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임재
Spiritual presence
영적 임재는 성찬에서 그리스도의 몸은 하늘에 계시지만 성령께서 믿음으로 받는 이를 그분과 연합시키셔서, 떡과 잔을 받을 때 그리스도와 그 죽으심의 모든 은덕을 참으로 받아 먹게 하신다는 개혁교회의 이해입니다. 여기서 영적이라는 말은 덜 실제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는다는 뜻입니다.
성령으로 참여함
바울은 성찬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아니냐?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아니냐?
고전 10:16
‘참예함’, 곧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는 함께 나누어 가짐입니다. 개혁교회는 이 말씀에서 성찬이 그리스도를 떠올리는 일에 그치지 않고 그분께 참으로 참여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몸으로 하늘에 오르셨고, "하나님께서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자신의 모든 거룩한 대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때 곧 모든 것을 회복하시는 때까지는 하늘이 반드시 그분을 받아들여야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행 3:21). 땅에 있는 우리가 하늘에 계신 그분의 몸에 어떻게 참여할까요? 개혁교회는 그 열쇠를 성령에게서 찾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도 우리 안에도 계시는 성령께서 공간으로 떨어진 것을 참으로 하나로 묶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칼뱅은 그리스도를 떡 속으로 끌어내리려 하지 말고 마음을 들어 올려 하늘에 계신 그분께 나아가라고 권했습니다 칼뱅, 기독교 강요 4.17. 바울도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켜졌거든 위에 있는 그것들을 추구하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고 말합니다 (골 3:1).
요한복음 6장에서 무리가 주님의 살을 먹는다는 말씀에 걸려 넘어졌을 때, 주님은 "살리는 것은 영이며 육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들은 곧 영이요 생명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요 6:63). 아우구스티누스는 주님이 "이제 자기가 온전하고 완전한 채로 하늘에 올라가실 것을 말씀하십니다"라고 풀었고 아우구스티누스, 다른 곳에서는 "그리스도의 살을 성례 안에서만 먹지 말고, 우리가 주의 몸의 지체로 머물고 그분의 영으로 살리심을 받도록 영적 참여에 이르기까지 먹읍시다"라고 권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교회가 고백해 온 말
칼뱅은 『성찬에 관한 짧은 논고』(1541)에서 신자가 성찬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으로 참여한다고 가르쳤고 칼뱅, 성찬에 관한 짧은 논고, 1549년에는 취리히의 불링거와 함께 성례에 관한 합의를 냈습니다 취리히 일치 신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76문은 그리스도의 몸을 먹는다는 것이 그분의 고난을 믿어 죄 사함을 얻는 것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도 우리 안에도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몸과 점점 더 연합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76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그때 떡과 포도주 안에나 함께나 아래에 신체적이거나 육적으로 있지 않으나, 이 규례에서 신자들의 믿음에게는 요소들 자체가 그들의 외적 감각에 있는 것만큼 실제로, 그러나 영적으로 임재하신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9.7
성공회의 39개 신조도 그리스도의 몸은 성찬에서 하늘의 영적인 방식으로만 주어지고 받아지고 먹어지며, 그 몸을 받아 먹는 수단은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39개 신조 28조. 제2차 런던 신앙고백을 따르는 개혁파 침례교회도 이 영적 먹음을 고백합니다 제2차 런던 침례교 신앙고백 30장.
전통마다 다른 이해
영적 임재는 다른 이해들 사이에 서 있습니다. 개혁교회는 떡이 몸으로 변한다는 화체설도, 그리스도의 몸이 떡 안에, 함께, 아래에 계신다는 루터교회의 이해(공재설)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표는 표로 남아야 그것이 가리키는 실체를 증언할 수 있고, 그리스도의 몸은 참된 사람의 몸으로서 하늘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루터교회는 이 이해가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집으사 축복하시고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는 말씀을 (마 26:26) 온전히 받지 못하며, 합당치 않게 먹는 이도 그리스도의 몸을 받는다고 답합니다.
다른 한편 개혁교회는 성찬을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억하는 일로만 보는 기념설보다 더 많이 고백합니다. 성찬은 멀리 계신 그리스도를 떠올리는 자리일 뿐 아니라, 성령으로 지금 우리를 먹이시는 그리스도께 참여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기념설을 따르는 이들은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성찬에만 매이지 않고 언제나 믿음으로 누리는 것이라고 답합니다. 이 차이들은 복음주의 안에서도 오래 이어져 왔습니다. 개혁교회의 성찬 이해는 성찬: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 과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출처
- 장 칼뱅, 기독교 강요 1559 읽기
- 장 칼뱅, 성찬에 관한 짧은 논고 1541
- 칼뱅과 불링거, 취리히 일치 신조 1549
- 잉글랜드 교회, 39개 신조 1571
- 잉글랜드 특수침례교회, 제2차 런던 침례교 신앙고백 1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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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