 부릅니까?

  2. 연습 2 / 8

    로마서 1:20에 따르면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3. 연습 3 / 8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고백하기로, 일반 계시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4. 연습 4 / 8

    히브리서 1:1-2에 따르면 하나님은 마지막에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5. 연습 5 / 8

    벨직 신앙고백 2조가 말하는,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두 수단은 무엇입니까?

  6. 연습 6 / 8

    다음 중 견해와 그 견해를 가르친 이의 연결이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7. 연습 7 / 8

    칼뱅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보게 하는 성경을 무엇에 빗대었습니까?

  8. 연습 8 / 8

    가톨릭, 개혁파, 루터교, 바르트의 견해가 모두 함께 고백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출처

  1. 귀도 드 브레, 벨직 신앙고백 1561 —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신앙고백. 하나님을 아는 길(창조와 성경)에서 창조, 구원, 교회의 표지와 성례까지 37개 조항으로 고백한다. 읽기
  2. 장 칼뱅, 기독교 강요 1559 — 개혁파 신학의 대표 저작. 읽기
  3.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 1265–1274년. 중세 신학을 집대성한 저작. 하나님과 창조와 섭리, 인간과 은혜, 그리스도와 성례를 두루 다루며, 하나님은 이성으로도 알려지시나 구원의 진리는 계시로 주어진다고 가르친다. 읽기
  4. 제1차 바티칸 공의회, 가톨릭 신앙에 관한 교의 헌장(하느님의 아들) 1870 — 하나님은 창조된 사물을 통해 인간 이성의 자연적 빛으로 확실히 알려지실 수 있다고 가르친다. 계시와 이성의 관계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5. 마르틴 루터, 갈라디아서 강해 1535 — 율법과 복음,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를 다룬 루터의 대표 저작.
  6. 카를 바르트, 교회 교의학 1932–1967 — 20세기 개신교 신학의 대표작.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말씀으로 알려지신다고 보고 자연 신학을 거부했으며, 하나님의 형상을 관계로 이해했다.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공교회의 신경(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칼케돈 신앙정의)을 기준으로 삼았고,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