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사전

만족설

The satisfaction theory

만족설은 11세기 캔터베리의 안셀무스가 체계화한 속죄 이해로, 죄는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영예를 드리지 않은 빚이며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그리스도께서 자기 생명을 드려 그 빚을 넘치게 갚으셨다는 설명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다는 생각은 이후 서방 교회의 속죄론에 깊이 자리 잡았습니다.

안셀무스의 물음

캔터베리의 대주교 안셀무스는 1098년 무렵 『하나님은 왜 인간이 되셨는가』를 마치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사람이 되셔서 죽으셔야 했을까? 그의 답은 이렇습니다. 이성을 가진 피조물은 자기 뜻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야 하고, 그것이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예입니다. 죄는 그 영예를 드리지 않은 것, 곧 갚아야 할 빚입니다. 하나님은 창조 세계의 바른 질서를 무너뜨린 이 일을 그냥 넘기실 수 없으므로, 빼앗은 것보다 더한 것을 갚는 ‘만족’이 있거나 형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갚아야 할 이는 사람이지만 그 빚은 온 세상보다 커서 하나님만 갚으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분이 오셔야 했고, 죽을 빚이 없는 죄 없는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생명을 드려 그 빚을 넘치게 갚으셨다는 것입니다 안셀무스, 하나님은 왜 인간이 되셨는가.

안셀무스는 마귀가 사람에 대한 권리를 가졌기에 몸값을 치렀다는 옛 설명(속량 참고)을 물리치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하나님께 드린 선물로 보았습니다. 바울도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해 자신을 향기로운 냄새의 헌물과 희생물로 하나님께 드리신 것 같이 사랑 안에서 걸으라."고 말하고 (엡 5:2), 그분의 순종이 아담의 불순종을 뒤집었다고 말합니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로운 자가 되리라.

롬 5:19

서방 교회에 남긴 것

토마스 아퀴나스는 안셀무스를 따르면서도 다듬었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길로도 용서하실 수 있었으나 그리스도의 수난이 가장 알맞은 길이었고, 그 수난은 온 인류의 죄를 갚고도 남는 넘치는 만족이었다는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트리엔트 공의회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수난으로 우리를 위해 의화를 얻으시고 아버지께 만족을 드리셨다고 가르쳤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 의화에 관한 교령.

종교개혁자들은 만족이라는 말을 이어받되, 안셀무스가 ‘만족이 아니면 형벌’이라고 나눈 둘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형벌을 받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다는 것입니다(형벌 대속 참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안셀무스의 물음을 따라가듯 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공의가 만족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든지 다른 이를 통해서든지 그 공의에 완전한 만족을 드려야 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2문

매튜 헨리도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고서는 죄에 대한 만족이 될 수 없었으니 그분이 죄를 미워하심이 분명합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비판과 변호

정교회는 안셀무스의 틀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죽음을 이기시고 사람을 고치시는 그리스도의 승리로 속죄를 설명해 왔습니다. 서방에서도 비판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설명이 주군의 체면을 중시하던 중세 사회를 닮았고, 하나님의 사랑보다 영예를 앞세우며, 그리스도의 삶과 부활을 작게 다룬다고 봅니다. 안셀무스를 변호하는 이들은 그가 말한 영예가 하나님의 허영이 아니라 창조 세계의 바른 질서이며, 그가 책 끝에서 이보다 더 크고 의로운 자비는 생각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는 점을 듭니다.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회는 신자의 ‘보속’에서도 다릅니다. 가톨릭 교회는 그리스도의 만족에 힘입어 고해한 신자가 기도와 선행으로 죄의 잠벌을 보속한다고 가르치고, 종교개혁 교회들은 죄에 대한 만족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이루셨다고 고백합니다. 이 이야기는 안셀무스와 스콜라 신학의 시작 과와 교리 과정의 십자가와 속죄 과에서 더 읽을 수 있습니다.

출처

  1. 안셀무스, 하나님은 왜 인간이 되셨는가 1098 읽기
  2.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읽기
  3. 트리엔트 공의회, 의화에 관한 교령 1547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