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펠라기우스주의
Semi-Pelagianism
반펠라기우스주의는 구원에 하나님의 은혜가 꼭 필요하지만 믿음의 첫걸음만큼은 사람이 스스로 내디딜 수 있다고 보는 가르침입니다. 5세기 남부 갈리아의 수도사들에게서 나왔고, 529년 오랑주 공의회는 믿음의 시작까지 은혜의 선물이라고 고백하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첫걸음은 누구의 것인가
반펠라기우스주의의 ‘반’은 반대(反)가 아니라 절반(半)이라는 뜻으로, 첫걸음을 사람의 몫으로 남긴 점에서 펠라기우스를 절반쯤 따랐다고 본 이름입니다. 이 가르침은 펠라기우스주의처럼 사람이 은혜 없이 계명을 지킬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담의 죄로 본성이 상했다는 것도, 구원에 은혜가 꼭 필요하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다른 점은 순서입니다. 사람이 먼저 하나님을 원하고 그분께 향하면, 은혜가 그 선한 시작을 받아 돕고 완성한다는 것입니다.
이 견해를 지닌 이들은 성경이 거듭 사람을 불러 돌아오라고 초대한다는 데 주목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내게로 돌아서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서리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고 하십니다 (슥 1:3). 사람에게 돌아설 힘이 조금도 없다면 이런 초대가 무슨 뜻이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성경이 믿음의 시작까지 하나님께 돌린다고 판단했습니다. 바울은 "너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 일을 이루실 것 바로 이것을 나는 확신하노라." 그 일을 이루실 것이라 확신하고 (빌 1:6), "누가 너를 다른 사람과 구별되게 하느냐? 네가 가진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이제 네가 그것을 받았을진대 어찌하여 그것을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라고 묻습니다 (고전 4:7). 주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며 내게 오는 그를 마지막 날에 내가 일으키리라.
요 6:44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구절을 풀며 이렇게 씁니다. "아무도 내가 믿었으므로 그분이 나를 부르셨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선행하는 긍휼이 그를 불러 믿게 한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남부 갈리아의 논쟁과 오랑주 공의회
이 생각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말년인 420년대 후반, 남부 갈리아(오늘날 프랑스 남부)의 마르세유와 레랭 섬 수도원의 수도사들 사이에서 퍼졌습니다. 가장 이름난 이는 이집트 사막 수도사들의 지혜를 서방에 전한 요한 카시아누스(약 360–435년)입니다. 이들은 펠라기우스를 물리친 아우구스티누스를 존경했지만, 모든 것에 앞서는 은혜와 예정에 관한 그의 말년 가르침이 권면과 수고를 쓸모없게 만들까 염려했습니다. 카시아누스는 하나님이 때로는 원하지 않는 사람을 먼저 이끄시고, 때로는 사람 안에 선한 뜻이 싹트기를 기다렸다가 도우신다고 보았습니다.
아키텐의 프로스페르 같은 이들이 이 소식을 전하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성도의 예정』(428–429년경)에서 믿음의 시작까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답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도의 예정. 논쟁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이어져, 레랭 수도원장을 지낸 리에의 감독 파우스투스가 5세기 후반 이 견해를 변호했습니다. 529년 아를의 감독 카이사리우스가 이끈 오랑주 공의회는 믿음의 시작과 믿고 싶어 하는 마음까지 은혜로 말미암으며, 사람이 구하기 때문에 은혜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은혜가 사람으로 구하게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동시에 누구도 악으로 예정되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오랑주 공의회. 지역 공의회였지만 531년 교황 보니파시오 2세가 그 결정을 인준했습니다. ‘반펠라기우스주의’라는 이름은 그때가 아니라 천 년쯤 뒤인 16세기 후반에 생겼습니다.
이 이름이 오늘 쓰이는 곳
가톨릭 교회는 오랑주의 고백을 따릅니다. 트리엔트 공의회(1547)도 어른의 의화가 하나님의 앞서는 은혜에서 시작되며, 성령의 앞선 감동과 도우심 없이는 아무도 마땅히 믿거나 회개할 수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 의화에 관한 교령. 정교회는 이 서방의 논쟁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정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의 자유가 함께 일한다는 ‘협력’(synergeia)으로 구원을 말하면서도 은혜 없이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고 고백하며, 이 서방의 이름을 자기 가르침에 붙이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크리소스토무스도 요한복음 6:44를 두고 "우리 주의 말씀은 우리의 자유로운 행위 능력을 없애지 않으며 다만 우리에게 신적 도우심이 필요함을 보일 뿐입니다"라고 썼습니다 크리소스토무스.
종교개혁 뒤에 이 말은 자주 논쟁의 무기가 되었습니다. 루터교의 일치신조(1577)는 사람이 제힘으로 회심을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반펠라기우스파의 오류라고 이름을 들어 물리쳤습니다. 개혁교회 쪽에는 아르미니우스주의가 결국 반펠라기우스주의와 다르지 않다고 비판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아르미니우스와 웨슬리 전통은 이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아르미니우스는 모든 선의 시작과 지속과 완성을 은혜에 돌렸고 아르미니우스, 소신 선언, 웨슬리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행 은총이 어떤 선한 바람보다 먼저 와서 의지가 응답할 수 있게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칼뱅주의와 아르미니우스주의는 은혜가 먼저인가가 아니라 그 은혜를 거절할 수 있는가를 두고 갈라지며, 두 전통 모두 오랑주와 함께 믿음의 시작까지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이 논쟁의 배경은 아우구스티누스: 은혜의 박사 과에서, 은혜는 은혜란 무엇인가?에서 더 다룹니다.
출처
- 아우구스티누스, 성도의 예정
- 제2차 오랑주 공의회, 오랑주 공의회 결정 529
- 트리엔트 공의회, 의화에 관한 교령 1547
- 야코부스 아르미니우스, 소신 선언 1608
이 앱에서 더 배우기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