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학
Apologetics
변증학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참되고 믿을 만한 까닭을 밝히고, 믿음에 대한 물음과 반론에 성경과 이성으로 답하는 신학의 갈래입니다. 이기기 위한 논쟁이 아니라, 묻는 이에게 온유와 두려움으로 소망의 이유를 전하는 일입니다.
소망에 관한 이유
변증학의 영어 이름 아폴로제틱스(apologetics)는 법정에서 자기를 변론하는 말을 뜻하는 헬라어 아폴로기아(ἀπολογία)에서 왔습니다. 베드로는 박해 속에 있던 성도들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오직 너희 마음속에서 주 하나님을 거룩히 구별하고 너희에게 너희 속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며
벧전 3:15
여기서 ‘대답’으로 옮긴 말이 아폴로기아입니다. 변증은 학자만의 일이 아니라 모든 신자가 준비할 일이며, 그 태도는 온유와 두려움입니다. 바울은 아덴의 아레오바고에서 "내가 지나다니며 너희가 섬기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새긴 글이 있는 제단을 발견하였나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경배하는 그분을 내가 너희에게 밝히 알려 주리라."라고 새긴 단으로 말을 시작했고 (행 17:23),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에 남기신 일반 계시에서 출발해 창조주 하나님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본 "그 뒤에 그분께서 오백여 형제에게 한 번에 보이셨는데 그중의 대다수는 지금 이때까지 남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잠들었느니라."를 증인으로 들었으며 (고전 15:6), 아그립바 왕 앞에서는 "왕께서는 이 일들에 대하여 아시므로 내가 왕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아뢰나이다. 또 내가 확신하는 바로는 이 일들 중 어떤 것도 왕께 숨겨지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한 구석에서 일어나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행 26:26).
변증학은 흔히 세 가지 일을 합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복음이 참되다는 이유를 보여 주고, 믿음에 대한 반론에 답하며, 믿음을 대적하여 높아진 생각들의 약점을 드러냅니다. 바울은 "우리는 상상하는 것과 또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스스로를 높이는 모든 높은 것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하며"라고 말합니다 (고후 10:5). 그러나 사람을 믿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변증은 믿음으로 가는 길의 걸림돌을 치우고, 믿는 이의 확신을 굳게 합니다.
교회가 걸어온 길
2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무신론자라는 비난과 근거 없는 소문에 시달렸고, 이때 글로 신앙을 변호한 이들을 변증가라고 부릅니다. 155년 무렵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황제에게 『제1변증서』를 보내 그리스도인의 삶과 예배를 밝혔습니다 유스티누스, 제1변증서. 410년 로마가 약탈당한 뒤 기독교 때문에 나라가 무너졌다는 비난이 일자,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의 도성』으로 답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하나님의 도성. 중세의 안셀무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는 하나님의 존재를 이성으로 살피는 논증을 남겼고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18세기 데이비드 흄이 기적을 믿을 근거를 문제 삼은 뒤로 변증가들은 그 물음과도 씨름했습니다 흄, 인간 지성에 관한 탐구. 20세기에는 C. S. 루이스가 『순전한 기독교』에서 도덕의 법에서 출발해 기독교 신앙을 차근차근 소개했습니다 C. 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방법을 두고 다른 견해들
복음주의 안에서도 변증의 방법은 다릅니다. 고전적 방법은 먼저 하나님의 존재를 논증하고 그다음 그리스도와 성경의 증거로 나아갑니다. 증거주의 방법은 그리스도의 부활 같은 역사적 증거에서 바로 출발합니다. 이 둘은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가 함께 따져 볼 수 있는 이성과 증거를 공통의 바탕으로 삼으며, 프린스턴의 B. B. 워필드가 이 전통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코넬리우스 반틸이 아브라함 카이퍼의 생각을 이어 세운 전제주의 방법은,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는 출발점부터 다르므로 성경의 하나님을 전제할 때에만 이성과 도덕이 설명된다고 보며, 그 전제 위에서 불신앙의 모순을 드러내려 합니다.
전통 사이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1870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사람이 이성의 자연적 빛으로 피조물을 통해 하나님을 확실히 알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하느님의 아들. 20세기의 카를 바르트는 이런 자연 신학이 하나님을 그리스도 밖에서 찾게 한다며 거절했습니다 카를 바르트, 교회 교의학. 어느 쪽이든 변증의 목표는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이 물음들은 하나님은 존재하는가?와 왜 다른 종교가 아니라 기독교인가?에서 더 다룹니다.
출처
성경 인용: 개역한글.