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사전

공재설

Consubstantiation

공재설은 성찬의 떡과 포도주가 그대로 있으면서 그 안에, 그와 함께, 그 아래에 그리스도의 참 몸과 피가 함께 계신다는 이해를 부르는 이름입니다. 흔히 루터교회의 성찬 이해를 가리키지만, 루터교회는 이 말을 쓰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과 떡 사이의 성례전적 연합을 말합니다.

이름과 뜻

‘공재’(共在)는 함께 있다는 뜻으로, 라틴어 consubstantiatio를 옮긴 말입니다. 떡과 포도주의 실체가 바뀐다는 화체설과 달리, 떡과 포도주는 그대로 남고 거기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참으로 함께 계신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이 이름은 주로 루터교회 밖에서, 루터교의 성찬 이해를 설명하거나 비판하는 이들이 붙인 것입니다.

루터교회는 대체로 이 이름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두 실체가 섞여 제3의 무엇이 된다거나, 그리스도의 몸이 떡 속에 물건처럼 갇힌다는 뜻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루터교회는 그 대신 떡과 그리스도의 몸 사이에 ‘성례전적 연합’이 있다고 말하고,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떡과 포도주 안에, 함께, 아래에 참으로 계신다고 고백합니다. 이 항목의 이름은 바깥에서 붙인 이름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읽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 그대로

루터교회의 고백은 주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는 데서 나옵니다.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집으사 축복하시고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마 26:26

바울은 "우리가 축복하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아니냐?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고 (고전 10:16), 합당치 않게 먹는 자는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이 빵과 이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가 있으리로다."고 경고합니다 (고전 11:27). 루터교회는 여기서 그리스도의 몸이 먹는 모든 이에게 참으로 주어지며, 믿는 이에게는 생명이 되고 믿지 않는 이에게는 심판이 된다고 읽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베드로와 유다가 같은 떡을 받았으나 베드로는 생명으로, 유다는 죽음으로 받았습니다"라고 말했는데 아우구스티누스, 루터교회는 이를 두 사람 모두 그리스도의 몸을 받았다는 뜻으로, 개혁교회는 같은 표를 받았으나 그 표가 가리키는 실체는 믿음으로만 받는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루터의 소교리문답은 성찬이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으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먹고 마시도록 떡과 포도주 아래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참 몸과 피라고 가르칩니다 루터, 소교리문답.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10조도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성찬에 참으로 임재하여 먹는 이들에게 나누어진다고 고백합니다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10조.

루터와 츠빙글리, 그리고 그 뒤

1529년 마르부르크에서 루터는 츠빙글리와 만났습니다. 전해지기로 루터는 탁자 위에 라틴어로 ‘이것이 내 몸이다’(Hoc est corpus meum)라고 분필로 쓰고 그 말씀에서 물러서지 않았다고 합니다. 두 편은 열네 조항과 열다섯째 조항의 대부분에 합의했지만 그리스도의 몸이 떡과 포도주 안에 몸으로 계시는가에서는 갈라섰습니다 마르부르크 조항.

이 차이는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인성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와 이어집니다. 루터교회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한 인격 안에 나뉠 수 없이 결합되어 있으므로 높아지신 그분의 인성도 신성의 위엄에 참여하며, 하나님의 우편은 한정된 장소가 아니라 어디서나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가르칩니다 일치신조 8조.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약속하신 곳, 곧 성찬에 몸으로도 계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승천과 다스리심 과).

전통마다 다른 이해

가톨릭 교회는 떡과 포도주의 실체가 남는다는 이해를 받아들이지 않고 화체를 가르칩니다. 개혁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 하늘에 계신다고 보아 영적 임재를 고백하며, 몸이 여러 곳에 함께 계신다는 설명이 그리스도의 몸을 참된 사람의 몸이 아니게 할까 염려합니다. 루터교회는 개혁교회의 설명이 주님의 분명한 말씀을 약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두 본성을 떼어 놓을까 염려합니다. 기념설을 따르는 교회들은 성찬을 무엇보다 기억과 고백의 식탁으로 봅니다. 이 차이는 깊지만, 모든 전통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에게 자신을 주시는 이 식탁을 귀히 여깁니다. 여러 이해는 성찬 항목과 세례와 성찬은 무엇인가?에서 나란히 볼 수 있습니다.

출처

  1. 마르틴 루터, 소교리문답 1529
  2. 루터교,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1530
  3. 루터와 츠빙글리, 마르부르크 조항 1529
  4. 루터교, 일치신조 8 (1577)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