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 삶의 모든 영역
종교개혁은 수도원과 성직만이 아니라 정직한 모든 일이 하나님이 맡기신 부르심이라는 것을 되찾았습니다. 개혁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삶의 모든 영역의 주이시라고 고백하며, 그리스도인은 가정과 일터와 사회에서 이웃을 섬기고 쉼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평범한 하루 속에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부르심을 되찾다
중세 교회에서 ‘소명’(vocatio)이라는 말은 흔히 수도원이나 성직으로 부르시는 부르심을 가리켰습니다. 일상의 일을 귀히 여긴 수도회와 신학자들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은 기도와 관상의 삶을 더 높은 길로 여겼습니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는 모든 신자가 어떤 처지에 있든 거룩함으로 부름받았다고 가르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 40항.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에서 다른 그림을 보았습니다. 루터는 1520년의 글에서 세례받은 모든 신자가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이며, 구두장이와 대장장이와 농부도 저마다 자기 일과 직분으로 이웃을 섬긴다고 가르쳤습니다 루터, 독일 귀족에게 보내는 글. 칼뱅은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삶의 자리를 정해 주시고 그것을 ‘부르심’이라 부르셨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초소와 같아서 우리가 삶을 함부로 떠돌지 않게 하며,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하는 일이라면 아무리 낮고 천해 보이는 일도 하나님 앞에서 빛나고 귀하다는 것입니다 칼뱅, 기독교 강요 3.10.6.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각 사람은 자기가 부르심을 받을 때 머물던 그 동일한 부르심 안에 머물라."고 썼습니다 (고전 7:20). 여기서 부르심인 는 먼저 하나님이 그리스도께로 부르신 부르심을 가리킨다고 많은 학자는 봅니다. 그러나 그 부르심은 종이든 자유인이든, 결혼했든 아니든 사람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받는 것이고 (고전 7:17-24), 그 자리가 곧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가 됩니다. 바울은 종들에게도 이렇게 말합니다.
또 너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해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너희가 상속 유업의 보상을 주에게서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골 3:23-24
가장 낮은 자리의 수고도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이 됩니다. 바울은 자유를 얻을 수 있거든 얻으라고도 했으니 (고전 7:21), 이것은 불의한 질서를 그대로 두라는 말이 아닙니다. 매튜 헨리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상전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의롭고 충실할 것이니, 자기들이 하나님의 눈 아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동산을 가꾸고 성읍의 평안을 구하라
노동은 타락의 벌이 아니라 처음부터 주신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땅에 충만하고 그것을 다스리라고 복을 주셨고 (창 1:28), 사람을 에덴 동산에 두사 "주 하나님께서 남자를 데려다가 에덴의 동산에 두시고 그것을 가꾸고 지키게 하셨더라."셨습니다 (창 2:15). 개혁교회 전통에서는 이를 흔히 ‘문화 명령’이라고 부릅니다. 다스림은 마음대로 써 버리는 것이 아니라 맡은 것을 가꾸고 지키는 청지기의 일입니다. 매튜 헨리는 동산의 아담을 두고, 하늘의 상속자들도 이 땅에서 할 일이 있으며 "그들이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일을 한다면, 무릎을 꿇고 있을 때와 똑같이 참으로 그분을 섬기는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매튜 헨리.
이 부르심은 교회 담장 안에 머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에 끌려간 백성에게 이방 도시를 미워하지 말고 그 평안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또 내가 너희로 하여금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해서 거하게 한 그 도시의 평안을 구하고 그것을 위하여 주에게 기도하라. 그 도시가 평안하여야 너희도 평안하리라.
렘 29:7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 부르시고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선한 행위를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마 5:16).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말씀이 우리가 "선한 행위로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구해서는 안 되며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에 돌려야" 함을 가르친다고 풉니다 아우구스티누스.
한 치도 빠짐없이
네덜란드의 목사이자 언론인이며 뒤에 총리를 지낸 아브라함 카이퍼(1837–1920)는 1880년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를 세우며 ‘영역 주권’이라는 연설을 했습니다 아브라함 카이퍼, 영역 주권. 지금도 자주 인용되는 그 연설의 한 대목은, 우리 삶의 온 영역 가운데 만유의 주권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내 것이라고 외치지 않으시는 곳은 한 치도 없다는 뜻입니다. 가정과 교회와 국가, 학문과 예술과 경제는 저마다 하나님께 받은 자기 질서와 권위를 가지며, 국가든 교회든 어느 한 영역이 다른 영역을 삼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가 말한 영역 주권입니다.
카이퍼와 헤르만 바빙크는 ‘일반 은총’도 가르쳤습니다 아브라함 카이퍼, 일반 은총. 하나님은 "그리하면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이들이 되리니 그분께서는 자신의 해를 악한 자와 선한 자 위에 떠오르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 위에 내려 주시느니라." 비를 모든 사람에게 내리십니다 (마 5:45). 하나님은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죄를 억제하시고 학문과 기술과 예술의 재능을 주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믿지 않는 의사의 솜씨나 시인의 아름다운 글에서도 하나님의 선물을 알아보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바빙크는 은혜가 자연을 없애지 않고 회복하고 새롭게 한다는 것을 그의 교의학 전체에서 강조했습니다 헤르만 바빙크, 개혁 교의학.
