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 정치
개혁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이시며, 그분이 교회에 목사와 장로와 집사를 주시고 장로들이 함께 모여 교회를 다스리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당회와 노회와 총회로 이어지는 장로 정치는 직분자의 권세가 아니라 말씀과 양 무리를 섬기기 위한 질서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
장로교회라는 이름은 교회를 다스리는 방식에서 왔습니다. 신약에서 장로로 옮긴 가 ‘장로교’(Presbyterian)라는 말의 뿌리입니다. 그러나 개혁교회가 장로를 말하기 전에 먼저 고백하는 것은 교회의 주인이 누구신가 하는 것입니다.
또 모든 것을 그분의 발아래 두셨으며 그분을 모든 것 위에 머리가 되게 하사 교회를 위해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분의 몸이니 곧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의 충만이니라.
엡 1:22-23
바울은 그리스도를 "그분께서는 몸 곧 교회의 머리시니라. 그분께서 시작이시요 죽은 자들로부터 처음 난 자이시니 이것은 그분께서 모든 것에서 으뜸이 되려 하심이라."라고도 부릅니다 (골 1:18).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교회의 다른 머리가 없다고 고백하고, 교회의 왕이요 머리이신 주님께서 국가 위정자와 구별되는 교회 직분자들의 손에 치리를 맡기셨다고 가르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5장 6절, 30장 1절. 그러므로 직분자의 권세는 자기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맡아 섬기는 권세이며, 말씀이 명하지 않은 것으로 교인의 양심을 묶을 수 없습니다.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맡긴 교회도 하나님이 "그러므로 너희 자신과 온 양 떼에게 주의를 기울이라. 성령님께서 너희를 그들의 감독자로 삼으사 하나님의 교회 곧 그분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먹이게 하셨느니라."였습니다 (행 20:28).
장로와 감독, 그리고 집사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그가 밀레도에서 에베소로 사람을 보내어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니" 불렀는데 (행 20:17), 같은 사람들에게 성령이 "그러므로 너희 자신과 온 양 떼에게 주의를 기울이라. 성령님께서 너희를 그들의 감독자로 삼으사 하나님의 교회 곧 그분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먹이게 하셨느니라." 교회를 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행 20:28). 디도서도 각 성에 장로를 세우라고 한 뒤 곧바로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고 이어 갑니다 (딛 1:5-7). 매튜 헨리도 이 대목을 "여기서 장로와 감독이라 부르는 목회자"의 자격으로 읽습니다 매튜 헨리. 개혁교회는 이런 본문에서 장로와 감독, 곧 가 한 직분의 두 이름이라고 봅니다. 베드로도 자신을 "너희 가운데 있는 장로들에게 권면하노니 나 역시 장로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또한 앞으로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라고 불렀습니다 (벧전 5:1).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두 배나 존경할 자로 여기되 특별히 말씀과 교리로 수고하는 자들에게 그리할지니라.
딤전 5:17
장로교회는 이 구절에서 다스리는 장로와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장로를 구별해 읽고, 여기서 장로(치리 장로)와 목사의 구별을 봅니다. 다른 이들은 모든 장로가 다스리되 그 가운데 몇이 가르침에 더 힘쓴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집사는 구제와 자비의 직분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서 빠지자, 사도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게 하고 자신들은 "오직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하리라, 하니라." 전무했습니다 (행 6:3-4). 디모데전서 3장은 이 섬김에 맞는 사람의 됨됨이를 말합니다 (딤전 3:8-13).
칼뱅은 1541년 제네바 교회 법규에서 교회의 직분을 목사, 교사, 장로, 집사의 넷으로 정리하고, 목사와 장로가 함께 모이는 치리회를 두었습니다 칼뱅, 제네바 교회 법규.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장로교회 정치 형태(1645)도 목사와 장로와 집사의 직분을 말합니다 장로교회 정치 형태. 목사를 ‘가르치는 장로’로 볼지, 장로와 구별되는 직분으로 볼지는 장로교회 안에서도 설명이 조금씩 다릅니다.
함께 모여 다스리는 교회
장로 정치에서는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다스립니다. 안디옥 교회에 할례 문제로 다툼이 일어나자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그러므로 바울과 바나바와 그 사람들 사이에 작지 않은 분쟁과 논쟁이 일어나니라. 그들이 이 문제로 인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자기들 중의 다른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올려 보내기로 결정하니라." 보냈고 (행 15:2),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 일을 깊이 생각해 보려고 함께 오니라." 결정했습니다 (행 15:6). 그 편지는 "성령님과 우리는 이 필요한 것들 외에 다른 큰 짐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을 좋게 여겼나니"이라는 말로 결정을 알렸고 (행 15:28), 바울 일행은 그 규례를 여러 성의 교회에 전했습니다 (행 16:4). 장로교회는 여기서 여러 교회의 대표가 말씀 앞에 함께 모여 결정하고 그 결정을 함께 지키는 본을 봅니다.
