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사전

비하와 승귀

Humiliation and exaltation

비하와 승귀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구원을 위해 지나신 두 상태, 곧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을 말합니다. 그분은 사람으로 나셔서 율법 아래 사시고 고난받아 죽고 장사되기까지 낮아지셨으며,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고 다시 오심으로 높아지십니다.

낮아지심에서 높아지심으로

‘비하’(卑下)는 낮아지심, ‘승귀’(昇貴)는 높아지심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길 전체를 한 노래로 그리는데, 그 한가운데에 ‘이러므로’라는 전환이 있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을 그분에게 주사

빌 2:8-9

부활하신 예수께서도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그리스도가 이런 일들로 고난을 당하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함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시고"고 하셨습니다 (눅 24:26). 매튜 헨리는 빌립보서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두 상태, 곧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이 언급됩니다"라고 말합니다 매튜 헨리. 웨슬리는 ‘자기를 비어’를 풀며, 그리스도께서 충만하신 채로 계셨으나 "마치 비어 계신 것처럼 보이셨습니다. 사람들과 천사들의 눈에서 자신의 충만함을 가리셨기 때문입니다"라고 씁니다 웨슬리. 종교개혁 이후 루터교와 개혁교회의 신학자들은 이것을 그리스도의 ‘두 상태’로 정리했고,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낮아지심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낮은 처지에서 나셨고, 율법 아래 나셨으며, 이생의 비참과 하나님의 진노와 십자가의 저주받은 죽음을 당하셨고, 장사되셔서 얼마 동안 죽음의 권세 아래 계신 데 있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27문

높아지심은 사흘째 날의 부활, 하늘로 오르신 승천,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으심, 마지막 날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는 재림으로 이루어진다고 같은 문답은 고백합니다 28문. 하나님이신 아들은 그 자체로 더 높아지실 수 없습니다. 높아지신 것은 우리를 위해 사람이 되신 그분, 곧 중보자이십니다. 매튜 헨리의 말대로 "높아지심은 신성과 연합한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매튜 헨리.

전통들이 다르게 말하는 곳

첫째, 성육신 자체가 낮아지심이냐는 물음입니다. 개혁교회는 소요리문답처럼 아들이 사람으로 나신 일부터 낮아지심에 넣습니다. 영원하신 아들이 종의 형체를 취하신 것이 이미 낮아지심이라는 것입니다. 루터교는 하나님이신 말씀은 변하지 않으시므로 성육신 자체는 낮아지심이 아니라고 봅니다. 연합으로 인성이 처음부터 신적 위엄을 받았으나 땅에 계시는 동안 그것을 늘 온전히 쓰지 않으신 것이 낮아지심이고, 그것을 온전히 쓰시는 것이 높아지심이라는 것입니다 일치신조 8조.

둘째, 그리스도께서 음부에 내려가셨다는 고백의 자리입니다. 개혁교회는 이를 낮아지심의 끝으로 봅니다. 소요리문답은 얼마 동안 죽음의 권세 아래 계셨다고 하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이를 십자가에서 영혼으로 겪으신 지옥 같은 고뇌로 풉니다 44문. 루터교는 이를 높아지심의 첫걸음, 곧 지옥의 권세를 이기신 승리의 선포로 보며 (벧전 3:19, 골 2:15),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의 거처에 내려가 앞서 죽은 의인들을 풀어 주셨다고 가르칩니다. 이 물음은 예수는 죽으신 뒤 사흘 동안 어디 계셨는가?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어느 설명을 따르든 그리스도의 길은 낮아지심을 지나 높아지심에 이르고, 그분께 속한 이들의 길도 그렇습니다. 바울은 "너희 안에 이 생각을 품을지니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도 있던 생각이라."라고 하고 (빌 2:5), 베드로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강한 손 밑에서 스스로 겸손하라. 그리하면 정하신 때에 그분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약속합니다 (벧전 5:6). 낮아지심의 처음은 성육신이며, 교리 과정의 성육신 과도 함께 읽어 보십시오.

출처

  1. 루터교, 일치신조 8 (1577)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