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신학
Biblical theology
성경신학은 하나님의 계시가 성경의 역사와 언약을 따라 차츰 펼쳐져 그리스도께 이르는 흐름을 따라가는 신학의 갈래입니다. 각 책과 각 시대가 제자리에서 무엇을 말하는지 듣고, 그것이 성경 전체의 이야기 속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핍니다.
이야기를 따라 읽는 신학
‘성경신학’이라는 말은 넓게는 성경에 충실한 신학을 뜻하지만, 신학의 한 갈래로서는 성경을 그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읽는 일을 가리킵니다. 성경은 주제별 사전이 아니라 창조와 타락, 아브라함과 출애굽, 다윗과 포로, 그리스도와 교회,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이며, 하나님은 그 속에서 자신을 점점 더 밝히 알리셨습니다. 히브리서는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시다가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며 그분을 모든 것의 상속자로 정하시고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들을 만드셨느니라."라고 말합니다 (히 1:2).
예수께서도 성경을 이렇게 읽게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날,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와 함께 걸으시며 그분은 이렇게 하셨습니다.
모세와 모든 대언자들의 글에서 시작하여 모든 성경 기록들에서 자기에 관한 것들을 그들에게 풀어 설명해 주시니라.
눅 24:27
성경신학은 먼저 한 본문이 제 시대와 자리에서 무엇을 말했는지 듣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언약들을 따라 어떻게 자라 그리스도께 이르는지 살핍니다. 이를테면 하나님이 백성 가운데 거하시는 일은 성막과 성전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는 데서 (요 1:14), 성령이 거하시는 교회에서,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의 줄기로 이어집니다. 앞의 인물과 사건이 뒤의 성취를 미리 보여 주는 관계는 예표라 부르고, 성경을 바르게 읽는 원리는 해석학이 다룹니다.
한 분과가 되기까지
교회는 처음부터 성경을 하나의 이야기로 읽었습니다. 2세기 말 이레나이우스는 하나님이 인류를 단계마다 이끄시며, 아담에게서 시작된 인류의 역사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모으신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레나이우스, 이단 반박. 그러나 ‘성경신학’이 신학의 한 분과로 분명히 내세워진 것은 근대의 일입니다. 1787년 요한 필리프 가블러는 알트도르프 대학 취임 강연에서, 성경 저자들이 각자의 시대에 무엇을 가르쳤는지 역사적으로 밝히는 성경신학과, 그것을 바탕으로 자기 시대를 위해 가르침을 정리하는 교의신학을 구별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가블러, 성경신학과 교의신학의 올바른 구분에 관하여.
그 뒤 많은 학자는 성경신학을 신앙과 떼어 낸 역사 연구로 다루었고, 성경을 서로 맞지 않는 여러 목소리로 읽기도 했습니다. 1894년 프린스턴 신학교의 게르할더스 보스는 성경신학을, 하나님의 특별 계시가 구속의 역사와 함께 단계마다 더 밝히 펼쳐진 과정을 따라가는 학문으로 정의했습니다 보스, 학문이자 신학 분과로서의 성경신학. 그는 이 자라남을 씨앗이 자라 나무가 되는 유기적 성장에 견주곤 했습니다.
큰 줄기를 그리는 여러 방식
성경의 큰 줄기를 어떻게 그리는지는 복음주의 안에서도 다릅니다. 언약신학은 구약과 신약을 한 은혜 언약이 여러 시대에 걸쳐 펼쳐진 것으로 읽고, 교회를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을 이어받는 하나님의 한 백성으로 봅니다. 세대주의는 하나님이 역사의 여러 경륜을 따라 자신을 계시하고 다스리신다고 보며,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과 교회를 구별하여 읽습니다. 새 언약 신학은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를 더 힘주어 말합니다. 모두 성경 전체가 하나이며 그리스도께 이른다는 데 서 있고, 이스라엘과 교회,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다르게 설명합니다.
성경신학은 주제별로 모으는 조직신학과 서로를 붙들어 줍니다. 신학 과정의 성경신학과 조직신학 과와 교리 과정의 율법과 언약 과도 읽어 보십시오.
출처
- 이레나이우스, 이단 반박 읽기
- 요한 필리프 가블러, 성경신학과 교의신학의 올바른 구분에 관하여 1787
- 게르할더스 보스, 학문이자 신학 분과로서의 성경신학 1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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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