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
Good works
선행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명하신 일을 참된 믿음에서 우러나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행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선행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받았다고 말하며, 선행은 구원받은 이가 감사와 사랑으로 맺는 믿음의 열매입니다.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
선행(善行)은 ‘착한 행실’이라는 뜻으로, 먼저 오는 은혜를 가리키는 ‘선행 은총’의 선행(先行)과는 다른 말입니다. 바울은 구원과 선행의 관계를 한 문장에 담습니다.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2:8-10
구원은 행위에서 나지 않지만 선한 일을 향합니다. 여기 ‘일’은 에르곤(ἔργον)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주신 것도 우리를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으로부터 친히 우리를 구속하시고 정결하게 하사 선한 행위에 열심을 내는 백성 곧 자신을 위한 특별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심이고 (딛 2:14),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선한 행위를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마 5:16). 바울이 말하는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아무 효력이 없으되 오직 사랑으로 일하는 믿음뿐이니라."입니다 (갈 5:6).
야고보는 "이와 같이 믿음도 행위가 없으면 그것만으로는 죽은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약 2:17). 바울과 야고보는 다투지 않습니다. 바울은 행위로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려는 생각을, 야고보는 열매 없는 믿음을 경계합니다. 웨슬리는 야고보서를 풀며 "행함이 믿음에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행함을 낳고 그다음 행함으로 온전케 됩니다"라고 썼습니다 웨슬리.
교회의 고백
종교개혁 교회들은 무엇이 선행인지도 물었습니다. 사람이 좋다고 여겨 지어낸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명하신 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이렇게 답합니다.
오직 참된 믿음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행한 일들뿐입니다. 우리 자신의 생각이나 사람의 계명에 근거한 일들은 선행이 아닙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91문
같은 요리문답은 구원받은 이가 선을 행하는 까닭을 감사에서 찾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셔서 온 삶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시고, 열매로 믿음을 확신하게 하시며, 이웃을 그리스도께 얻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도 선행을 ‘참되고 살아 있는 믿음의 열매요 증거’라고 부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6.2.
전통들이 다르게 말하는 곳
모든 전통이 선행은 반드시 있어야 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하다고 가르칩니다. 차이는 선행이 구원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의롭게 된 이가 은혜와 협력하여 행한 선행이 의 안에서 자라게 하고 영생의 공로가 된다고 가르칩니다 트리엔트 공의회, 의화에 관한 교령. 정교회는 선행을 하나님과 협력하며 그분을 닮아 가는 삶의 한 부분으로 봅니다.
루터교와 개혁교회, 성공회는 선행이 칭의의 근거가 아니라 의롭다 하심을 받은 이의 열매이며, 그 열매로 믿음이 참됨이 드러난다고 고백합니다. 웨슬리 전통은 기도와 말씀과 성찬 같은 경건의 일과 굶주린 이를 먹이고 병든 이를 찾는 자비의 일을 성화에 이르는 은혜의 방편으로 힘주어 가르칩니다 웨슬리, 성경적 구원의 길. 재세례파와 메노나이트 전통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삶을 신앙의 핵심으로 강조해 왔습니다. 개혁주의 신앙 과정의 죄, 은혜, 감사 과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도 읽어 보십시오.
출처
- 트리엔트 공의회, 의화에 관한 교령 1547
- 존 웨슬리, 성경적 구원의 길 설교 43 / Sermon 43 (1765)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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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