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와 견인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구원하셨고, 성령은 믿는 이를 평생에 걸쳐 그리스도를 닮아 가게 하십니다. 교회들은 이생에서 성화가 어디까지 이르는지, 참된 신자가 끝내 떨어져 나갈 수 있는지를 서로 다르게 말하지만, 우리를 붙드는 소망이 우리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있다는 데 함께 섭니다.
거룩하게 하시려고
지난 과에서 하나님이 죄인을 은혜로 의롭다 하신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용서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구원하셨습니다. 성경에서 거룩의 기본 뜻은 하나님께 구별되어 그분께 속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3의 ‘거룩함’으로 옮긴 헬라어 도 하나님께 구별되어 드려지는 일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바울은 문제가 많던 고린도 교인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너희 중에 이 같은 자들이 더러 있었으나 너희가 우리 하나님의 영을 통해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씻기고 거룩히 구별되어 의롭게 되었느니라.
고전 6:11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께 구별되었습니다. 동시에 성경은 거룩함을 평생 따라가야 할 부르심으로도 말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곧 너희가 거룩히 구별되는 것이라. 너희는 음행을 삼가고"고 하고 (살전 4:3), 베드로는 "오직 너희를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 같이 너희도 온갖 종류의 행실에서 거룩할지니라."고 권합니다 (벧전 1:15). 성화는 이미 받은 신분이면서 날마다 자라 가는 삶입니다.
그 길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된 것은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분과 함께 묻혔나니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힘입어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진 것 같이 우리도 생명의 새로움 속에서 걷게 하려 함이라."이며 (롬 6:4),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참으로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해 산 자로 여길지어다." 여기라고 권합니다 (롬 6:11). 이 변화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 가리지 않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바라보며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렀나니 이것은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고후 3:18
그렇다고 우리가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순종한 것 같이 내가 있을 때뿐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일하여 드러내라. 너희 안에서 일하사 자기가 참으로 기뻐하는 것을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라."라고 말합니다 (빌 2:12-13). 하나님이 일하시기에 우리도 일합니다. 이 길에는 싸움도 있습니다. "육신은 성령을 대적하여 욕심을 부리고 성령은 육신을 대적하나니 이 둘이 서로 반대가 되므로 너희가 원하는 것들을 너희가 능히 하지 못하느니라." (갈 5:17). 매튜 헨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힌 옛 본성이 "약해져서 죽어 가는 상태에 있으나, 여전히 생명을 위해, 심지어 승리를 위해 몸부림칩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그래서 교회는 처음부터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방편, 곧 말씀과 기도와 성례와 성도의 교제 안에서 자라 갔습니다 (행 2:42).
이생에서 어디까지 자라는가
성화가 이 땅에서 어디까지 이르는지에 대해 전통들은 강조점이 다릅니다. 개혁교회·장로교회는 성화가 사람 전체에 미치지만 이생에서는 완전하지 않다고 고백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3장은 신자 안에 부패의 잔재가 남아 육체와 성령의 싸움이 계속되지만, 그리스도의 영이 끊임없이 힘을 주시므로 거듭난 부분이 이기고 성도는 은혜 안에서 자란다고 말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3장.
루터교는 그리스도인이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이라는 루터의 말을 소중히 여깁니다 루터, 갈라디아서 강해. 그리스도의 의로는 온전히 의롭지만 자기 안에는 여전히 죄가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장은 날마다 세례로 돌아가는 삶입니다. 루터의 소교리문답은 세례가 우리 안의 옛 아담이 날마다 회개로 죽고 새 사람이 날마다 일어나야 함을 뜻한다고 가르칩니다 루터, 소교리문답.
웨슬리 전통은 더 큰 기대를 품습니다. 존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의 완전’ 또는 ‘온전한 성화’를 이생에서 구할 은혜로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실수나 연약함이나 유혹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마음을 채우고 다스리는 상태이며, 믿음으로 받는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웨슬리, 그리스도인의 완전. 그 근거로 "평강의 바로 그 하나님께서 너희를 온전하게 거룩히 구별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흠 없이 보존해 주시기를 구하노라."라는 바울의 기도를 듭니다 (살전 5:23).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는 성화를 은혜 안에서 자라 가는 평생의 길로 말합니다. 가톨릭 교회는 의롭게 된 이의 의가 은혜 안에서 자라 간다고 가르치고, 정교회는 이 길을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해 가는 신화(테오시스)로 이해합니다. 모든 전통이 "만일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우리가 말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이며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라는 말씀을 진지하게 받습니다 (요일 1:8).
끝까지 지키심과 경고
성화의 길을 걷는 이는 묻습니다. 내가 끝까지 갈 수 있을까? 성경은 먼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말합니다. "너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 일을 이루실 것 바로 이것을 나는 확신하노라." (빌 1:6). 베드로는 믿는 이들이 "너희는 마지막 때에 드러내려고 예비된 구원에 이르도록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호받고 있느니라."라고 말합니다 (벧전 1:5).
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노니 그들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또 아무도 내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하리라. 그들을 내게 주신 내 아버지는 모든 것보다 크시매 아무도 내 아버지 손에서 능히 그들을 빼앗지 못하느니라.