그러나 이 큰 비전에는 위험도 따릅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영역의 주이시라는 고백이 그리스도인이 모든 영역을 차지해야 한다는 뜻으로 바뀌면 승리주의가 됩니다. 어떤 문화나 민족이나 정당도 하나님 나라와 같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내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니라. 만일 내 왕국이 이 세상에 속하였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서 나를 유대인들에게 넘겨주지 아니하였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내 왕국이 여기에서 나지 아니하느니라, 하시니라."고 하셨고 (요 18:36),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마 20:26-28). 개혁교회의 역사에도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20세기 남아프리카에서 일부 개혁교회는 인종 분리 정책을 신학으로 뒷받침했고, 세계개혁교회연맹은 1982년 그 정책을 죄로, 그것을 정당화하는 신학을 이단으로 선언했습니다. 우리도 같은 유혹 앞에 서 있음을 겸손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부르심은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것입니다.
다른 전통도 이 물음을 깊이 다룹니다. 가톨릭 교회의 사회 교리는 인간의 존엄과 공동선, 작은 공동체가 할 수 있는 일을 큰 기관이 빼앗지 말라는 보조성의 원리를 말하며, 노동을 사람이 창조의 일을 이어 가는 것으로 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루터교는 하나님이 교회에서는 복음으로, 세상에서는 법과 정부로 다스리신다는 두 왕국론을 말하며, 그리스도인이 공직과 시민의 의무를 맡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16조. 재세례파 전통은 칼, 곧 강제력의 사용을 그리스도의 온전함 밖의 일로 보았고 슐라이트하임 신앙고백 6조, 오늘날에도 교회가 세상의 권력을 쥐기보다 평화와 제자도의 공동체로서 세상 앞에 증언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쉼,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
일은 우리의 주인이 아닙니다. 넷째 계명은 "엿새 동안은 네가 수고하고 네 모든 일을 할 것이나" 일곱째 날에는 쉬라고 명합니다 (출 20:9-10).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이 계명을 풀며, 주의 날에 부지런히 모여 말씀을 배우고 성례에 참여하며 기도하고 가난한 이를 돕는 것, 그리고 평생 나의 악한 일을 쉬고 주께서 성령으로 내 안에 일하시게 하여 이 땅에서부터 영원한 안식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03문. 시편 기자는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는 수고가 헛되다며 "너희가 일찍 일어나고 늦도록 앉아 있으며 고통의 빵을 먹음이 헛되도다. 이처럼 그분께서 자신이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라고 노래합니다 (시 127:2). 주일의 예배는 말씀 중심의 예배 과에서, 쉼의 의미는 왜 쉬어야 하는가?에서 더 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은 종교개혁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되찾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은 대성당이나 큰 무대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아이를 씻기는 부엌, 시험지를 채점하는 교실, 밤을 새우는 병원과 공장, 조용히 정직하게 장부를 맞추는 사무실에서 이루어집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이웃을 섬기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지친 몸으로 주의 날에 모여 다시 그분을 즐거워하며,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할 날을 바라봅니다. 일의 의미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서 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으로 이 과정을 마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연습
- 연습 1 / 8
종교개혁자들이 되찾은 소명에 대한 이해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2 / 8
칼뱅은 『기독교 강요』 3.10.6에서 각 사람의 부르심을 무엇에 비유합니까?
- 연습 3 / 8
창세기 2:15에 따르면 하나님은 무엇을 위하여 사람을 에덴 동산에 두셨습니까?
- 연습 4 / 8
예레미야 29:7에서 하나님은 바벨론에 사로잡혀 간 백성에게 무엇을 명하셨습니까?
- 연습 5 / 8
아브라함 카이퍼가 말한 ‘영역 주권’의 뜻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6 / 8
카이퍼와 바빙크가 가르친 ‘일반 은총’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 연습 7 / 8
다른 전통과 그 강조점의 연결이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8 / 8
고린도전서 10:31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할 일의 범위를 어떻게 말합니까?
출처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인류의 빛) 40 (1964) — 모든 신자가 어떤 처지에 있든 거룩함으로 부름받았다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 마르틴 루터, 독일 귀족에게 보내는 글 1520 — 세례받은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며, 저마다 자기 일과 직분으로 이웃을 섬긴다고 가르친다.
- 장 칼뱅, 기독교 강요 1559 — 개혁파 신학의 대표 저작. 읽기
- 아브라함 카이퍼, 영역 주권 1880 —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 개교 연설.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삶 모든 영역의 주권자이시라고 말한다.
- 아브라함 카이퍼, 일반 은총 1902–1904 — 하나님이 죄를 억제하시고 모든 사람에게 선한 선물을 베푸시어 문화와 학문이 자라게 하신다는 가르침.
- 헤르만 바빙크, 개혁 교의학 1895–1901 — 개혁파 신학을 집대성한 교의학. 일반 은총과 창조의 회복을 강조한다.
- 가톨릭교회, 가톨릭 교회 교리서 1992 —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전체를 정리한 교리서.
- 루터교,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1530 — 루터교의 기본 신앙고백.
- 스위스 형제단, 슐라이트하임 신앙고백 1527 — 재세례파의 첫 신앙고백. 회개하고 믿는 이에게 주는 세례(1조), 세상과의 구별, 칼을 쓰지 않음(6조), 맹세하지 않음(7조) 등 일곱 조항.
-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563 — 독일 개혁교회의 요리문답(129문). 제1문: 살아서나 죽어서나 유일한 위로는 무엇인가. 죄와 구원과 감사의 세 부분으로 신경, 성례, 십계명, 주기도문을 가르친다. 읽기
성경과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벨직 신앙고백, 도르트 신경)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개혁주의 신앙을 가르치되, 다른 전통의 견해도 공정하게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