그래서 장로교회는 치리회를 여러 층으로 둡니다. 한 교회의 목사와 장로들이 모인 당회, 한 지역 교회들의 목사와 장로들이 모인 노회, 교단 전체의 대표가 모인 총회입니다. 노회와 총회 사이에 대회를 두는 장로교회도 있고, 대륙의 개혁교회는 이에 해당하는 회의를 컨시스토리(consistory), 클라시스(classis), 시노드(synod)라고 부릅니다 도르트 교회 법규. 장로는 교인들이 뽑고, 노회와 총회에서는 목사와 장로가 함께 앉아 결정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교회를 더 잘 다스리고 세우기 위해 대회나 공의회 같은 회의가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그런 회의도 잘못할 수 있으니 믿음과 생활의 규칙이 아니라 그 도움으로 삼으라고 고백합니다(31장). 한국 장로교회도 노회를 먼저 조직하고 뒤에 총회를 이루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한국의 장로교회 과에서 다룹니다.
같은 본문을 다른 전통은 달리 읽습니다. 감독제를 따르는 교회들은 사도들에게서 이어져 온 감독이 교회의 하나 됨과 연속성을 지킨다고 보고, 회중제를 따르는 교회들은 각 지역 교회가 그리스도 아래에서 교인들의 합의로 스스로 다스린다고 보며 "만일 그가 그들의 말 듣기를 무시하거든 교회에 그것을 말하되 그가 교회의 말 듣기를 무시하거든 너는 그를 이교도나 세리같이 여기라."라는 말씀을 듭니다 (마 18:17). 여러 교회 정치의 모습은 교리 과정의 ‘교회란 무엇인가’ 과에서 나란히 살펴보았습니다.
바로잡아 세우는 다스림
치리의 목적은 처벌이 아니라 회복입니다. 주님은 형제가 죄를 범하면 먼저 둘이서만 권하고, 듣지 않으면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마 18:15-17). 그 목표는 "또한 만일 네 형제가 네게 범법하거든 가서 너와 그만 따로 있을 때에 그의 허물을 그에게 일러 주라. 만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었느니라."라는 데 있습니다 (마 18:15). 바울도 "형제들아, 만일 어떤 사람이 잘못에 빠지거든 영적인 너희는 온유의 영으로 그러한 자를 회복시키고 네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에 들지 않게 하라." 자기를 돌아보라고 권합니다 (갈 6:1).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말씀을 풀며 "우리의 책망은 사랑으로 해야 하며, 상처를 입히려 열을 내는 것이 아니라 바로잡으려 애쓰는 것이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벨직 신앙고백은 죄를 바로잡는 권징을 참 교회의 표지 가운데 하나로 꼽고, 사람이 만든 법으로 양심을 묶는 것은 물리치되 말씀을 따른 권징은 필요하다고 고백합니다 벨직 신앙고백 29조, 32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도 권징이 필요한 까닭 가운데 첫째로 죄지은 형제를 돌이켜 얻는 일을 꼽습니다(30장 3절).
너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고 감독하되 억지로 하지 말고 자진해서 하며 더러운 이익을 위해 하지 말고 오직 준비된 마음으로 하며 하나님의 상속 백성 위에 주인처럼 군림하지 말고 오직 양 떼에게 본이 되라.
벧전 5:2-3
장로 정치도 완전한 제도는 아니어서, 회의가 교만과 다툼의 자리가 된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본뜻은 분명합니다. 어떤 직분자도 혼자 주인 노릇을 하지 않고, 서로 살피며 함께 말씀 앞에 서서 양 무리를 돌보는 것입니다. 매튜 헨리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모든 양 무리와 기업의 목자장이십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교인은 자기 영혼을 위하여 깨어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히 13:17), 직분자는 목자장이 나타나실 날을 바라보며 섬깁니다.
연습
- 연습 1 / 8
사도행전 20장에서 바울이 28절에서 "감독자"라고 부른 이들은 누구입니까?
- 연습 2 / 8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교회의 머리를 누구라고 고백합니까?
- 연습 3 / 8
칼뱅이 1541년 제네바 교회 법규에서 정리한 교회의 네 직분은 무엇입니까?
- 연습 4 / 8
장로교회의 치리회를 한 교회에서 시작하여 넓은 데로 바르게 늘어놓은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5 / 8
장로교회가 여러 교회를 위해 함께 결정하는 회의의 본보기로 드는 성경의 사건은 무엇입니까?
- 연습 6 / 8
사도행전 6장에서 일곱 사람을 세운 까닭은 무엇입니까?
- 연습 7 / 8
마태복음 18장과 갈라디아서 6장에 비추어 볼 때 권징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 연습 8 / 8
교회 정치의 형태와 그 이해를 바르게 연결한 것은 무엇입니까?
출처
- 웨스트민스터 총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646 — 장로교회의 신앙고백. 성경, 하나님과 작정, 언약, 구원, 교회와 성례, 종말을 33장에 걸쳐 고백한다. 읽기
- 장 칼뱅, 제네바 교회 법규 1541 — 목사, 교사, 장로, 집사의 네 직분으로 제네바 교회의 질서를 세웠다.
- 웨스트민스터 총회, 장로교회 정치 형태 1645 — 목사, 장로, 집사의 직분과 당회, 노회, 대회의 치리를 정리한 문서.
- 도르트 총회, 도르트 교회 법규 1619 —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직분과 회의(당회, 지역 회의, 대회)와 예배 질서를 정한 법규.
- 귀도 드 브레, 벨직 신앙고백 1561 —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신앙고백. 하나님을 아는 길(창조와 성경)에서 창조, 구원, 교회의 표지와 성례까지 37개 조항으로 고백한다. 읽기
성경과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벨직 신앙고백, 도르트 신경)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개혁주의 신앙을 가르치되, 다른 전통의 견해도 공정하게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