요 10:28-29
바울은 어떤 것도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창조물이라도 능히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지 못하리라."고 확신합니다 (롬 8:39). 그러나 같은 성경에 엄한 경고도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한번 빛을 받고 성령에 참예했다가 "만일 떨어져 나가면 다시 그들을 새롭게 하여 회개에 이르게 함이 불가능하니 그들은 자기들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을 새로이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그분을 모욕하느니라."라고 말하고 (히 6:6), 바울은 "그런즉 스스로 서 있는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할지니라."고 하며 (고전 10:12), 예수께서는 자기 안에 거하지 않는 사람은 가지처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그는 가지처럼 버려져서 시드나니 사람들이 그것들을 모아 불 속에 던져 태우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요 15:6). 이 두 말씀은 일찍부터 함께 읽혔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요한복음 10장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안전을 확신하십니다"라고 말하고 아우구스티누스, 테오필락투스는 유다가 어떻게 멸망했느냐고 물은 뒤 "그가 끝까지 견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합니다 테오필락투스.
개혁교회·장로교회는 ‘성도의 견인’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효과적으로 부르시고 거룩하게 하신 이들은 은혜의 자리에서 완전히, 또 끝내 떨어져 나가지 않고 끝까지 견딘다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7장. 도르트 신경은 신자도 한동안 큰 죄에 빠질 수 있지만, 그들이 지켜지는 것은 자기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이며 하나님이 그들을 다시 회개로 새롭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도르트 신경 다섯째 교리. 이들은 경고를 하나님이 성도를 깨어 있게 하시는 수단으로 읽고, 떠나간 이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그들이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분명히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리라. 그러나 그들이 나간 것은 그들이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음을 나타내려 함이니라."라는 말씀을 듭니다 (요일 2:19).
웨슬리 전통과 아르미니우스 전통, 루터교,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는 참된 신자도 믿음을 저버리고 떨어져 나갈 수 있으며 회개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12조는 의롭게 된 사람도 성령을 잃을 수 있고 돌이키면 용서받는다고 고백합니다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12조. 이들에게 경고는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알리는 사랑의 경고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은혜의 생명을 잃게 하는 대죄(죽을죄)를 소죄와 구별하고, 잃은 은혜는 회개와 고해성사로 회복된다고 가르칩니다 트리엔트 공의회, 의화에 관한 교령. 정교회는 같은 형식의 구분을 쓰지는 않지만, 사람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하는 무거운 죄와 회개와 고해를 통한 돌아옴을 말합니다.
확신은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전통들은 함께 고백합니다. 우리를 붙드는 근거는 우리의 성적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시고, 경고는 진지하게 들어야 하며, 넘어진 사람에게도 돌아갈 길이 열려 있습니다. 다만 은혜 안에 있음을 얼마나 확실히 알 수 있는지는 다르게 말합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이것을 믿음의 확실성으로 알 수는 없다고 가르치고 트리엔트 공의회, 종교개혁자들은 그리스도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 확신을 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요한은 편지를 쓴 까닭을 이렇게 밝힙니다.
또 그 증언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분의 아들 안에 있다는 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들을 쓴 것은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하고 또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라.
요일 5:11-13
생명이 아들 안에 있으므로, 확신은 오늘 내가 얼마나 거룩하게 살았는지 재어 보는 데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데서 옵니다. 넘어졌을 때에는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라는 약속으로 돌아갑니다 (요일 1:9). 매튜 헨리의 말처럼 은혜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날에야 완성됩니다 매튜 헨리. 그때까지 그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성화란 무엇인가?, 구원은 잃을 수 있는가?, 회개란 무엇인가?도 함께 읽어 보십시오.
연습
- 연습 1 / 8
성경에서 ‘거룩하다’의 기본 뜻은 무엇입니까?
- 연습 2 / 8
고린도전서 6:11과 데살로니가전서 4:3을 함께 읽으면 성화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 연습 3 / 8
빌립보서 2:12-13은 우리의 힘씀과 하나님의 일하심을 어떻게 말합니까?
- 연습 4 / 8
사랑으로 온전해진 마음, 곧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이생에서 구할 은혜로 가르치는 전통은 어디입니까?
- 연습 5 / 8
그리스도인이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이며, 날마다 세례로 돌아가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일어난다고 가르치는 전통은 어디입니까?
- 연습 6 / 8
도르트 신경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7장이 고백하는 ‘성도의 견인’은 무엇입니까?
- 연습 7 / 8
참된 신자도 믿음을 저버리고 떨어져 나갈 수 있으며 회개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가르치는 전통들을 바르게 묶은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8 / 8
요한일서 5:11-13에 따르면 믿는 이가 영생이 있음을 알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출처
- 웨스트민스터 총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646 — 장로교회의 신앙고백. 성경, 하나님과 작정, 언약, 구원, 교회와 성례, 종말을 33장에 걸쳐 고백한다. 읽기
- 마르틴 루터, 갈라디아서 강해 1535 — 율법과 복음,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를 다룬 루터의 대표 저작.
- 마르틴 루터, 소교리문답 1529 — 십계명, 사도신경, 주기도문, 세례와 성찬을 가정에서 가르치도록 쓴 루터교의 요리문답.
- 존 웨슬리, 그리스도인의 완전 1766 — 사랑으로 온전해진 마음(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이생에서 구할 은혜로 가르친다. 죄가 전혀 없는 상태를 말하지는 않는다.
- 도르트 총회, 도르트 신경 1619 — 항론파에 대한 개혁교회의 답. 무조건적 선택, 택자를 위한 속죄, 은혜로 말미암는 거듭남, 성도의 견인을 다섯 교리로 고백한다. 읽기
- 루터교,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1530 — 루터교의 기본 신앙고백.
- 트리엔트 공의회, 의화에 관한 교령 1547 — 칭의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공식 가르침.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공교회의 신경(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칼케돈 신앙정의)을 기준으로 삼았고,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