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사전

인문주의

Renaissance humanism

인문주의는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15–16세기 유럽에 퍼진 학문 운동으로, 고전과 성경과 교부들의 글을 원래 언어로 읽자며 원천으로 돌아가자고 외쳤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람을 중심에 두는 근대의 세속적 인본주의와는 다른 말이며,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신약성경처럼 종교개혁의 길을 여는 데 큰 몫을 했습니다.

원천으로

‘인문주의’라는 이름은 문법, 수사학, 시, 역사, 도덕철학을 배우는 ‘인문학’(studia humanitatis)에서 왔습니다. 14세기 이탈리아의 페트라르카(1304–1374)는 로마의 고전을 다시 찾아 읽으며, 오래 쌓인 해설과 학교의 논리를 거치지 말고 원래의 글과 그 말의 아름다움에서 지혜를 배우자고 했습니다. 비잔티움에서 건너온 학자들이 헬라어를 가르쳤고, 15세기 중엽부터는 인쇄술이 책을 빠르게 퍼뜨렸습니다. 이 운동의 구호가 라틴어 ‘아드 폰테스’(ad fontes), 곧 ‘원천으로’입니다.

원천을 따지는 일은 교회에도 칼날이 되었습니다. 로렌초 발라(1407–1457)는 교황권의 근거로 쓰이던 ‘콘스탄티누스의 기증’ 문서가 그 라틴어로 보아 훨씬 뒤에 만들어진 위조문서임을 밝혔고, 라틴어 성경을 헬라어 본문과 견주는 주해도 남겼습니다. 알프스 북쪽에서는 이 학문이 경건과 만났습니다. 에라스무스(약 1466–1536)는 1516년 바젤에서 헬라어 신약성경을 처음으로 출판하고 새 라틴어 번역을 붙였습니다 에라스무스, 헬라어 신약성경. 학자들은 오래 써 온 라틴어 성경을 헬라어 본문과 견주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예수께서 "회개하라"고 하신 말씀도 (마 4:17) 흔히 ‘고해를 행하라’로 읽혔지만, 헬라어 메타노에오(μετανοέω)는 마음과 삶의 방향을 돌이킨다는 뜻에 가깝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들은 말을 성경 자체에 비추어 본 베뢰아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이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던 자들보다 더 고귀하여 온전히 준비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므로

행 17:11

인문주의와 종교개혁

많은 종교개혁자가 인문주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비텐베르크의 헬라어 교수 필리프 멜란히톤, 취리히의 울리히 츠빙글리, 그리고 첫 책으로 세네카의 글에 주석을 단 장 칼뱅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인문주의자들이 다듬은 원어와 본문 연구의 도구로 성경을 풀었고, 학교를 세워 다음 세대를 가르쳤습니다. 당시 ‘에라스무스가 알을 낳고 루터가 그것을 깠다’는 말이 돌았다고 전해집니다. 가톨릭 쪽에서도 히메네스 데 시스네로스가 원어 본문을 나란히 실은 다국어 성경을 펴냈습니다.

그러나 인문주의가 곧 종교개혁은 아니었습니다. 에라스무스는 교회의 부패와 스콜라 신학의 지나친 사변을 꼬집으면서도, 그리스도를 본받는 단순한 경건과 배움으로 교회가 새로워지기를 바랐고 끝까지 가톨릭 교회에 남았습니다. 1524년 그는 사람에게 은혜와 함께 응답할 작은 힘이 남아 있다고 보았고, 루터는 이듬해 구원에 관해서는 의지가 죄에 매여 있어 하나님의 은혜만이 풀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루터, 노예 의지론 (자유의지 참고). 원천으로 돌아가는 길은 열렸지만, 그 원천에서 무엇을 듣느냐는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성경을 원어로 연구하고, 더 오래된 사본을 견주며, 교부들을 그들의 글로 읽는 것은 이 운동에 빚진 것입니다. 배움 자체가 사람을 구원하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더 정확히 들으려는 수고는 교회를 섬깁니다. 이 시대의 이야기는 중세 말의 위기와 개혁의 선구자들 과에서 이어집니다.

출처

  1. 에라스무스, 헬라어 신약성경 1516
  2. 마르틴 루터, 노예 의지론 1525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