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사전

중생

Regeneration

중생은 성령께서 죄로 죽은 사람에게 새 생명을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새로 나게 하시는 일입니다. 흔히 거듭남이라고 부르며, 사람이 스스로 이룰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새로 난 사람은 새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삶을 시작합니다.

위로부터 나는 새 생명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의 선생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요 3:3). 그리고 이 출생이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밝히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에서 나고 성령에게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에게서 난 것은 영이니

요 3:5-6

‘중생’(重生)은 ‘다시 남’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의 긍휼에 따라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고" 구원하셨다고 말하는데 (딛 3:5), 여기 쓰인 팔링게네시아(παλιγγενεσία)는 예수께서 세상이 새롭게 될 때를 말씀하실 때에도 쓰신 말입니다 (마 19:28). 한 사람의 거듭남은 하나님이 온 세상을 새롭게 하실 일의 첫 열매입니다. 성경은 이 일을 굳은 마음을 제하고 새 마음을 주시는 일로 (겔 36:26),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살리시는 일로 (엡 2:5),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새로 낳으시는 일로 (벧전 1:23) 그립니다.

중생은 사람의 결심이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입니다. 존 웨슬리는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삶뿐 아니라 마음 전체의 변화가 필요하고, 이 변화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만 사람 안에 이루어질 수 있"다는 가르침을 읽었고 웨슬리, 매튜 헨리는 "은혜와 거룩함의 새로운 원리가 만들어져 그것이 사람을 지배하고 다스리며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합니다"라고 썼습니다 매튜 헨리. 새로 난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양자 됨), 그 안에 성령께서 거하시며(내주), 회개하고 믿는 회심의 삶을 시작합니다.

교회가 말해 온 길

초대 교회는 중생을 세례와 밀접히 이어 말했습니다. 2세기 중엽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믿고 가르침을 받아들인 이들이 물이 있는 곳으로 인도되어, 그리스도인들 자신이 거듭난 것과 같은 방식으로 거듭난다고 기록했습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 제1변증서. 종교개혁 때 장 칼뱅은 중생이라는 말을 넓게 써서,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 안에 회복하는 평생의 회개와 새로워짐 전체를 가리켰습니다 칼뱅, 기독교 강요 3권 3장. 그 뒤 개혁교회의 고백들은 이 말을 주로 새 생명이 시작되는 하나님의 일에 썼습니다. 도르트 신경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크게 칭송되며 새 창조라 불리는 중생이며,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이요 살리심이다. 하나님은 이 일을 우리의 도움 없이 우리 안에서 이루신다.

도르트 신경 셋째·넷째 교리 12조

같은 조항은 이렇게 새롭게 된 의지가 스스로도 움직이게 되므로, 사람 자신이 받은 은혜의 힘으로 믿고 회개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덧붙입니다.

전통들이 다르게 말하는 곳

중생이 성령의 일이라는 데는 모든 교회가 동의합니다. 첫째 차이는 세례와의 관계입니다.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와 루터교는 하나님이 세례를 통하여 새 생명을 주신다고 고백하며,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에서 나고 성령에게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나는 일 (요 3:5)과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의 긍휼에 따라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고"을 (딛 3:5) 세례로 읽습니다. 성공회 안에서는 이를 더 강하게, 또는 더 조심스럽게 읽어 왔습니다. 개혁교회와 장로교회는 세례를 중생의 표와 인으로 보고 그 효력이 세례를 베푸는 순간에 매이지 않는다고 가르치며, 침례교회와 많은 복음주의자들은 중생이 회개하고 믿는 회심과 함께 일어나고 세례는 그 뒤에 따르는 믿음의 고백이라고 봅니다.

둘째 차이는 믿음과의 순서입니다. 개혁교회는 죄로 죽은 사람이 스스로 믿을 수 없으므로 성령께서 먼저 새 생명을 주셔야 믿음이 생긴다고 가르칩니다. 웨슬리·아르미니우스 전통은 선행 은총이 믿음을 가능하게 하며, 하나님은 사람이 믿는 바로 그 순간 그를 의롭다 하시고 거듭나게 하신다고 가르칩니다 웨슬리, 성경적 구원의 길. 두 전통 모두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하나님에게서 태어났으며 낳으신 그분을 사랑하는 자마다 그분에게서 난 자도 사랑하느니라."라는 말씀을 (요일 5:1) 드는데, 개혁교회는 믿음이 거듭남에서 나온다는 뜻으로, 웨슬리 전통은 둘이 함께 일어난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오순절 교회는 거듭날 때 성령께서 신자 안에 거하신다고 고백하면서, 그와 구별되어 대개 그 뒤에 오는, 섬김의 능력을 받는 성령 세례를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성회, 기본 진리 선언. 어느 견해든 거듭남을 사람의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로 고백합니다. 교리 과정의 거듭남과 성령의 내주 과에서 더 다룹니다.

출처

  1. 유스티누스, 제1변증서
  2. 장 칼뱅, 기독교 강요 1559 읽기
  3. 존 웨슬리, 성경적 구원의 길 설교 43 / Sermon 43 (1765) 읽기
  4. 하나님의 성회, 기본 진리 선언 1916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